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11

2017.11.01

골프홀릭

3025일 만에 우승 가뭄 해소

지은희 LPGA 대회 우승

  • 이사부 골프 칼럼니스트 saboolee@gmail.com

    입력2017-10-30 14:0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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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 가뭄 끝 단비. 이런 표현이 어울릴 듯하다. 8년여 만에 미국 여자프로골프협회(LPGA) 투어에서 우승 소식을 전한 지은희(31)를 두고 하는 말이다. 대만에서 열린 ‘스윙잉 스커츠 LPGA 타이완 챔피언십’에서였다. 같은 기간 한국에서는 국내 첫 PGA투어 대회인 ‘더 CJ컵@나인브릿지’가 팬들의 이목을 끌었다. 여기에 KLPGA 메이저 대회인 KB금융스타챔피언십 1라운드가 통째로 날아가는 엄청난 사건이 터졌다. 이 때문에 지은희의 우승 소식은 크게 다뤄지지 못했다. 한국 낭자가 LPGA투어에서 올 시즌 15승을 달성했고, 그중 한 명이 지은희였다는 뉘앙스가 강했다. 사실 LPGA투어에서 스타급이 아닌 한국 선수가 우승한 것은 큰 뉴스가 아니다. 지은희는 LPGA투어의 한국 선수 가운데 최고참이다. 선배들은 하나 둘 은퇴해 투어를 떠났다. 그래도 그는 투어를 지키고 있다. 대회장의 드라이빙 레인지나 연습 그린에서 그를 쉽게 찾을 수 있다. 남들은 가족이나 매니저와 함께 다니지만, 그는 혼자 다닌다.

    2008년 투어 생활을 시작한 지은희는 그해 웨그먼스LPGA챔피언십(현 KPMG 우먼스 PGA 챔피언십)에서 첫 우승을 차지한 뒤 이듬해 메이저 대회인 US여자오픈에서 정상에 올라 톱클래스 반열에 올라서는 듯했다. 하지만 스윙 자세 교정의 후유증을 이겨내지 못하고 8년을 무관으로 지내야 했다. 당연히 팬들에게도 잊혔다. 1등은 기억해도 2등은 기억하지 못한다는 냉정한 승부의 세계에서 중위권 성적은 이목을 끌지 못했다. 그래도 그는 클럽을 놓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을 더 갈고닦았다.

    지은희는 매 시즌 25개 내외의 대회에 나서 꾸준히 중위권을 유지해 지금까지 한 번도 카드를 놓친 적이 없다. 매 시즌 2~5개 대회에서 톱10에 들었고, 컷에 걸리는 대회는 몇 개 되지 않았다. 매년 꾸준히 30만~60만 달러(약 6억7700만 원)를 벌어 투어 비용을 감당했다.

    하지만 우승 없이 지낸 8년은 무척 긴 시간이었다. 그는 이번 LPGA 타이완 챔피언십 우승 후 인터뷰에서 “4라운드 전날 밤 새벽 2시에도 깨고, 4시에도 깼다. 도무지 편히 잠을 잘 수가 없었다”고 밝혔다. 2위에 6타나 앞서 있었는데도 말이다. 3라운드를 마친 뒤 동료나 후배들이 일찌감치 축하 인사를 건네도 안심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는 마지막 라운드가 시작된 후에도 “전반 9홀에서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며 “워낙 오래 우승을 못 해 18번 홀로 가면서는 떨렸다”고 말했다.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인 검은색 상의와 하의로 무장한 지은희는 18번 홀을 마치고서야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마지막 날에만 7타를 줄였다. 3라운드까지 6타 차 선두였던 선수가 4라운드에서 7언더파를 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만큼 이 기회를 놓쳐선 안 된다는 절박함이 있었던 것이다. 한 언론은 지은희가 3025일 만에 우승했다는 것을 계산했고, LPGA투어 공식 홈페이지는 8년 만에 가뭄이 해소됐다는 제목을 달았다.



    수상스키 국가대표 출신인 지은희의 아버지는 북한강변에서 골프 연습장을 운영했을 정도로 골프광이었다. 아버지는 지은희가 강에 띄워놓은 부표를 향해 공을 치면 물속으로 들어가 공을 주워다 줄 정도였다. 지은희는 그런 아버지가 안쓰러워 더 정확하게 치려고 노력했다. 지은희는 엄청난 스폰서십을 받는 스타플레이어는 아니지만 후배들이 롤모델로 삼을 만한 선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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