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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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경의 미식세계

몇 날 며칠의 기다림으로 제맛이 밴다

상어고기로 만드는 돔배기

  • 푸드칼럼니스트 mingaemi@gmail.com

    입력2017-10-17 11:5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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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집은 제사가 많았다. 설과 추석 차례를 포함하면 두 달에 한 번꼴로 상을 차렸다. 그중 할아버지 제사 때 먹을거리도, 사람도 가장 풍성했다. 부산에 사는 작은아버지와 고모가 갖은 해산물을 양손 가득 들고 왔기 때문이다. 윤기 자르르한 각종 생선, 작은 손에 가득 차던 참소라, 꽃다발 같은 문어, 반듯한 모양의 돔배기, 보랏빛 군소, 꾸덕꾸덕하게 말린 생선, 각종 젓갈과 미역 등 바다의 맛이집 안에 그득했다.

    그중 단연 인기 있는 품목은 돔배기였다. 제사상에 올리는 돔배기는 긴 꼬치에 반듯하게 꽂아 기름에 지져 낸다. 도톰하고 간간하며 무엇보다 가시 하나 없는 맛 좋은 살코기를 흰밥에 올려 먹으면 밥이 움푹움푹 줄어든다. 깨소금을 잔뜩 뿌린 집간장에 살짝 찍어 안주로 먹어도 최고다. 일 년에 두어 번밖에 맛볼 수 없으니 귀한 만큼 꿀맛이었다. 제사상에 올리고 남은 돔배기는 냉동해뒀다 찌거나 달걀물을 묻힌 뒤 구워 반찬으로 먹었다. 조리 후 차게 식어도 비리지 않고 굳어도 맛있는 신통방통한 생선이 바로 돔배기다.

    돔배기는 상어고기다. 귀상어, 청상아리, 참상어로 만든다. 상어 머리와 꼬리, 내장을 제거해 급속 냉동한 후 적당한 크기로 썬다. 이것을 상인들이 손질하고 염장해 판매한다. 간고등어만큼 돔배기도 소금 간이 중요하다. 냉동된 고기를 물에 헹궈 껍질을 벗긴 후 도톰하고 네모나게 썰어 굵은소금을 뿌려 간을 맞춘다. 여름에는 하루, 선선할 때는 2~3일 소금 간을 했다 물에 헹궈 보관한다. 날씨에 따라 염장 시간을 달리하고 때로는 살짝 말린다. 간이 배면서 숙성도 함께 돼 특유의 향, 육질, 맛을 갖는다.

    제사용으로 반듯하게 손질하면 자투리 고기와 껍질이 남는다. 이 또한 별미다. 상어껍질을 살짝 데친 다음 거친 솔이나 수세미로 박박 문질러 꺼끌꺼끌함을 없앤다. 이것을 알맞게 삶아 굵게 채 썰어 고추장 양념에 무쳐 먹는다. 꼬들꼬들함은 돼지껍데기 부럽지 않으며 씹을 때마다 구수한 맛이 은은하게 입안에 번진다. 콜라겐과 단백질이 풍부한 껍질을 푹 끓이고 굳혀 묵으로도 만들어 먹는다. 자투리 상어고기와 발라 낸 연골을 무나 호박과 함께 뭉근히 우리면 상어탕국이 된다. 구수하고 뽀얀 상어탕국은 먹고 나면 입술이 쫀득쫀득하게 맞붙을 만큼 진국이다. 요즘에는 자투리 살코기를 튀겨 탕수육 소스를 부어 먹기도 한다.

    돔배기는 싱싱한 생선을 맛보기 힘들었던 경상도 내륙의 맛이다. 바다로부터 몇 날 며칠을 걸어야 도착하는 내륙이니 소금에 절여 숙성된 이 생선의 감칠맛이 얼마나 반갑고 귀했을까. 제사상에 육고기는 빼도 돔배기는 꼭 올릴 만큼 중한 음식이다. 요즘에는 아침에 주문한 물건이 오후면 내 손에 도착한다. 그래도 돔배기를 주문하는 일은 잘 없다. 돔배기는 영천, 경주, 포항 등에 있는 커다란 재래시장에서 사 먹어야 제맛, 제값을 하는 것 같아서다. 문득 모든 것이 빠르고 편리해져 더는 돔배기 같은 음식의 탄생은 없는가라는 아쉬운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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