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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자의 문화유산 산책

샅바 매고 상투 튼 고구려 장사들

각저총 속 씨름 그림

샅바 매고 상투 튼 고구려 장사들

샅바 매고 상투 튼 고구려 장사들

1935년 제작한 각저총 벽화의 모사도.[사진 제공 · 전호태 교수]

지금으로부터 26년 전 일이다. 한중 수교 1년 전인 1991년 5월, 아시아사학회 학술회의에 참석한 남북한과 일본 학자들은 광개토대왕비를 본 뒤 1km 거리에 있는 각저총을 방문했다. 중국 지린(吉林)성 고고문물연구소의 왕건군 교수 안내로 일반인에게 공개하지 않는 각저총에 들어갔다. 지린성 사회과학원에서 산소용접기를 가져와 폐쇄된 철문의 자물쇠를 부수고 발전기를 돌려 전등을 켰다. 일본 니시타니 교수와 에가미 교수는 “고구려 고분은 보존을 위해 문을 용접해 밀폐했어요. 또 중국인들이 벽화 횟가루를 만병통치약으로 믿어 떼어가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이기도 했죠”라고 설명했다.

사진 촬영은 금지됐다. 5세기에 축조된 각저총 주실 동쪽 벽에는 환상적인 연리수(連理樹) 아래 두 역사가 맞붙어 씨름하는 그림이 있다. 나무에는 새 네 마리가 앉아 있고, 짧은 반바지에 샅바를 맨 두 씨름꾼은 상투를 튼 모습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씨름 그림이다.

그 안에서 고고학자 김원룡 교수의 눈빛이 빛났다. 김 교수는 벽화가 떨어져 나간 부분을 주시하며 오래 머물렀다. 심판인 노인은 지팡이를 짚은 채 구부정하게 서 있고, 한 장사의 허리 오른쪽에는 샅바가 꼬여 있다. 하지만 왼쪽 장사는 샅바가 보이지 않는다. 요즘 씨름은 왼씨름이지만 각저총 그림은 최근까지 전라도에서 행해지던 오른씨름이다. 전호태 교수와 이현혜 교수는 큰 눈과 매부리코를 한 장사가 서역에서 온 전문 씨름꾼이 아니냐고 했다.

현실 북쪽 벽화에는 무덤 주인이 장막을 친 방 안에서 두 부인의 시중을 받는 그림이 있었다. 전등을 비춰 이 벽화를 세밀히 관찰한 김원룡, 최영희 교수는 “벽면 전체를 코팅 처리해 색이 선명하군요. 천장 남동벽의 삼족오는 떨어져 나간 붉은 칠 위에 덧칠을 했어요”라고 말했다. 북한의 박진욱 사회과학원 고대고고학연구실장과 강인숙 역사연구소 고대사연구실장도 이를 확인했다. 왕건군 교수는 “1980년대 보수할 때 그렇게 된 것 같아요”라고 설명했다.

고분벽화 전공자인 전호태 교수는 고분의 씨름 그림을 장의(葬儀) 미술이라고 했다. 씨름은 사자가 타계로 들어가는 통과의례로, 죽은 자가 살았던 현실과 앞으로 살아갈 내세를 반영한 표현이라는 것이다. 이런 학설에 조선 말 박규수의 문집 ‘환재집’에 나오는 ‘사당에서 굿을 하고 씨름판을 열어 춤을 추며 즐긴다’는 대목을 근거로 반론을 제기하는 이도 있다. 몽골 나담축제의 씨름처럼 우리 씨름도 축제의 일부라는 것이다.

당시 취재기자로 각저총을 보고 온 필자에게 감회 깊은 일이 일어났다. 한국을 대표하는 세시풍속 놀이인 씨름이 1월 4일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 국가무형문화재 제131호로 지정된 것이다. 필자는 문화재위원으로서 조사보고서를 보며 각저총 안의 감동적인 분위기를 회상했고, 지금은 고인이 된 김원룡, 최영희 교수를 비롯한 한국 일행 16명을 떠올렸다.

씨름은 두 사람이 샅바를 맞잡고 힘과 기술로 상대를 넘어뜨려 승부를 겨루는 경기다. △형태가 활발히 전승되고 있는 점 △고대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유물, 문헌, 그림 등에서 역사성이 명확한 점 △씨름판 구성과 기술에 고유성이 있는 점 등에 비춰 무형문화재로서 가치가 있다. 조선 말기 화가 유숙이 그린 ‘대쾌도’는 자주 볼 수 없는 그림이지만 국가무형문화재 씨름의 가치를 확실히 보여준다.
샅바 매고 상투 튼 고구려 장사들

씨름을 묘사한 유숙의 ‘대쾌도’(왼쪽)와 김홍도의 단원풍속도첩 속 ‘씨름’. [사진 제공 · 국립중앙박물관]



입력 2017-02-03 16:38:48

  • 문화재청 문화재위원 sjchoi540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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