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80

2017.03.22

김민경의 미식세계

자연에 가까운 맛이 최고의 음식

숲과 호수의 나라 핀란드

  • 푸드칼럼니스트 mingaemi@gmail.com

    입력2017-03-20 10:5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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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사람들의 관심을 모으는 단어가 있다. 편안함, 따뜻함, 안락함 등을 뜻하는 덴마크어 ‘휘게(Hygge)’다. 자신의 내면과 주변에서 행복을 발견하고 실천하는 덴마크인의 라이프스타일 자체를 지칭하는 말이다. 덴마크에 휘게가 있다면 핀란드에는 ‘휘바휘바(Hyvahyva)’가 있다. 2000년대 어느 껌 광고에 등장한 이 말은 ‘잘했다’는 의미로, 우리에게 ‘자일리톨’이라는 낯선 단어를 제대로 각인했다. 자일리톨은 핀란드 자작나무에서 추출한 천연 감미료다. 핀란드는 세계 최대 자일리톨 수출국이다.

    핀란드 인구는 우리나라의 10분의 1 정도지만 국토 넓이는 3배가 넘는다. 국토의 70%가 삼림이며, 인구의 20%가량이 ‘위생 여권’을 소지하고 있다. 핀란드에서 농부가 되려면 일정한 기준의 시험을 통과해 위생 여권을 발급받아야 한다. 즉, 인구의 5분의 1이 농부인 셈이다. 북극지방에 있으니 겨울에는 영하 40도까지 내려갈 정도로 춥다. 여름은 무덥지 않고 쾌적한 편이다. 더위와 추위만큼 계절을 뚜렷하게 구분해주는 것이 여름 백야(白夜)와 겨울 흑주(黑晝)다. 여름이면 밤 11시까지 날이 밝은 하얀 밤, 겨울이면 오후 2~3시부터 어둑어둑해지는 검은 낮이 이어진다. 핀란드에서 자라는 열매, 채소, 곡물은 춥고 길며 태양빛이 부족한 겨울을 나기 위해 백야 기간에 엄청난 에너지와 영양을 비축해야 한다. 당연히 맛과 향이 진하고 영양도 뛰어나다. 그중 야생 베리류가 유명하다. 한국에서 맛보기 어려운 빌베리, 링곤베리, 클라우드베리를 주스, 요구르트, 디저트, 잼, 알코올음료, 수프 등으로 맛볼 수 있다.

    핀란드의 개성 넘치는 빵도 놓칠 수 없다. 식사와 곁들이는 다크 호밀빵, 호밀과 쌀을 섞은 반죽에 버터나 달걀 등을 곁들이는 카렐리안 페이스트리(karelian pastry), 카다멈의 독특한 향을 살린 풀라(pulla)가 대중적이다. 디저트로는 향긋하고 달콤한 시나몬 롤, 클라우드베리 잼을 올려 먹는 쫄깃한 브레드 치즈가 대표적이다. 글루텐 프리나 락토 프리 제품도 다양해 소화장애가 있는 사람도 입맛대로 골라 즐길 수 있다.



    핀란드 사람도 우리만큼 돼지고기를 즐겨 먹는다. 주로 큼직하게 썰어 허브나 여러 향신료로 밑간을 한 뒤 오븐에 넣어 장시간 조리한다. 최근에 맛본 것은 화이트브레드, 파슬리, 코리엔더, 버터를 페이스트로 만들어 덩어리 목살에 붙인 다음 오븐에서 구운 요리다. 애플 머스터드소스를 곁들여 먹는다. 사과의 식감이 살아 있는 달착지근한 소스와 버터향 허브, 고기의 풍미가 한데 어우러져 기분 좋게 입안을 가득 채운다. 고기 요리는 크림치즈를 넣어 부드럽게 으깬 감자, 깍두기처럼 큼직하게 썰어 익힌 비트, 상큼한 양파나 양상추 절임, 살짝 익힌 녹색콩 등과 함께 즐긴다. 오븐 요리 외에도 미트볼, 소시지, 햄 같은 가공식품도 즐겨 먹는다.



    핀란드는 국가적으로 사육 돼지에 성장촉진제를 놓는 것을 금지한다. 항생제는 예방이 아닌 치료 목적으로만 사용해야 해 극히 제한적으로 투여한다. 돼지 사육은 방목을 기본으로 하며, 인위적인 꼬리 자르기를 하지 않는 등 스트레스 제로(0)에 가까운 환경에서 기른다. 돼지에게는 미안하지만, 사람이 안심하고 먹기에 딱 좋은 식품이다. 현지에 간다면 순록고기는 물론, 유네스코에서 인정한 가장 깨끗한 물로 만든 다양한 맥주와 롱 드링크(긴 잔에 나오는 시원한 음료)도 맛봐야 한다. 밤하늘의 오로라, 자정의 선셋, 산타할아버지, 무민 친구에게 건배를 뜻하는 ‘키피스(kippis)’ 혹은 ‘스칼(skal)’이란 말을 건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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