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32

2016.04.06

최성자의 문화유산 산책

벙커시설이 근현대사의 내밀한 공간으로

국립고궁박물관 수장고

  • 문화재청 문화재위원 sjchoi5402@naver.com

    입력2016-04-04 14:3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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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놀라운 경험이었다. 박물관 수장고가 강의실로 변했다. 1998년 가을 미국 워싱턴 스미스소니언 몰의 새클러 박물관 지하 수장고에서 중국미술사 강의를 들었다. 담당 학예사가 꺼내서 펼쳐 보인 중국 그림은 다양했다. 크고 작은 그림들에서 각 시대의 화풍이 확연히 비교됐다. 지난해 여름 방문한 영국 런던 빅토리아 앨버트 박물관에선 엄청난 도자기들을 6층 수장고형 전시실에서 볼 수 있었다. 온갖 채색 도자기가 가득 들어찬 진열장 속에서 한국 도자기도 한자리를 차지했다. 언제든 주제별로 모아 설명문만 곁들이면 그대로 특별전이 될 수 있었다. 이곳에서 수장고는 창고 개념이 아니었다. 특별전시실인 동시에 교육장이 되기도 했다. 그 넓이도 전시실과 비교해 작은 규모가 아니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수장고가 교육이나 문화체험에 활용되고 있다. 수장고를 개방형으로 설계해 관람객이 볼 수 있도록 만든 박물관이 2013년 11월 개관한 전남 국립나주박물관이다. 전시실 벽에 커다란 유리창을 설치해 대형 옹관이 가득한 수장고를 볼 수 있게 했다. 여기선 수장고가 관람객의 금지구역이 아니라 친근한 전시공간이었다.

    서울 국립고궁박물관이 3월 30일 수장고를 처음으로 일반에 공개했다. 비록 10명만 수장고를 둘러본 제한적 공개였지만, 유물의 보존과 안전이 무엇보다 중요한 국립박물관 특성상 파격적인 일이었다. 최종덕 국립고궁박물관장은 “유물 보호에 지장이 없는 선에서 열린 박물관을 지향해 수장고를 개방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8월과 9월, 그리고 12월에도 신청자를 안내해 수장고와 보존과학실을 70분간 공개한다.

    국립고궁박물관 수장고는 특별한 역사를 지니고 있다. 한때 조선총독부와 중앙청의 지하공간이었고, 국립중앙박물관이 용산으로 이전하기 전 수장고로 사용한 장소였다. 1989년 당시 한병삼 관장의 안내로 들어간 지하공간은 내부가 거칠었다. 지하 11m에 위치한 공간은 천장 높이가 3m쯤 됐고 방 하나가 기획전시실 크기였다. 중앙청 건물을 인수한 정양모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중앙청 동쪽 지하에는 70년대 초 박정희 대통령이 비상시에 대비해 만든 대규모 벙커 시설이 있어요. 또 서쪽 건물 지하에는 일제 잔재인 방공호와 작은 방들이 있었죠.” 건물 1층의 좁은 계단이 일제가 파놓은, 지하로 내려가는 통로였다. 그 끝에 두꺼운 철문이 달린 100m2(30여 평) 남짓한 규모의 방이 있다. 모래를 채워 방음을 시도한 흔적으로 봐서 조선인 사상범을 심문한 취조실로 사용하지 않았을까 추측한다. 벙커는 수장고로 사용하는 데 문제가 없었다. 지건길 전 국립중앙박물관장도 방수 처리 등 지하공간이 완벽해 수장고로 활용하는 데 이상이 없었다고 말했다.

    이 벙커시설과 국립고궁박물관 사이는 꽤 멀다. 여기에 지하로 300m 거리의 길이 뚫려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지하벙커를 수장고로 활용하고자 연결 통로를 만든 것이다. 지금 국립고궁박물관 수장고는 이 길로 오가게 된다. 중앙청 중정처럼 중앙홀이 있는 좌우로 16개 큰 방으로 구성된 수장고는 볼만하다. 마루는 너도밤나무로 마감하고 오동나무 장을 사면 벽에 배치해 여닫이문을 통해 유물을 안치하는 방을 만들었다. 모두 온도와 습도가 적절히 조절된다. 그 안에 보존한 갖가지 궁중유물 중에는 작은 장에 담은 어보나 귀중한 한적본도 보인다.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수장고로 가는 통로는 경복궁 흥례문 밑을 지나가고, 수장고는 모두 경복궁 지하에 위치한다. 이 수장고는 조선왕조 500년의 귀중한 유물을 보존하는 저장고일 뿐 아니라, 한국 근현대사의 특별한 공간이기도 하다. 따라서 수장고 관람은 경복궁 땅 아래로 들어온 근현대사의 내밀한 공간을 방문하는 것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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