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49

2016.08.03

와인 for you

블렌딩의 걸작 ‘50&50’ 신뢰와 융화가 낳은 이탈리아의 향미

  • 김상미 와인칼럼니스트 sangmi1013@gmail.com

    입력2016-07-29 17:25:22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와인은 한 가지 포도로도 만들지만 두 품종 이상 섞어 만들 때가 많다. 품종을 섞는 비율에 따라 맛이 확연히 달라지기 때문에 “와인 블렌딩은 기술보다 예술에 가깝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블렌딩은 대부분 한 와이너리 안에서 이뤄진다. 와이너리마다 추구하는 스타일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두 와이너리의 와인을 블렌딩해 만든 걸작이 있다. 바로 ‘50&50’, 이탈리아어로는 ‘친콴타&친콴타(cinquanta&cinquanta)’라고 부르는 와인이다.

    50&50은 토스카나에 위치한 카판넬레(Capannelle)와 아비뇨네시(Avignonesi)의 공동 작품이다. 1988년 토스카나는 유난히 포도 작황이 좋았다. 이를 축하하고자 두 와이너리는 만찬을 함께 했는데, 이때 카판넬레의 오너 라파엘레 로세티(Raffaele Rossetti)가 재미있는 제안을 했다. 카판넬레가 만든 산지오베제(Sangiovese)와 아비뇨네시의 메를로(Merlot) 와인을 블렌딩해 보자는 것. 이렇게 해서 탄생한 50&50은 생산 첫해부터 대히트를 기록했다. 50&50은 한 해씩 번갈아가며 두 와이너리 중 한 곳이 다른 한쪽의 와인을 받아 블렌딩하고 병입까지 책임진다. 이는 서로를 완전히 믿지 않으면 불가능한 작업이다. 각기 다른 곳에서 만든 두 와인이 합쳐진 걸작 50&50. 그래서인지 이 와인은 결혼식 축하주로도 많이 쓰인다.

    카판넬레 설립자 로세티는 로마 출신의 성공적인 비즈니스맨이었다. 그는 1972년 40세에 사업을 접고 토스카나로 이주해 허름한 농가와 포도밭을 현대적인 와이너리와 유기농 포도밭으로 바꿔놓았다. 카판넬레는 16ha(약 16만m2) 포도밭에서 연간 8만 병밖에 생산하지 않는다. 양보다 질을 중요시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 수입되는 와인도 50&50을 포함해 네 종류에 불과하다.



    50&50은 우아하면서도 힘찬 와인이다. 농익은 베리향과 담배, 커피, 꽃 등이 어우러진 향미가 마치 잔 밖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다. 키안티 클라시코(Chianti Classico)는 실크처럼 부드러운 질감에 과일향과 산도의 조화가 아름답기 그지없다. 솔라레(Solare)는 ‘카판넬레의 피’라는 별명처럼 검붉은색을 띤다. 벨벳 같은 질감에 자두, 체리, 담배, 초콜릿 등 향의 집중도가 뛰어나다. 화이트 와인은 샤르도네(Chardonnay)가 유일하다. 이 와인은 진한 금색을 띠며 레드 와인처럼 향이 강하다. 처음엔 열대과일향 위주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배, 복숭아, 꽃향이 드러나고 나중엔 은은한 바닐라향이 고개를 든다.



    카판넬레의 명품 와인들이 단순히 블렌딩 비율을 잘 맞춰 나온 결과물은 아니다. 카판넬레에는 유독 장기 근속자가 많다. 수석 와인메이커는 1984년부터 지금까지 32년간 일하고 있다. 이는 와이너리 전 임직원이 서로 믿고 화합한다는 증거다. 설립자 로세티는 6년 전 사망했고 현 오너는 시 콘테이너스(Sea Containers Ltd.)와 오리엔트 익스프레스(Orient Express) 사장을 역임한 제임스 셔우드(James Sherwood)다. 셔우드는 미국인이지만 카판넬레가 지켜온 스타일과 품질을 유지할 수 있도록 직원들에 대한 신뢰와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고 한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 사이의 믿음과 융화야말로 와인에 블렌딩돼야 할 가장 중요한 요소가 아닐까. 세상 모든 일이 그러하듯이 말이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