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71

2015.01.12

남의 피 인공관절수술 능사 아니다!

무수혈 오히려 부작용 적어…환자 회복 예후 좋아 확산 추세

  • 최영철 주간동아 기자 ftdog@donga.com

    입력2015-01-12 11: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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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의 피 인공관절수술 능사 아니다!

    수혈 없이 무릎 인공관절수술을 하고 있는 바른세상병원 의료진들.

    10년 넘게 퇴행성관절염을 앓아 온 김호근(67·가명) 씨는 최근 양쪽 무릎에 인공관절을 넣는 수술을 받았는데, 놀랍게도 수술 과정에서 수혈을 하지 않았다. 수술 전 무릎 손상 정도가 심했던 김씨는 체력과 면역력이 극도로 약화된 상태여서 걱정이 앞섰다. 인공관절수술을 하려면 반드시 수혈을 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 가뜩이나 면역력이 떨어진 상태에서 많은 피를 흘려야 한다는 게 부담으로 다가왔다. 게다가 수혈 과정에서 다른 질환에 감염된 사례가 많다는 이야기를 듣고 걱정이 커졌다.

    다행히 김씨가 찾은 병원의 의료진은 수혈 없는 수술을 권했다. 의료진은 김씨의 헤모글로빈 수치가 정상인 상황에서 무수혈 수술이 오히려 회복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수혈에 대한 공포 때문에 인공관절수술을 포기하려 했던 김씨는 무수혈 수술을 선택했다. 그 결과 오한, 무기력감 같은 인공관절수술의 일반적인 후유증 없이 가벼운 몸으로 일찍 재활을 시작할 수 있었다.

    수혈은 필수? 관행과 무지 탓!

    최근 김씨처럼 수혈 없이 인공관절수술을 받는 환자가 늘고 있다. 수혈 양을 줄일수록 환자 예후가 좋고 회복과 재활에도 이점이 많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인공관절수술에선 수혈이 불가피했다. 의료 현장의 관행, 그리고 환자가 수혈의 부작용과 위험성을 제대로 알지 못한 원인이 크다. 최소 수혈 또는 무수혈 수술의 사례가 많지 않고 임상 데이터가 충분하지 못해 활성화가 안 된 측면도 있다.

    하지만 근래 의료 현장을 중심으로 수혈의 위험과 부작용이 속속 보고되면서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 보통 수혈할 땐 혈액형뿐 아니라 10여 가지 검사를 거쳐 적합한 혈액을 찾는다. 하지만 아무리 잘 고른 혈액도 막상 남의 몸에 들어가면 크고 작은 면역 반응을 일으킨다. 인공관절수술 과정에서 수혈을 받은 환자가 발열과 오한, 저혈압, 구토, 두드러기, 무기력감 등을 호소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여우진 바른세상병원 원장(관절센터 소장·정형외과 전문의)은 “혈액은 온몸을 돌며 산소와 영양분을 공급하고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 또 개인마다 다른 신체조건과 환경에 대응할 수 있도록 체내 항상성을 유지하고 생체방어 기능을 조절한다. 수혈도 넓은 의미에서 장기이식으로 봐야 한다. 혈액은 생각보다 복잡한 구조라 다른 환자의 몸에 들어갔을 때 어떤 반응을 일으킬지 정확히 알 수 없다”고 설명했다.

    수혈 후유증 문제는 2014년 11월 질병관리본부 국회 국정감사에서도 불거졌다. 2011년 이후 3년여간 수혈 이상반응이 3배나 증가한 사실이 보고됐기 때문이다. 이상반응의 종류도 알레르기, 혈소판 불응증, 거대세포 바이러스 감염 등 다양하다. 수술이 많은 국내 외과계에서도 가급적 수혈을 줄이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국내 무수혈 수술은 위암, 대장암, 제왕절개까지 확대되고 있다.

    인공관절수술도 마찬가지다. 퇴행성관절염은 주로 나이가 들어 관절이 닳고 노화되면서 생긴다. 무릎은 가만히 서 있을 때도 체중의 75~90%를 감당해야 하기 때문에 퇴행성 질환의 발생 확률이 높은 기관이다. 퇴행성관절염은 가벼운 통증으로 시작해 약물과 주사요법만으로 치료하기 힘들 정로도 악화되면 인공관절수술을 하는 것 외에 대안이 없는 실정이다. 손상된 관절 연골 부분을 절제하고 특수 금속으로 만든 인공관절을 넣는 것이다.

    인공관절수술을 받는 환자 대부분이 고령이다 보니 신체 면역력은 떨어지고, 혈액순환장애 등 지병을 갖고 있을 확률이 높다. 그만큼 수혈 후유증이나 부작용에 시달릴 가능성이 큰 사람들이다. 할 수만 있다면 고령자에 대해선 수혈을 최소화하거나 수혈 없는 수술을 확대해야 하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인구 고령화에 따라 헌혈 인구는 줄고 수혈 인구가 증가한 것도 무수혈 수술이 권장되는 또 하나의 이유다. 실제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국내 무릎 인공관절수술은 2009년 4만7000여 건에서 2010년 5만3000여 건으로 크게 증가했다. 그중 80%가 60, 70대 연령이다.

    여 원장은 “혈액은 신성한 것이라는 고정관념과 관행적, 맹목적으로 수혈을 지속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일반적으로 인공관절수술을 할 때 한쪽 무릎에 혈액 두 팩을 수혈하는데 실제 임상에서 수혈하지 않아도 수술에 문제가 없고 오히려 부작용이 적은 것으로 관찰된다”고 소개했다.

    최소 절개, 수술시간 단축

    남의 피 인공관절수술 능사 아니다!

    인공관절수술 시 한쪽 무릎에 대략 2팩의 혈액이 수혈된다.

    그렇다면 무수혈 인공관절수술은 모든 이에게 가능할까. 질병관리본부는 혈중 헤모글로빈 수치가 7g/dL 이하일 때 수혈할 것을 권고한다. 건강한 성인의 평균 헤모글로빈 수치는 13~15g/dL. 다시 말해 수술 전 7g/dL 이상 헤모글로빈 수치가 유지된다면 굳이 수혈하지 않아도 큰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는 뜻이다.

    무수혈 수술이 일단 결정되면 의사는 수술 전 적혈구 생성을 돕는 조혈제와 헤모글로빈 수치를 올리는 철분제를 환자에게 투여한다. 환자 몸을 혈액이 원활하게 공급되는 환경으로 만드는 것이다. 수술 중 출혈로 체내에 피가 줄어들면 그 용량만큼 수액을 채워준다. 수혈이 꼭 필요한 환자라면 주치의 판단하에 다른 사람의 혈액 팩으로 제한적인 수혈을 진행한다.

    이렇게 인공관절수술에서 최소 수혈, 무수혈 수술이 가능해진 것은 최근 수술 기술이 크게 발달한 것도 한몫한다. 최소한의 절개만으로 인공관절 교체가 가능하고, 수술시간도 크게 줄었기 때문. 과거에는 무릎 인공관절수술 시 15~20cm 절개했지만, 최근에는 10~12cm만으로도 충분하다. 대략 2~3시간 걸리던 수술도 1시간 이내로 대폭 단축됐다. 절개 부위가 작아지고 수술시간이 짧기 때문에 출혈도 많지 않아 수혈을 최소화하거나 수혈 자체가 필요 없게 된 셈. 근육과 인대 손상이 적으니 회복도 빠르다.

    실제 현장 의료진이나 환자 모두 무수혈 인공관절수술의 결과에 만족스러워한다. 자기 혈액의 산소 운반 능력이 잘 유지돼 부작용이 줄고 면역력과 체력이 크게 떨어지지 않는 게 최대 장점으로 꼽힌다. 박은경 바른세상병원 간호과장은 “수술 전 환자들은 수혈 중 감염에 대한 우려와 다른 사람의 혈액이 자신의 몸에 들어온다는 것에 두려움을 갖고 있어 최소 수혈, 무수혈 인공관절수술을 설명하면 생각보다 흔쾌히 받아들인다”며 “수술 후 ‘생각보다 몸이 가뿐하다’‘우려했던 것보다 컨디션 좋다’는 의견이 많다”고 전했다.

    서동원 바른세상병원 원장(정형외과·재활의학과 전문의)은 “우리 병원의 경우 최근 3개월간 76명 환자에게 수혈 없이 인공관절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무수혈 인공관절수술은 환자 안전을 우선시하는 치료법인 만큼 수술 전 과정을 세심하고 철저하게 파악해야 한다. 특히 무수혈 최소 절개 인공관절수술은 빠른 판단력과 정교한 기술이 필요하기 때문에 경험이 풍부한 의료진을 찾는 것이 관건”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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