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74

2017.02.08

그냥 좋은 장면은 없다

갈망하는 수직선

하늘 향해 뻗은 무언의 과시와 위엄

  • 신연우 아트라이터 dal_road@naver.com

    입력2017-02-03 16:3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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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때 서울 여의도 ‘63빌딩’(현 63스퀘어)에 다녀온 것이 자랑거리이던 시절이 있었다. 세월이 흘러 63빌딩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빌딩이라는 타이틀을 잠실 롯데월드타워&롯데월드몰에게 물려줬다. 555m, 123층에 달하는 이 초고층빌딩은 현재 개장 준비에 분주하다. 이렇게 높은 빌딩도 세계 빌딩을 통틀어 순위를 매기면 6위에 그친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빌딩은 두바이의 부르즈 할리파(Burj Khalifa)다. 829.84m, 162층에 달하는 전체 높이는 학자들이 추측하는 바벨탑보다 10배가량 높다고 한다. 하늘에 도전하는 인간의 오만함을 벌하려던 신의 뜻이 통하지 않은 것일까. 높은 세계를 탐하는 인간의 욕망은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다. 하늘에 닿을 듯 말 듯 높이 솟은 마천루(摩天樓·skyscraper)는 나라와 도시의 자존심이 됐다. 마천루가 최고 상징물로 당당히 자리 잡기 위해서는 필요한 조건이 있다. 다른 도시, 다른 나라의 어느 건물보다 더 높아야 한다는 조건이 그것이다. ‘~보다’ ‘더’라는 조사와 부사가 붙는 비교급의 문구가 마천루를 더욱 가치 있는 존재로 만드는 셈이다.



    군중을 압도한 슈페어의 빛기둥

    몇 년에 한 번씩 세계 최고 기록을 경신하며 하늘에 더욱 가까워지는 빌딩은 갈망하는 수직선이다. 본래 수직선은 위를 향하는 본능이 있다. 낮은 수직선은 수직선이라기보다 그저 아래에 머무는 짧은 선이다. 위로 향하는 성장 본능에 충실한 선을 수직선으로 인정한다. 높이는 수직선의 가치를 판가름하는 중요한 요소이면서 수직선 고유의 외적 성질을 드러내는 두드러진 특징이다. 하늘을 보고 올라가는 일편단심의 방향성으로 수직선 끝에 무엇이 있는지 궁금해진다. 무엇인가 좋은 것이 있으리라는 막연한 동경으로 수직선을 바라본다.

    히틀러의 신임을 얻었던 나치의 건축가 알베르트 슈페어(Albert Speer·1905~81)는 수직선을 심리적으로 활용했다. 그가 연출한 뉘른베르크 전당대회(1936)의 풍경은 빛으로 탄생한 수직선의 향연이었다. 슈페어 스스로 ‘가장 아름다운 세계 최초 빛의 건축’이라 칭하며 감동한 빛기둥의 장관은 그 자리에 모인 수많은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빛의 대성당(Cathedral of Light)’이라 부르는 공간 연출에 대해 슈페어는 자신의 회고록에 이렇게 써놓았다.



    “12m 간격으로 비행장 주위에 늘어선 130대의 가늘고 긴 광선은 6000, 8000m 상공까지 닿아 빛의 해면(海面)을 만들어냈다. 광선은 무한으로 뻗어나가 외벽의 열주(列柱)가 거대한 공간을 이루어내는 것을 느꼈다. 때때로 빛다발 가운데로 구름이 통과하면 장대한 광경에 초현실주의적 비현실감이 더해졌다.”(‘알베르트 슈페어의 기억 : 히틀러에 대한 유일한 내부 보고서’ 중에서/ 마티/ 2016)

    그리스 신전처럼 일렬로 늘어선 수직의 빛기둥이 밤하늘을 뚫고 올라가 사라지는 장관이 종교적인 경외감을 불러일으킨다. 수직선은 군중을 내려다본다. 하늘에 닿은 수직선은 하늘과 동등한 가치를 가지니 우러러보라고 압박한다. 당시의 기록 사진만 봐도 전당대회에 모인 사람들이 느꼈을 압도감이 상상된다. 줄지어 선 수직선의 위엄은 슈페어의 자부심을 부추기기에 충분했다. 감히 경쟁할 수 없는 다른 차원의 힘을 과시했다. 상대를 제압하고 마음대로 조정하겠다는 무언의 지배력이 과장과 과시의 수직선을 창조했다.

    수직선의 과시는 하이힐에서도 나타난다. 하이힐을 신으면 옷맵시가 살아나 왠지 성공한 커리어우먼이 된 듯한 만족감이 든다. 육체의 피곤을 감수하면서까지 하이힐을 선택하는 이유는 그것을 통해 얻는 자부심이 더 크기 때문이다. 독일 구두회사 다이히만(Deichmann)의 광고 시리즈는 하이힐을 신으라고 설득한다. 하이힐 뒷굽을 클로즈업한 장면과 함께 작은 글씨를 넣었다.



    하이힐에 숨은 욕망

    ‘Men over 180cm earn 10% more money. Go get them!(180cm 이상의 남성이 10% 더 많은 돈을 벌어들입니다. 가서 잡아요!)’ ‘80% of all top managers are over 180cm tall. Go get them!(최고 관리자의 80%가 180cm 이상입니다. 가서 잡아요!)’ ‘A promotion get men over 180cm 1.3 times faster. Go get them!(180cm 이상의 남성이 승진을 1.3배 더 빨리합니다. 가서 잡아요!)’

    신체 조건과 사회적 성과를 동일시하는 직설화법에 놀라면서 한편으로는 민망한 기분이 든다. 성공한 남자와 잘 지내려면 하이힐을 신으라며 여성의 숨은 욕망을 대놓고 들춰내는 이 광고는 한 단계 높은 곳으로 올라가고 싶다면 수직선을 붙들라고 유혹한다.

    사람도 하나의 수직선이다. 점으로 태어나 수평을 기어 다니다 수직으로 서서 하늘을 향해 올라가고 때가 되면 줄어들어 다시 수평에 눕는다. 예전 일본 도쿄에서 가장 높은 전망대에 올라 야경을 본 적이 있다. 수직선의 끝에서 본 풍경은 붉은 그림을 그리는 하늘 아래 수평선이었다. 거대한 자연이 만든 경이로움 앞에 마음 깊은 곳에서 겸허함이 우러나왔다. 수직선 위에 올라 얻은 것은 자부심이 아니라 겸손이었다. 이를 배우고자 수직선을 타고 올라갔던 것일까. 그러나 다시 내려온 수직선 아래에서 마음 한편에 숨겨둔 욕망이 은근슬쩍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가 했던 유명한 기도처럼 말이다. “주여, 순결과 금욕을 주소서. 하지만 지금 말고 나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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