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12

2017.11.08

김민경의 미식세계

가을 바람과 볕으로 가득 찬 맛

김장철 별미, 무청 시래기

  • 입력2017-11-07 15:43:28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삶은 무청을 바람과 햇볕에 바삭하게 말리면 시래기가 된다.

    삶은 무청을 바람과 햇볕에 바삭하게 말리면 시래기가 된다.

    가을에는 어디를 봐도 곱고 무엇을 봐도 가득함이 느껴진다. 열매는 울룩불룩 살이 오르고 뿌리에도 강인한 기운과 영양이 가득 찬다. 나무는 잎을 떨어뜨리기 전 한껏 고운 빛을 내고 매끈하게 파란 하늘에서는 뜨거운 햇살이 골고루 쏟아진다. 이토록 화사하고 화려한 가을에 내가 가장 반갑게 맞는 것은 푸르죽죽하고 거무튀튀한 무청 시래기다. 

    김장할 때 부드러운 무청은 소금에 절여 김치로 담가 먹지만 억센 것은 쓸 수가 없다. 이것을 따로 모아 삶아서 물기를 꽉 짠 다음 햇볕과 바람에 말리면 무청 시래기가 된다. 이때 배추 겉잎도 무청과 같이 시래기로 만들지만 무청의 독보적인 맛은 따라올 수 없는 것 같다. 바삭바삭하게 말린 무청 시래기는 다음 김장 때까지 두고 먹을 수 있다. 이 푸석푸석한 묵은 재료를 음식에 넣으면 남다르게 구수한 맛과 향이 살아난다. 게다가 어떤 재료와도 잘 어울리며, 고기나 해물과 요리하면 색다른 감칠맛을 선사한다.

    시래기 고등어조림

    시래기 고등어조림

    무청 시래기밥.

    무청 시래기밥.

    시래기는 먹기 전 다시 끓는 물에 삶아야 한다. 미지근한 물에 하루 정도 불리면 삶는 시간을 줄일 수 있다. 가끔 유난히 질긴 시래기가 있는데 삶은 물에 담가 그대로 식히면 한결 부드러워진다. 삶은 시래기는 맑은 물이 나올 때까지 두세 번 찬물에 헹군 뒤 물기를 가볍게 짠다. 시래기 표면의 섬유질을 벗겨내기도 하는데 적당한 크기로 썰어 먹는다면 그대로 둬도 된다. 말린 나물은 물에 불리면 생각보다 양이 많아진다. 이럴 때는 한 번 먹을 양씩 나눠 냉동 보관하면 된다. 

    시래기의 제맛은 밥으로 지어 먹을 때 비로소 우러난다. 먹기 좋게 썬 시래기에 들기름과 집간장을 넣어 조물조물 무쳐 간을 한 다음 쌀과 함께 밥을 짓는다. 시래기 양념은 집집마다 다르다. 된장을 넣기도 하고 갖은 양념을 해 살짝 볶아 밥을 짓기도 한다. 다 된 밥은 양념간장을 넣어 비벼 먹는다. 이때 야무지게 속속들이 비비는 것보다 먹을 때마다 조금씩 양념간장을 얹어 쓱쓱 섞어 먹는 맛이 더 좋다. 다소 투박해 보이지만 구수하고 깊고 정겨운 맛이 진하게 난다. 

    밥 다음에는 볶음이다. 밥을 할 때 넣은 양념에 다진 마늘, 다진 파, 고춧가루 등 좀더 자극적인 재료를 살짝 더한 뒤 조물조물 주물러 양념이 배게 잠시 둔다. 기름을 두르거나 물을 자작하게 부어 달달 볶는다. 이때 물을 많이 붓고 간을 맞춰 오래 끓이면 조림처럼 먹을 수 있다. 입맛 없는 여름에는 오이지 생각이 나듯, 겨울에는 김장 김치와 시래기볶음만 한 것이 없다. 매일 먹는 국물 요리에도 시래기를 숭덩숭덩 썰어 넣고 끓이면 완전히 다른 맛이 난다. 된장, 청국장, 맑은 국, 매운 국에 두루 어울린다. 시래기를 좀 더 요리답게 해 먹고 싶다면 싱싱한 고등어와 무를 넣은 뒤 칼칼한 양념을 풀어 간이 배도록 푹 끓여 조린다. 돼지 등갈비찜이나 감자탕, 쇠갈비를 넣고 뭉근하게 조리는 갈비찜에도 어울린다. 



    김장을 마치고 나온 부속물이라기엔 과분하게 쓸모 있고 맛있는 것이 무청 시래기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식재료도 알고 보면 다 제격이 있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