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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장원의 클래식 산책

한 시대의 마감에 부쳐

지휘자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 은퇴

한 시대의 마감에 부쳐

한 시대의 마감에 부쳐

2006년 1월 27일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 대극장에서 열린 모차르트 탄생 250주년 축제 메인 콘서트에서 빈 필하모니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 동아DB

한 해 동안 서울 예술의전당과 경기 성남아트센터 아카데미에서 ‘교향악의 거인들’이라는 주제로 강좌를 했다. 그 마지막 강의 주제는 베토벤에서 말러에 이르는 ‘합창 교향곡’의 계보를 짚어보는 것이었다. 하지만 바로 며칠 전 접한 중요한 소식을 그냥 넘기기 어려웠다. 그래서 당초 예정했던 강의를 2부에서 압축해 진행하고, 1부에선 지휘자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가 남긴 주요 영상물을 몇 가지 감상했다.
12월 5일 오스트리아 지휘자 아르농쿠르가 은퇴를 선언했다. 아르농쿠르는 20세기 중엽부터 대두된 ‘고음악 운동’의 선구자였고, 오스트리아를 대표하는 시대악기 앙상블 ‘콘첸투스 무지쿠스 빈’의 창립자이며, 이른바 ‘절충주의’를 주창해 오케스트라 연주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개척자다. 또한 그는 지휘자이기 이전에 첼리스트였고 악기 제작자, 음악학자, 교육자, 저술가로도 활동해왔다.
한 시대의 마감에 부쳐

20세기 중엽부터 대두된 ‘고음악 운동’의 선구자이자 오스트리아를 대표하는 시대악기 앙상블 ‘콘첸투스 무지쿠스 빈’의 창립자인 지휘자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 동아DB

아르농쿠르는 1929년 12월 6일 독일 베를린에서 태어나 오스트리아 그라츠에서 성장했고, 빈 음악원에서 첼로를 전공한 후 17년간 빈 심포니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활동했다. 학창 시절부터 고음악, 고악기, 역사적 연주기법 및 연주방식을 체계적으로 연구한 그는 69년 모차르트 ‘G단조 교향곡(제40번)’을 연주하던 중 불만을 참지 못해 빈 심포니를 뛰쳐나왔고, 이후 자신이 53년 창단한 ‘콘첸투스 무지쿠스 빈’과 활동하며 고음악계 기린아로 급부상했다.
그의 악단은 말쑥한 음향과 생동감 넘치면서 다층적인 연주로 명성을 떨쳤고 바흐, 헨델, 몬테베르디, 퍼셀 등에 대한 참신한 해석으로 주목받았다. 아울러 그가 취리히 오페라에서 진행한 몬테베르디 오페라 시리즈, 네덜란드 지휘자 구스타프 레온하르트와 손잡고 완성한 바흐 칸타타 전집 등도 각광받았다.
1980년대 들어 아르농쿠르는 더욱 광범위한 주목을 끌게 된다. ‘암스테르담 콘세르트헤바우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모차르트 교향곡 음반으로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던 것이다. 우아하고 세련된 스타일의 연주가 지배적이던 당시 상황에서 대조가 심하고 현란하며 폭발적인 그의 모차르트 연주는 충격으로 받아들여졌고 논란을 낳았다. 하지만 그의 영향을 받은 후발주자들에 의해 더욱 자극적이고 진취적인 연주들이 등장하면서 만만찮은 세력을 형성했다.
1990년대 초 아르농쿠르는 ‘체임버 오케스트라 오브 유럽’을 지휘한 베토벤 교향곡 전집으로 또 한 번 큰 파장을 일으킨다. 현대악기 오케스트라에 시대악기 주법을 도입하고 일부 악기를 고악기로 대체한 ‘절충주의 연주방식’을 선보였던 것이다. 그 시도는 오케스트라 연주의 패러다임에 일대 변혁을 일으켰고, 많은 이에게 ‘베토벤 교향곡 연주방식의 모범답안’처럼 받아들여지며 확고한 지분을 확보했다.
이후 아르농쿠르는 낭만파와 근현대 레퍼토리로까지 꾸준히 활동 영역을 확장했고, 최근에는 이 시대의 가장 존경받는 원로 지휘자로 자리매김했다. 아마도 역사는 그를 20세기 후반의 가장 중요한 지휘자 가운데 한 명으로 기록하리라. 실로 ‘한 시대의 마감’이라 할 그의 퇴장에 경의를 표하면서, 이번 주말에는 바쁘다는 핑계로 읽다 말았던 그의 저서 ‘바로크 음악은 말한다’(음악세계)를 오랜만에 펼쳐봐야겠다.


입력 2015-12-22 14:42:07

  • 황장원 음악칼럼니스트 tris72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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