손석한의 세상 관심법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국민감정에 미래 달렸다

기쁨, 분노, 불안, 그리고 양가감정…어느 쪽으로 결론 날까

  •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의학박사

    psysohn@chol.com

    입력2019-05-27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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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hutterst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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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 21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고용노동부 주최로 ‘최저임금 영향 분석 토론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최저임금의 대폭 인상으로 인건비 부담이 커지자 도·소매업과 음식·숙박업 등 일부 업종의 사업주가 고용을 줄이는 방식으로 대응했다는 고용노동부의 실태 파악 결과가 공개됐다. 한편으로는 최저임금 인상으로 저임금 노동자의 소득이 증가하는 긍정적인 효과도 나타난 것으로 보고됐다.

    정규직 사원도, 고액 연봉자도

    세간에는 많은 자영업자가 고용을 기피하거나, 영업시간을 줄이거나, 본인과 가족의 노동시간을 늘리는 식으로 최저임금 인상에 대응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기에 정부가 이번 토론회 내용을 참고해 최저임금 인상 속도를 늦추거나 자영업자의 고충을 덜어주는 정책을 수립할 것인지 귀추가 주목된다. 필자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로서 최저임금 인상을 바라보는 국민의 마음을 분석하고자 한다. 

    최저임금 인상을 환영하는 국민도 있다. 예컨대 대형마트에서 계산원으로 일하는 사람은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이후 더 많은 소득을 얻게 됐다. 이들은 생계를 이어가기가 전보다 나아졌다고 얘기한다. 최저임금 이상의 보수를 받던 근로자들도 최저임금 인상의 영향으로 급여가 올랐다고 좋아한다. 

    한마디로 최저임금 인상의 혜택을 직간접적으로 받은 사람은 기쁨과 안도의 마음이 들 수밖에 없다. 근로자의 고용 지위가 불안정해질 수 있다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당장의 이익에 초점을 맞춰 생각한다. ‘지금 당장 어렵고 힘든데, 돈을 조금이라도 더 받으면 그게 최고지. 내일 일은 내일 걱정하자’는 마음인 것이다. 

    이들에게 ‘만족 지연(Delayed Gratification)’은 먼 나라 얘기일 뿐이다. 만족 지연 이론은 ‘즉각적인 즐거움, 보상, 욕구를 억제하면 나중에 더 큰 보상과 더 나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렇다면 최저임금 인상 요구를 억제하면 고용주로부터 신뢰를 얻거나, 회사가 더욱 성장해 훗날 더 큰 보상을 받을 수 있단 말인가.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최저임금 인상에 화가 난 국민도 있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직접적인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다. 어느 날 편의점 점주가 자신의 근무시간을 늘릴 것이라며, 점원인 내게 근로시간을 줄이자고 한다. 시간당 수입은 분명 늘었지만, 근무시간 감소로 주머니에 들어오는 돈은 오히려 줄어든다. 내 일자리를 일부 뺏어간 점주가 야속하다. 그런데 점주가 저렇게 나오는 것은 정부 정책 때문이니 정부에게도 화가 난다. “애초에 이런 부작용을 왜 예상하지 못했지”라며 불신의 마음도 생겨난다. 

    점주도 마찬가지다. 내 돈 투자해 점주로서 관리 업무만 하려 했는데, 최저임금 인상으로 쉬지도 못하고 괜히 남(점원) 좋은 일만 시키는 셈이 돼 울화가 치민다. 바보같이 남에게 돈 대주는 것만 같고, 인건비를 줄이려 장시간 근무하다 보니 자신이 점주인지 점원인지 정체성마저 혼란스럽다. 장사까지 신통치 않아 점원보다 수입이 적을까 봐 두렵다. 내 신세가 처량하다. 마찬가지로 정부를 향한 분노가 치민다. 

    급여 수준이 낮은 직장인 사이에서도 분노의 마음이 크게 작동한다. 정규직임에도 월급이 최저임금 비정규직과 거의 차이가 나지 않는다. 자존감이 바닥으로 떨어진다. 사장에게 얘기해볼까. “그럼 그만두세요” 할 것 같다. 말도 못 꺼내고 속만 부글부글 끓는다. 고액 연봉자라고 처지가 다를까. ‘예전에는 최저임금의 5배를 벌었는데, 지금은 3배밖에 되지 않네’ 하는 마음이 든다.

    ‘좋음’과 ‘싫음’의 시소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은 최저임금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축에 속한다. [양회성 동아일보 기자]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은 최저임금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축에 속한다. [양회성 동아일보 기자]

    비록 드러내놓고 불만을 표현하진 않지만, 많은 사람이 상대적으로 낮아진 것 같은 사회경제적 지위에 비교 우월감이 떨어진다. 왠지 자신의 몫을 뺏긴 것 같고, 기존 질서가 무너진 것에 대해 분노가 생긴다. 내 수입이 줄었더라도 더 많은 사람이 나와 비슷한 수준의 수입을 얻게 됐으니 좋은 일이라고 생각할 수는 없을까. 대승적이고 이타적이며 성숙한, 그리고 착한 마음씨가 인간의 본성에 얼마나 가까울지,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런 마음을 가졌을지는 앞으로 우리 사회가 풀어야 할 의문이자 숙제다. 

    또한 최저임금 인상에 불안해하는 이가 있다. 최저임금 인상의 사회적 영향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하는 보통의 사람들이다. 단골 식당에 갔더니 종업원 수가 줄어 몇 번이고 큰 소리로 “사장님!”을 외친 후에야 밑반찬을 더 갖다 달라고 얘기할 수 있고, 술기운이 올라 기분 좋은 타이밍에 “영업이 끝났으니 그만 나가달라”는 요구를 받으며 음식 가격이 인상된 것을 확인한다. 이게 다 최저임금 인상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주변 사람들이 하던 말이 떠오른다. 자영업자는 다 망할 거라고, 일자리는 더욱 줄어들고 한국 경제는 더 나빠질 거라고. 

    내 마음은 불안해진다. 내 앞날은 물론이거니와 가족의 미래, 더 나아가 우리나라가 걱정된다. 시대 변화에 적응해야 하지만, 과연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 확신이 들지 않는다. 가는 식당마다 이 집은 장사가 잘되는지, 종업원 수에 변동이 없는지, 가격을 올리진 않았는지 살피곤 한다. 어서 빨리 경기가 좋아져 상인과 직장인이 모두 웃는 모습을 보고 싶다. 

    한편으로 최저임금 인상에 ‘양가감정(ambivalence)’이 드는 국민도 있다. 양가감정이란 상호 대립되거나 모순되는 두 가지 감정이 동시에 존재하는 상태를 뜻한다. 최저임금 인상은 참으로 옳은 일인데, 급격한 인상은 잘못된 것이라는 생각도 동시에 든다. 

    이러한 양가감정은 깨지게 돼 있다. 결국 어느 한쪽의 감정이 우세해지기 때문이다. 필자는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양가감정이 어느 쪽으로 기우느냐가 우리나라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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