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71

2017.01.11

와인 for you

특유의 따뜻함, 언 마음을 녹이다

아르헨티나의 ‘파스칼 토소’

  • 김상미 와인칼럼니스트 sangmi1013@gmail.com

    입력2017-01-09 15:4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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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남미 와인은 칠레산이지만 아르헨티나도 가격 대비 품질 좋은 와인을 많이 생산한다. 아르헨티나는 세계 5위 와인 생산국으로, 남미에서 와인 생산량이 가장 많은 나라다. 16세기 스페인 사람들이 정착하면서 와인을 만들기 시작했으니 와인 역사도 500년에 달한다. 아르헨티나 와인에 생산 가속도가 붙기 시작한 것은 1819년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한 뒤부터다. 이때 유럽에서 이주해온 많은 사람이 다양한 포도 품종과 새로운 양조기법을 가져왔다.

    파스칼 토소(Pascual Toso)도 1880년대 중반 이탈리아에서 아르헨티나로 건너온 이민자다. 그가 정착한 곳은 안데스 산맥 기슭에 위치한 멘도자(Mendoza). 지금 아르헨티나 와인의 60%를 생산하는 지역이다. 와인 집안 출신인 파스칼이 멘도자의 땅과 기후가 포도 재배에 적합하다는 것을 몰라봤을 리 없다. 그는 무역업을 하려던 당초 계획을 포기하고 1890년 멘도자에 위치한 산후안(San Juan) 마을에 파스칼 토소 와이너리를 설립했다.

    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난 1900년대 초 파스칼은 산후안에서 남쪽으로 35km 떨어진 라스 바랑카스(Las Barrancas)의 잠재력을 발견하고 이곳에도 포도밭과 와이너리를 건설했다. 파스칼의 안목은 정확했다. 100년이 지난 지금 라스 바랑카스는 멘도자뿐 아니라 아르헨티나 전역에서도 가장 우수한 테루아르(terroir·토양 및 환경)로 인정받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곳은 사막처럼 메마르고 척박하며 일교차가 크다. 땅이 비옥하지 않으면 포도나무는 넝쿨을 키우는 대신 열매에 양분을 쏟아넣는 데 집중한다. 더운 낮에는 포도 안에 당분을 쌓고 서늘한 밤에는 포도의 산도를 유지한다. 이런 자연환경은 새콤달콤한 향과 농축된 맛을 선물했다.

    라스 바랑카스는 2001년 세계적인 와인 컨설턴트 폴 홉스(Paul Hobbs)를 만나면서 더욱 빛을 발했다. 홉스는 로버트 몬다비(Robert Mondavi)를 비롯해 미국 캘리포니아의 유명 와이너리에서 경험을 쌓으며 잔뼈가 굵은 사람이다. 그는 미국인이지만 라스 바랑카스의 테루아르를 누구보다 잘 이해했고, 그의 양조 노하우는 파스칼 토소 와인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데 크게 기여했다.



    파스칼 토소의 대표 와인은 말벡(Malbec)과 카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이다. 말벡에는 잘 익은 자두향에 초콜릿과 커피향이 어우러져 있다. 카베르네 소비뇽에서는 말린 대추의 달콤함, 허브의 향긋함, 후추의 매콤함이 느껴진다. 둘 다 묵직한 와인이지만 경쾌할 정도의 산도와 부드러운 타닌의 맛은 고급스러움을 더한다. 에스테이트(Estate)와 리저브(Reserve) 두 등급의 와인이 있는데, 2만~3만 원대인 에스테이트 등급은 수령이 15~25년 된 젊은 나무에서 수확한 포도로 만들었지만 과일향이 풍부하다. 5만 원대인 리저브 등급은 수령이 30~50년 된 늙은 나무의 포도로 만들어 복합미가 뛰어나다.



    아르헨티나가 만드는 말벡과 카베르네 소비뇽 와인에는 특유의 따뜻함이 있다. 타닌이 벨벳처럼 부드러워 그런 느낌을 주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아르헨티나 레드 와인은 한겨울에 유독 더 맛있다. 주말 저녁 돼지고기 목살구이에 파스칼 토소 와인을 곁들이면 어떨까. 소박하면서도 훈훈한 만찬이 추위에 언 몸과 마음을 녹여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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