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64

2014.11.24

철없는 왕비(?)의 인생과 사랑이란

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

  • 구희언 주간동아 기자 hawkeye@donga.com

    입력2014-11-24 10:18: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철없는 왕비(?)의 인생과 사랑이란
    외국에서 히트한 작품을 국내에 새로이 들여올 때 제작사는 고민에 빠진다. 원작을 최대한 살려 마니아를 사로잡을 것인가, 국내 정서에 맞게 재창작해 일반 관객의 호응을 얻을 것인가. 이 경계선상에서 EMK뮤지컬컴퍼니는 꾸준히 유럽 뮤지컬의 ‘한국화’에 도전해왔다. 국내에 첫선을 보인 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도 소재와 넘버를 제외하면 이번 한국 공연이 초연이라 해도 될 정도로 새로운 작품이다.

    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의 원작은 엔도 슈사쿠의 동명 소설이다. 소설에서는 왕비와 이름 이니셜(M.A)이 같은 허구의 인물이자 프랑스 빈민가의 여인 마그리드 아르노가 화려한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와 대적하는 인물로 나온다. 원작이 이렇다 보니 해외판 뮤지컬에서도 극을 이끌어가며 클라이맥스를 담당하는 건 아르노다.

    반면 국내판 ‘마리 앙투아네트’는 실존 인물인 앙투아네트를 극의 중심으로 내세우고 그의 인생과 사랑 이야기에 초점을 맞췄다. 1막 초반 앙투아네트가 페르젠을 향한 애틋한 마음을 담아 부르는 솔로곡 ‘The One You See In Me(최고의 여자)’가 새롭게 추가된 것도 이 때문이다. 모험이다. 그도 그럴 것이 잘 만든다면야 나쁠 게 없지만, 잘못하면 본전도 못 찾기 때문이다. 일반 관객에게는 ‘마리 앙투아네트’라는 제목의 뮤지컬을 봤는데 왕비의 비중이 적다면 의아할 테니, 이는 제작사의 현명한 변주로 보인다.

    철없는 왕비(?)의 인생과 사랑이란
    EMK뮤지컬컴퍼니는 4월 루이 14세를 주인공으로 한 뮤지컬 ‘태양왕’을 스토리를 대폭 수정해 국내 무대에 올렸으나 흥행 실패의 쓴맛을 봤다. 그래서일까. 이번 뮤지컬은 칼을 갈고 만든 느낌이다. 이 작품도 ‘태양왕’처럼 작품 뼈대만 가져와 현지화 과정을 거쳤다. 역사를 바탕으로 상상력을 가미해 무리 없이 한 여인의 인생을 즐길 수 있다. 1785년 발생한 ‘다이아몬드 목걸이 사건’도 극적으로 표현됐다. 전 출연진의 화려한 복식과 넘버도 눈과 귀를 사로잡는다.

    역사 속에 화려하고 철없는 왕비로 박제됐던 앙투아네트가 이루지 못한 사랑을 갈구하는 여인으로, 강인한 어머니로 환생한 것처럼 느껴지는 장면도 있다. 앙투아네트 역에 옥주현과 함께 캐스팅된 김소현은 “마리 앙투아네트가 혁명군에게 아들을 빼앗기고 딸에게 노래를 불러주는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공연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빠져들었다. 실제 나도 엄마라 그런지, 그의 삶이 안쓰럽고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남자 배우 위주로 돌아가는 뮤지컬계에서 여배우 2명이 주도해 이끄는 극이 ‘위키드’ 외에 마땅히 없었다는 점에서 이 작품의 등장이 반갑다. “목걸이 사건은 진짜냐” “프랑스 혁명이 궁금하다”는 아이에게 인터미션 내내 프랑스 역사를 들려주는 부모 관객을 보며 문득 한국사에 숨어 있는 보석 같은 인물들을 주제로 한 작품도 더 많이 만나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015년 2월 1일까지, 서울 송파구 올림픽로 샤롯데씨어터.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