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72

2015.01.19

고전의 매력은 영원하다

뮤지컬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 구희언 주간동아 기자 hawkeye@donga.com

    입력2015-01-19 11: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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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전의 매력은 영원하다
    미국인에게 가장 좋아하는 소설과 영화를 꼽으라고 하면 빠지지 않고 나오는 작품이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다. 이 작품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게 잘록한 허리의 매혹적인 여인 스칼릿 오하라. 1936년 초판 출간 이래 전설적인 판매 부수를 기록하며 이듬해 퓰리처상을 받은 원작이 있지만, 기억에 더 남는 건 1939년 동명 영화 속 비비안 리로 대표되는 스칼릿 오하라의 초록 눈빛과 도도한 표정이다. 줄곧 스칼릿을 ‘아름다움의 대명사’로만 기억했다. 최근 이 작품이 뮤지컬로 만들어졌다는 이야기에 줄거리를 되짚어보고, 그가 ‘어장관리’의 달인이자 미워할 수 없는 악녀였던 사실을 기억해냈다.

    뮤지컬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미국 남북전쟁 전후 남부를 배경으로 정열적인 여인 스칼릿 오하라와 남편 레트 버틀러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원작 줄거리를 따른다. 원작자 마거릿 미첼은 결말을 먼저 써놓고 각 장을 쓴 다음 최종적으로 작품의 첫 장을 쓰는 식으로 소설을 완성했는데, 그렇게 완성한 작품은 1000여 쪽에 달했다. 이렇게 긴 이야기를 다른 장르에서 다루려면 축약을 얼마나 잘했느냐가 관건이다. 뮤지컬은 원작에서 취할 것과 버릴 것을 골라 160분을 빼곡하게 채웠다. 이 과정에서 스칼릿의 감정 변화가 다소 친절하지 못하게 그려지거나 주변 인물의 개성이 감소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따라서 작품을 보러 갈 계획이라면 시놉시스를 머릿속에 꿰고 갈 것을 추천한다.

    한 가지 더 중요한 건 시작부터 끝까지 작품을 이끄는 스칼릿 오하라 역을 흔들림 없이 연기할 배우다. 아시아에서 처음 무대에 오른 이 작품에서는 가수 바다와 소녀시대 서현이 중책을 맡았다. 보는 내내 비비안 리의 잔상이 아른거리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두 배우가 극에 잘 녹아들어 무리 없이 즐길 수 있었다. 특히 서현은 방송에서 보여주던 순진한 이미지를 벗고 남자들의 사랑을 유린하며 사랑을 위해서라면 마음에도 없는 남자와 결혼하고, 오직 생존을 위해 사랑을 이용하는 강렬한 여성상을 연기했다. 그가 부르는 ‘나만의 고독’부터 ‘그런 여자 아니야’ ‘가라앉아’ 등 넘버에 스칼릿의 인생관이 함축돼 있다.

    원작을 읽지 않았다면 이야기 흐름을 따라가기 다소 버겁다는 점과 솔로 곡의 인상이 노예들의 합창보다 약한 건 단점으로 지적되는 부분. 그럼에도 아이돌인 서현의 연기력과 캐릭터 소화력에 대한 비판이 나오지 않는 건 그만큼 그가 배우로서 한 뼘 성장했음을 보여준다.

    영화 속 명장면도 그대로 재현했다. 녹색 커튼을 찢어 만든 드레스를 입고 돈을 빌리기 위해 레트를 찾아가는 스칼릿이나 석양을 배경으로 스칼릿의 허리춤을 감싸고 키스를 나누는 레트의 모습도 만날 수 있다. 레트 버틀러 역에는 이 작품이 뮤지컬 데뷔작인 배우 주진모와 뮤지컬 배우 임태경, 김법래가 캐스팅됐다.



    자신의 곁을 떠나는 레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뜰 거야”라는 명대사를 던지는 스칼릿 오하라에 대한 추억 때문일까, 중년 관객이 눈에 많이 띄었다.

    2월 15일까지,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 오페라극장.

    고전의 매력은 영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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