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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자의 문화유산 산책

“몸으로 익혀 몸으로 전한다”

경주 두산리 ‘명주짜기’ 무형문화재 지정

“몸으로 익혀 몸으로 전한다”

“몸으로 익혀 몸으로 전한다”

경북 경주 전통명주전시관에서 한자리에 모인 두산손명주연구회 회원들.[사진 제공·두산손명주연구회]

경북 경주 양북면 두산마을은 전국에서 유일하게 명주짜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곳이다. 이 마을에서는 50~80대 부녀자들이 농사일 틈틈이 명주를 짠다. 우리나라에서 명주짜기 모든 과정을 수작업으로 하는 곳은 두산마을뿐이다.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어머니가 딸에게, 또는 동서지간 전승해왔다. 

명주는 누에고치의 실올을 풀어내 만든 견사로 짠 옷감으로, 흔히 비단이라고 부른다. 우리나라의 양잠 기록은 고조선 때부터 나온다. 삼국시대를 거쳐 고려와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널리 장려해 누에치기는 농상(農桑)처럼 농업을 상징하는 용어가 됐다. 하지만 근대 들어 방직공장에서 명주를 대량 생산하면서 수작업 기술이 사라져갔다. 베틀에 앉아 명주를 짜는 게 매우 힘든 노동이라 배우려는 사람도 없었다.

1988년 4월 1일 정부는 ‘명주짜기’를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하고, 경북 성주의 조옥이 여사(1920~2007)를 기능보유자로 선정했다. 그러나 기능보유자가 별세한 이후 기능 전승은 다시 어려움에 처했다. 문화재청은 이후 전국을 대상으로 공모해 올해 4월 20일 ‘두산손명주연구회’를 국가무형문화재 제87호 ‘명주짜기’ 보유단체로 인정했다.

김경자(58) ‘두산손명주연구회’ 대표는 감회가 남다르다. 두산리로 시집와 35년 전부터 마을 할머니들로부터 명주짜기 전 과정을 익혔다는 그는 “이제 매달 지원금을 받아 이 기술을 전승할 수 있게 됐다”며 기뻐했다. 이 마을 주민들은 1996년 ‘손명주 작목반’을 조직해 활동했고, 2002년 단체 이름을 ‘두산손명주연구회’로 바꿨다.

경주시는 2010년 이 마을에 전통명주전시관을 세웠다. 회원들은 여기서 매주 네 번씩 국내외 관광객에게 명주짜기를 시연한다. 명주 직조과정 중 실써기(제사·製絲), 실내리기(해사·解絲), 날실걸기(정경·整經), 풀먹이기(가호·加糊)까지는 공동으로 작업하고, 다음 과정인 베짜기(직조·織造)는 각자 집에서 한다. 실써기는 여러 가닥의 고치 실올을 꼬고 합쳐 명주실을 만드는 것이다.

실내리기는 그 실을 가락에 내려 감는 것을 말한다. 명주짜기에 필요한 누에고치는 청정 뽕나무 재배지역인 경주 서면으로부터 매년 300kg을 공급받고 있다. 김 대표는 “전통 명주짜기 기능은 몸으로 익혀 몸으로 전하는 것”이라며 “누에고치에서 실을 뽑은 다음 베틀로 명주를 짜고 그 천을 염색하는 모든 과정이 인내의 연속이다. 특히 베틀에 오래 앉아 있으면 다리가 붓고 허리도 아프다. 엉덩이에 뾰루지가 생겨 고생할 때도 많다. 그래도 다시 베틀에 앉아 일을 한다”고 했다.

두산손명주연구회 회원 한 명이 짜는 명주는 일 년에 평균 두 필가량으로, 한 필 가격은 80만 원 선이다. 기계로 짜는 명주 가격은 손명주의 3분의 1 수준이다. 이렇게 기계 명주에 비해 가격 경쟁력이 낮지만 손명주만의 독특한 질감 덕에 스카프 재료나 화가들의 화폭 제작용으로 수요가 계속 있다. 간혹 전통 복식 재현 재료로도 판매된다. 특히 명주는 수의 재료로 인기가 있어 윤달이 낀 해에 수요가 많다고 한다.

“몸으로 익혀 몸으로 전한다”

이궁자 두산손명주연구회 회원이 명주짜기를 시연하고 있다(위). 두산손명주연구회 회원들이 누에고치를 손질하는 모습.[사진 제공·두산손명주연구회,사진작가 이동춘]




입력 2017-06-09 18:01:57

  • 문화재청 무형문화재위원 sjchoi540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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