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35

2016.04.27

박정배의 food in the city

실비에 제철 해산물이 한가득~

경남 통영의 이색 진미

  • 푸드칼럼니스트 whitesudal@naver.com

    입력2016-04-25 15:5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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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도에는 일정 금액을 내면 술과 안주가 푸짐하게 나오는 문화가 있다. 경남 삼천포(현 사천)에서는 이런 집을 ‘실비집’이라 부르고 마산은 ‘통술집’, 통영은 ‘다찌’ 혹은 ‘실비’라 한다. 정확한 유래는 알 수 없지만 ‘통술’은 통째로 상을 내온다거나 통에 술을 담아내기 때문에 붙은 이름으로 추정된다. ‘실비’는 저렴한 가격에 술과 안주를 푸짐하게 먹을 수 있다는 뜻에서 붙은 이름이다.

    실비집은 6·25전쟁이 끝난 후 1950년대 서울에서 유행하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저가 식당이었다. 심지어 정부기관의 식당에도 이 이름이 붙었고, 50년대 후반에 발간된 부산시 상공지도에도 여러 곳이 등장한다. 당시 부산 실비집들이 현재 삼천포에서 유행하는, 술과 안주가 동시에 나오는 형태의 실비집이었는지는 명확지 않다.

    유래와 관련해 가장 말이 많은 것은 다찌다. 일본에는 서서 술을 마시는 ‘다치노미’ 문화가 아직까지 남아 있다. 통영의 다찌가 일본 선술집 문화인 다치노미에서 나온 것이라고 추정은 하지만 이 역시 확실한 것은 아니다. 다찌 선술집 메뉴의 기본은 술이다. 술을 시키면 안주가 따라 나오고, 술을 더 시키면 안주도 그만큼 더 준다. 술값이 소주 한 병에 1만 원이 넘는 이유는 안주가 딸려 나오기 때문이다. 정해진 안주는 없고 제철 재료로 만든 음식들이 상에 오른다.

    통영에는 유명한 다찌 집이 많다. ‘대추나무’ ‘벅수실비’와 더불어 ‘강변실비’도 명성이 자자하다. 초봄에는 진달래와 쑥을 이용해 만든 화전(花煎)의 인기가 높다. 요즘 살이 오르기 시작하는 털게도 먹음직하다. 단맛이 일품인 농어와 기름기 적은 봄 전어, 달달하고 쌉쌀한 멍게, 식초에 살짝 절여 부드러운 해삼에, 봄이면 살이 오르고 기름이 차는 멸치회까지 맛볼 수 있다. 하지만 ‘강변실비’의 최고 인기 메뉴는 생선구이다. 두툼한 도미구이는 생선구이의 정수를 그대로 보여준다. 작지만 살이 실한 도미를 고르는 안목은 물론, 뼈에 붙은 살은 익히지 않는 적당한 굽기, 파와 간장, 고춧가루로 만든 소스까지 어우러져 생선구이의 참맛을 느끼게 한다. 생선 재료 본연의 육즙 맛이 소스에 의해 증폭된다. 이맘때가 제철인 공멸치(까나리)와 고구마순을 넣어 끓인 공멸찌개, 두릅도 봄의 미각을 돋운다.



    통영은 붕장어의 최대 산지이자 유통지다. 국내 붕장어의 80% 이상이 이곳에서 거래된다. 그러다 보니 ‘장어잡는날’ 같은 붕장어 탕과 구이를 하는 식당도 즐비하다. 붕장어, 갯장어와 더불어 바다장어 삼총사인 곰장어(먹장어)를 하는 식당도 제법 많다. 관광객들은 거의 찾지 않는 무전동 통영종합버스터미널 부근에는 곰장어 골목이 있다. 밤이면 연탄불 위에서 곰장어들이 익어간다. 국내산 곰장어는 비싼 편인데, 부산에 비해 통영의 곰장어 가격은 견딜 만하다.



    40년 관록의 ‘야간열차’에선 노부부가 여전히 곰장어를 굽는다. 민물에 씻지 않고 바다에서 건져 간단히 손질한 후 석쇠에 껍질째 굽는 통영식 곰장어구이의 특징을 그대로 보여준다. 부산에서는 곰장어 껍질을 벗겨서 굽는데, 곰장어 가죽은 부드럽고 연해 고급 재료로 알려져 있다. 통영식 곰장어구이는 곰장어의 부드러운 껍질과 쫀득한 몸통을 동시에 맛볼 수 있어 술안주로 제격이다.

    통영은 ‘꿀빵’으로도 유명하다. 최근 들어 인기가 높아지자 “제대로 된 꿀빵 먹기가 힘들어졌다”는 불만이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서호시장 근처에 자리 잡은 ‘통영제과점’은 옛날 방식의 통영 꿀빵을 제대로 맛볼 수 있는 곳이다. 직접 만든 팥은 적당히 달고 팥향이 나면서 식감도 좋다. 포실한 빵도 좋고 끓여 재운 물엿 맛도 적당히 달다. 후식으로 이만한 것이 없다.

    까면 깔수록 깊은 맛이 하나 둘씩 모습을 드러내는, 진정한 맛의 고수들이 모인 곳이 바로 통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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