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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배의 food in the city

어머니의 손길 같은 너, “나는 행복하다”

서울의 3000원 잔치국수

어머니의 손길 같은 너, “나는 행복하다”

어머니의 손길 같은 너, “나는 행복하다”

‘체부동 잔치집’의 잔치국수.

따듯한 국수 국물이 식도를 타고 흐른다. 가슴속이 뜨거워진다. 비릿한 멸치 냄새가 어머니 손길처럼 포근하다. 국수는 행복의 음식이자 사랑스러운 먹을거리다. 3개월간 긴 좌선과 수행의 안거(安居)가 끝나면 스님들은 국수를 먹는다. 스님들 입가에 미소가 도는 것도 당연하다. 그래서 이럴 때 먹는 음식을 가리켜 스님이 미소 짓는다는 뜻의 승소(僧笑)라고 한다.

불교 음식이 화려하고 다양해지고 있지만 지금의 불교 음식은 수행자의 것과는 조금 거리가 멀다. 성철스님이나 법정스님 같은 분은 하얀 국수를 흐르는 시냇물에 씻어 먹거나 맹물에 말아서 먹기도 했다. 크고 맑은 마음을 아무나 가질 수 없음은 이 같은 거인들의 절제에서 드러난다. 밥을 주식으로 하는 한민족에게 도정이 어려운 밀은 특별한 날에나 먹는 음식이었다. 국수가 탄생한 중국에서는 기쁜 날에만 국수를 먹었다. 상갓집에서는 국수를 먹지 않았다. 국수는 장수의 상징이자 잔치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항구의 등대 같은 음식이다. 미리 반죽해놓은 면에 따듯한 국물만 넣어 내놓는 편리함도 있다.

국수가 장수 음식이자 잔치 음식이 된 것은 ‘삼천갑자(18만 년) 동방삭(東方朔)’이란 말에서 연원을 찾을 수 있다. 동방삭은 18만 년을 살았다는 도교의 전설 때문에 오래 산 사람의 상징이 됐지만, 그는 실제 기원전 154년에 태어나 기원전 93년까지 산 중국 한 무제(漢武帝) 때 대신이었다. 하루는 한 무제와 동방삭 등 대신들이 모인 자리에서 장수와 관련한 이야기가 화제에 올랐는데, “얼굴이 길면 장수한다” “인중이 길면 장수한다”는 말이 다른 대신들 입에서 나오자 동방삭이 “인중이 길어 장수한다면 800세를 산 신선 팽조(彭祖)의 얼굴은 얼마나 길까”라며 크게 웃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일화가 후세에 전해지면서 얼굴(面)과 발음이 같은 면(麵)이 덧붙어 ‘면이 길면 장수한다’가 됐고, 이게 다시 ‘면을 먹으면 장수한다’는 이야기로 각색됐다는 것.
중국인은 그때부터 잔치 때 먹는 면을 장수면(長壽麵)이라고 불렀다. 소금으로 간하고 기름을 발라 말린 소면(素麵)을 끓는 물에 넣고 삶은 후 육수를 부어 내면 대표적 서민 음식인 잔치국수 완성. 1960년대 혼·분식장려운동 때 서민의 한 끼 식사로 등장한 잔치국수는 이후 꾸준히 인기를 얻어왔다.

서울 경복궁역 인근 금천교시장의 소박하고 오래된 가게들은 지금 거의 다 사라졌지만 ‘체부동 잔치집’은 10년 넘게 시장 중앙에서 저렴하고 푸짐한 잔치국수로 사람들을 위로한다. 가격은 단돈 3000원. 하지만 이 집의 잔치국수는 푸짐하다. 국물은 편안하고 면은 부드럽다. 그래서일까. 주머니 가벼운 학생이나 갈 길 바쁜 영업사원이 많이 찾는다.

어머니의 손길 같은 너, “나는 행복하다”

‘옛집’의 온국수(왼쪽)와 메뉴판.

효창공원역 앞에 있는 ‘맛있는 잔치국수’도 3000원에 국수를 판다. 소박한 국수에 지단, 김, 부추, 호박, 고추양념 등 화려한 고명이 조화를 이룬다. 조금 진한 국물에 면발도 탄력이 있다. 인근 컨테이너에서 국수를 팔다 지금은 어엿한 가게를 차렸다. 푸짐한 양과 정직한 맛, 저렴한 가격으로 사람들의 입과 마음을 움직인 결과이자 노력에 대한 값진 보상이다. 삼각지 뒷골목에서는 ‘옛집’이 유명하다. 메뉴판에 ‘온’자만 붉은 글씨로 적힌 온국수를 시키면 아픈 배를 쓰다듬던 어머니 손길 같은 순한 국물과 면이 나온다. 20년 전부터 이 집을 들락거린 내게 이 집 온국수 한 그릇은 각별하다. 언제나 변함없이 친절한 주인 할머니의 마음이 음식 속에 그대로 담겨 있다. 1000원짜리 3장이면 ‘행복한 국수’를 먹을 수 있다.

입력 2016-11-07 13:32:27

  • 푸드칼럼니스트 whitesuda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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