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83

2019.04.05

명욱의 술기로운 생활

사케는 됐는데 막걸리는 안 된 이유

사케- 좋은 쌀과 효모 등 ‘기본’에 충실, 막걸리- 수출 실적에 급급하다 ‘후퇴’

  • 주류문화 칼럼니스트

    blog.naver.com/vegan_life

    입력2019-04-09 11: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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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hutterst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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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사케 수출 규모가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일본주조조합중앙회에 따르면 지난해 일본 사케 수출액은 222억 엔(약 2300억 원)으로 전년 대비 19% 증가해 사상 최대치를 경신했다(그래프 참조). 2001년 수출액 12억 엔에서 20년도 안 돼 20배가량 성장했다. 흥미로운 대목은 양(量)에 비해 수출금액이 더 커졌다는 점이다. 지난해 수출량은 2만574kℓ로 전년 대비 10% 증가한 수준이었다. 박리다매(薄利多賣)가 아니라, 고부가가치 사케 위주로 수출이 늘고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막걸리의 수출 성적은 어떨까. 2011년 막걸리 수출액은 5200만 달러(약 590억 원)로 그해 일본의 사케 수출액 87억 엔(약 900억 원)과 아주 크게 차이 나진 않았다. 하지만 지난해 막걸리 수출액은 1241만 달러(약 140억 원)로 대폭 쪼그라들었다. 일본 사케 수출액 대비 6%에 불과하다. 막걸리와 사케는 왜 다른 길을 걷게 된 걸까. 

    사케 수출이 증가하는 대표적 이유는 전 세계에 일식 레스토랑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일식이 2013년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에 등재되면서 더욱 탄력을 받았다. 그 나라 음식을 제대로 즐기려면 그 나라 술도 같이 맛봐야 한다는 인식 덕분이다.

    사케용 쌀만 100종 넘어

    출처 | 관세청, 일본주조조합중앙회

    출처 | 관세청, 일본주조조합중앙회

    좀 더 속을 들여다보면 사케가 가진 탄탄한 문화적 기반이 수출 증가에 큰 힘이 됐음을 알 수 있다. 일본에선 전국 1500여 개 양조장에서 약 2만 종의 사케를 만든다. 각 사케마다 해당 지역의 자연환경, 문화, 음식을 녹여낸다. 양조용 물에 대해서도 지역성을 강조한다. 무엇보다 일본은 사케 전용 쌀과 효모 개발에 열심이다. 대량생산을 위함이 아니라 원료가 가진 본연의 맛을 살리고 독특한 향미를 얻기 위해서다. 

    일본은 술 발효 공학에 일찍부터 투자했다. 히로시마 주류총합연구소는 1911년부터 사케의 맛과 품질을 경쟁하는 ‘전국신주감평회(全國新酒鑑評會)’를 개최, 효모 개발에 착수했다. 대회에서 수상한 사케들을 대상으로 우량 효모를 분석한 뒤 전국에 배포했다. 이것이 오늘날 일본 사케 발전의 기반이 된다. 또 주류총합연구소는 일찍이 사케용에 적합한 쌀 품종을 따로 개발했다. 대표적인 쌀이 1923년 개발된 야마다니시키(山田錦)라는 품종이다. 한국에선 가공용 쌀이 일반 쌀보다 더 저렴하다. 하지만 일본에선 사케용 쌀이 더 비싸다. 술을 잘 빚으려면 쌀알이 커 전분 함량이 높아야 한다. 일조량이 많은 곳에서 이런 쌀이 생산된다. 벼 크기도 일반 벼보다 커야 한다. 이런 이유로 사케용 쌀은 일반 쌀보다 30%가량 비싸다. 



    일본에서 현재까지 개발된 효모 종류는 700여 종이다. 사케용 쌀은 100종이 넘는다. 각 양조장은 쌀과 효모를 선택해 자신이 원하는 맛을 낸다. 소비자는 취향에 맞는 사케를 고르는 재미를 누린다. 최근에는 효모로 인해 술맛이 다양해진다는 사실이 알려져 양조장이 자체적으로 효모를 개발하고 있다고도 한다. 

    일본 사케가 수출이 잘 되는 이유는 하나 더 있다. 일본은 술 용어를 공식 번역해 해외에 알린다. 그 대표적 예가 ‘저패니즈 사케’다. 사실 사케(さけ· SAKE)는 일본에서 ‘술’을 뜻하는 보통명사다. 맥주, 위스키, 소주, 와인도 일본에선 모두 사케다. 일본은 청주를 ‘일본 사케(Japanese Sake)’라는 이름으로 해외 소비자에 각인시키고 있다. 일본에서 사케는 ‘일본주(日本酒)’로 불린다. 

    2011년 막걸리 수출금액은 연간 5000만 달러를 넘어섰다. 당시 막걸리 수출이 잘 된 이유는 정부의 막걸리 진흥 정책, 일본 내 한류 열풍, 엔고에 따른 수출가격 인하 덕분이다. 또 동일본 대지진 발생 지역인 센다이 일대에 위치한 맥주공장들이 가동을 멈추자 일본 내 마트 진열대에는 대체 상품으로 막걸리가 들어갔다(일본은 막걸리 주요 수입국이다).

    고급 사케 위주로 ‘성장’ 중

    일본 니가타현 이시모토주조 코시노간바이에서 사케를 발효시키는 모습. 우리의 막걸리 발효 모습과 매우 흡사하다(왼쪽). 니가타현 사케 전문 소매점 폰슈카에 설치된 사케 자동판매기. 자동판매기용 코인을 넣고 사케를 고른 뒤 잔을 갖다 놓으면 샘플을 시음할 수 있다. [사진 제공 · 명욱]

    일본 니가타현 이시모토주조 코시노간바이에서 사케를 발효시키는 모습. 우리의 막걸리 발효 모습과 매우 흡사하다(왼쪽). 니가타현 사케 전문 소매점 폰슈카에 설치된 사케 자동판매기. 자동판매기용 코인을 넣고 사케를 고른 뒤 잔을 갖다 놓으면 샘플을 시음할 수 있다. [사진 제공 · 명욱]

    문제는 준비가 덜 된 상태였다는 점이다. 일본으로 수출하는 막걸리는 대부분 살균 처리된 캔막걸리로, 생막걸리보다 감미료를 2배 더 넣어 단맛을 강조한 제품이었다. ‘일본 소비자는 단맛을 좋아한다’는 현지화 전략이었다. 하지만 단맛은 금세 물린다. 무엇보다 음식과 매칭하기 어렵다. 일본 소비자들이 점차 막걸리를 외면하자 업체 간 가격 경쟁이 벌어졌다. 결국 일본시장에서 한국 막걸리는 ‘값싼 술’이 돼버렸다. 

    일본에서 한때 히트했던 산토리 서울막걸리(왼쪽). 일본산 막걸리(マッコリ)와 일본 수출용 막걸리를 한데 모아놓은 모습. 일본에서 한국 막걸리가 인기를 끌자 일본 사케 양조장들도 막걸리를 출시하기 시작했다. [산토리 홈페이지, 사진 제공 · 전통주갤러리]

    일본에서 한때 히트했던 산토리 서울막걸리(왼쪽). 일본산 막걸리(マッコリ)와 일본 수출용 막걸리를 한데 모아놓은 모습. 일본에서 한국 막걸리가 인기를 끌자 일본 사케 양조장들도 막걸리를 출시하기 시작했다. [산토리 홈페이지, 사진 제공 · 전통주갤러리]

    게다가 한국 막걸리는 대부분 빵 효모를 쓴다. 최근 토종 효모를 사용하는 경우가 간혹 있지만, 아직은 소비자 인지도가 지극히 낮다. 양조용 쌀이 따로 있어야 한다는 인식도 없다. 여기에 술은 ‘많이 마시고 빨리 취하는 것’이라는 한국적 음주문화도 큰 걸림돌이다. 술시장은 양적으로 컸지만, 지역성과 우리 농산물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는 고부가가치 산업으로는 성장하지 못했다. 

    일본에는 사케문화를 이끄는 사케 소믈리에(기키자케시·利き酒師) 제도가 있다. 일본주서비스연구회가 운영하는 것으로, 각 사케가 생산되는 지역의 역사, 문화, 음식, 도기, 잔 등을 연구하고 전파한다. 이들의 활동이 양조장을 자극해 사케 수준이 더 좋아지는 선순환을 이루고 있다. 

    사케용 쌀 야마다니시키(山田錦)를 도정률로 구분해놓은 모습. 80%, 45%, 25%는 도정 후 남겨진 쌀 비율을 의미한다. 25%는 도정률이 75%라는 뜻이다. [사진 제공 · 명욱]

    사케용 쌀 야마다니시키(山田錦)를 도정률로 구분해놓은 모습. 80%, 45%, 25%는 도정 후 남겨진 쌀 비율을 의미한다. 25%는 도정률이 75%라는 뜻이다. [사진 제공 · 명욱]

    또 일본은 1991년 사케 등급 제도를 폐지했다. 그 대신 쌀 도정 정도에 따라 구분했다. 50% 이상 도정하면 ‘다이긴죠(大吟醸)’, 40% 이상은 ‘긴죠(吟醸)’, 30% 이상은 ‘혼죠조(本醸造)’라고 명기한다. 쌀알의 외피에는 단백질, 지방, 비타민 등이 있는데 이 부분이 없어야 과실향이 풍부해지고 맛은 더 부드러워진다. 한편 알코올, 감미료를 전혀 첨가하지 않고 순전히 쌀로만 만든 사케에는 ‘준마이(純米)’라는 문구가 추가로 붙는다. 감미료 등을 사용해 맛을 내면 일반 사케라는 의미로 후츠슈(普通酒)라 한다. 양조용 알코올을 많이 쓴 경우에는 ‘합성 청주’라고 표시한다. 소비자가 헷갈리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현재 일본 사케시장은 고급 사케가 주도하고 있다. 취하는 것이 아닌, 음미하기 위한 술문화가 점점 더 확고해지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고급 사케시장은 대기업이 아닌 중소 양조장이 이끌고 있다.

    술은 긴 호흡으로 접근해야

    일본 사케는 여전히 ‘단순함’의 미학을 추구한다. 주원료가 쌀이고, 중요 발효제인 누룩도 쌀로 만든다. 밀이나 보리가 들어가면 일본 주세법상 ‘잡주(雜酒)’로 분류된다. 또 일본에서는 지금도 대부분 겨울에만 사케를 빚는다. 남성들이 합숙 생활을 하면서 술을 빚다 보니 여성은 아예 사케 양조장 출입이 금지되던 시절도 있었다. 

    한국 술은 다르다. 자유로움이 넘친다. 어머니들은 막걸리를 빚으며 봄에는 진달래를, 가을에는 국화를 넣었다. 우리에게도 ‘100번 씻는다’라는 뜻을 가진 ‘백세(百洗)’가 있는데 일본의 도정에 해당한다. 우리에게 좋은 술문화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단지 일본처럼 발전시키지 못했을 뿐이다. 

    최근 한국 양조장도 지역적 다양성을 살리면서 직접 누룩을 개발하고 토종 효모를 사용하는 곳이 늘고 있다. 하지만 산업적으로는 여전히 어려운 부분이 많다. 우리 술의 가장 기본이 되는 효모, 술 원료가 되는 농산물에 대한 분석, 지역 음식 및 문화와 결합한 술문화가 번성하길 염원해본다. ‘술은 긴 호흡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명제를 잊지 않는다면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다.

    특색 있는 일본 사케 4종
    도정률 99%, 키위 효모 등 개성 뚜렷

    최근 일본 북서부 니가타현과 야마가타현으로 사케 여행을 다녀왔다. 이 지역에서 뚜렷한 개성으로 주목받고 있는 사케 4종을 소개한다. 모두 국내로 수입되지 않거나 수입 절차를 밟고 있어 쉽게 구할 수는 없지만, 일본 여행길에 이들 사케를 찾아보자.

    고시노간바이 초특선(越乃寒梅 超特選) 

    니가타 지역의 대표 사케. 일본 지역 술의 명성을 이끈 브랜드 고시노간바이의 최고급 제품이다. 70%를 도정한 양조용 쌀 야마다니시키(山田錦)와 니가타의 쌀 고햐쿠만고쿠(五百萬石)를 배합해 만들었다. 음식과 잘 어울리는 식중주를 표방하는 전통파 사케다. 섭씨 1도의 낮은 온도에서 2년간 숙성시킨다. 다양한 과실향과 곡물향, 그리고 목 넘김 이후 은은한 향이 일품이다. ‘초특선’이란 일본 사케의 옛 최고급 등급을 나타내는 말. 

    원료 및 도정률 야마다니시키와 고햐쿠만고쿠, 70% / 효모 일본양조협회 효모 17호 / 알코올 도수 16도 / 향미 은은한 과실향과 담백한 쌀 맛 / 음용 온도 15도 전후의 뭉근한 온도에서 가장 좋은 향이 난다. / 일본 현지가 7000엔

    긴코이(錦鯉) 

    중국 ‘후한서(後漢書)’에 따르면 황하강 급류에 용문(龍門)이라는 폭포가 있는데 이를 뛰어넘은 잉어가 용이 됐다는 전설이 있다. ‘등용문(登龍門)’이란 말이 여기서 생겼다. 긴코이는 폭포를 넘어 용이 된다는 뜻을 담아 축하주로 널리 사용된다. 특이하게도 어떤 쌀과 효모를 썼는지 공개하지 않아 소비자의 궁금증을 유발한다. 술 색깔로 잉어를 표현했고, 상자에 인쇄한 잉어 그림의 수준이 뛰어나다. 이런 디자인의 혁신성을 인정받아 홍콩에서 열린 아시아디자인상에서 동상을 수상했다. 니가타현의 이마요쓰카사 주조장에서 생산한다. 

    원료 및 도정률 일본 국내산 쌀, 50% / 효모 비공개 / 알코올 도수 17도 / 향미 감귤계의 다양한 과실향과 묵직한 끝 맛이 공존 / 음용 온도 15도 전후 / 일본 현지가 6000엔

    고묘(光明) 

    약 200년 역사를 가진 야마가타현 다테노가와주조에서 생산한다. 현을 대표하는 양조용 쌀 야마기타산 데와산산(山形県産出羽燦々) 품종을 99%나 도정해 만든다. 주류총합연구소에서 개발한 과실향이 많이 나는 1801호와 야마가타KA라는 효모를 사용한다. 물처럼 흐르는 지극히 부드러운 맛과 쌀 발효에서 과실향의 ‘끝판왕’을 느낄 수 있다고 제조사는 설명한다. 

    원료 및 도정률 야마가타현 데와산산 쌀, 99% / 효모 협회 1801호, 야마가타KA / 알코올 도수 15도 / 향미 물처럼 흐르는 맛, 풍부한 과실향 / 음용 온도 5도 전후 / 일본 현지가 10만8000엔

    신록 죠젠미즈노고토시 쥰마이(新録の上善如水 純米) 

    ‘세상 이치는 물과 같이 흘러야 한다’는 노자의 도덕경을 추구하는 양조장 시라타키주조의 제품.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소설 ‘설국’을 집필한 니가타 에치고유자와에 위치하며 늘 부드러운 술맛을 추구한다. 최근 출시된 이 제품은 키위에서 효모를 추출, 발효시켰다. 새콤하고 향긋한 키위향이 나는 것이 특징으로 4월 한정판 제품. 

    원료 및 도정률 일본 국내산 쌀, 40% / 효모 키위 효모 / 알코올 도수 8~9도 / 향미 새콤달콤과 부드러움 두 가지를 간직한 맛 / 음용 온도 10도 전후 / 일본 현지가 1300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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