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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장원의 클래식 산책

쇼팽 콩쿠르 우승은 시작일 뿐 ‘퀸 엘리자베스’ 한국인 최초 우승자 임지영도 기억해야

‘조성진 신드롬’은 클래식계 단비

쇼팽 콩쿠르 우승은 시작일 뿐 ‘퀸 엘리자베스’ 한국인 최초 우승자 임지영도 기억해야

쇼팽 콩쿠르 우승은 시작일 뿐 ‘퀸 엘리자베스’ 한국인 최초 우승자 임지영도 기억해야

제17회 국제 쇼팽 피아노 콩쿠르 출전 당시 조성진 모습.

실로 오랜 기다림 끝에 날아든 낭보였다. 이제는 온 국민이 알고 있을, 우리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제17회 국제 쇼팽 피아노 콩쿠르’(쇼팽 콩쿠르)에서 한국 피아니스트 최초로 우승을 차지했다는 소식 말이다.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5년마다 열리는 쇼팽 콩쿠르는 모든 피아니스트가 꿈꾸는 무대다.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리는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리는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와 더불어 ‘세계 3대 피아노 콩쿠르’로 꼽히는 최고 권위의 경연대회이기도 하지만, 그 이전에 ‘피아노의 시인’ 프레데리크 쇼팽의 고향에서 열리는 상징적인 행사이기 때문이다. 이 콩쿠르에서 우승한다는 것은 곧 쇼팽의 정신과 피아니즘을 계승해 당대에 전파할 적자로 공인받은 것을 의미한다.

예비 거장 위한 명망 높은 등용문

아울러 쇼팽 콩쿠르는 장차 국제 피아노 연주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낼 ‘예비 거장’을 위한 가장 명망 높은 등용문이기도 하다. 블라디미르 아시케나지, 마우리치오 폴리니, 마르타 아르헤리치, 크리스티안 지메르만 등이 이 콩쿠르 수상 경력을 발판 삼아 최정상의 거장으로 성장했으며 개릭 올슨, 미츠코 우치다, 당 타이 손, 스타니슬라프 부닌, 장마르크 뤼사다 등은 화려한 연주 경력은 물론 교육자로서도 명성을 쌓아 올렸다. 또 현재 각광받고 있는 윤디 리, 라팔 블레하츠, 잉골프 분더, 다닐 트리포노프 등도 이 콩쿠르가 배출한 차세대 거장들이다.

그동안 쇼팽 콩쿠르에 대한 우리 피아니스트들의 도전은 번번이 아쉬움을 남겼다. 2000년 김정원이 처음으로 본선에 진출했고 2005년에는 임동민, 임동혁 형제가 많은 기대를 모으며 결선에 올랐으나 공동 3위에 그쳤다. 같은 해 손열음은 결선까지 진출했지만 순위 안에 들지 못했고, 2010년 김다솔과 서형민은 본선 2차에 머물렀다. 이번 대회에서도 10명이 본선에 진출했으나 결선 무대를 밟은 사람은 조성진 한 명뿐이었다.

10월 21일 새벽 결선 결과 발표가 계속 지연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며칠째 밤을 새며 조성진의 우승을 기원하던 이들 사이에 불안감이 엄습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해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심사위원들이 캐나다의 샤를 리샤르아믈랭과 미국의 케이트 리우를 두고 갑론을박을 벌이고 있을 것’이라거나 ‘혹시 이번 대회에서는 (1990년과 95년처럼) 우승자가 나오지 않는 것이 아니냐’는 식의 추측이 확산되자 불안감은 가중됐다. 하지만 4시간여의 피 말리는 지연 끝에 발표된 결과는 주지하다시피 조성진의 우승이었고, 리샤르아믈랭과 리우는 각각 2, 3위를 차지했다.

조성진의 우승은 어느 정도 예견된 바였다. 당초 조성진이 올해 쇼팽 콩쿠르에 출전할 것이라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부터 여러 관계자가 조심스럽게나마 그의 우승을 내다봤다. 물론 국제 콩쿠르 우승에 대한 예측이 결코 단언할 수 있는 종류의 일은 아니지만 그간 우리가 지켜봐온, 그가 보여준 모습으로 미뤄 짐작건대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기대했다.

그렇다면 그런 예측 혹은 기대의 근거는 무엇이었나. 일단 외적인 면에서 그의 콩쿠르 입상 경력을 들 수 있다. 익히 알려진 바와 같이, 조성진은 2008년 ‘국제 청소년 쇼팽 콩쿠르’ 최연소 우승을 필두로 화려한 수상경력을 이어왔다. 2009년 ‘하마마쓰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도 최연소 우승을 기록했고, 2011년에는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에 출전해 손열음에 이어 3위에 올랐는데, 당시 17세라는 나이를 감안하면 놀라운 성과였다. 다만 지난해에 출전한 ‘아르투르 루빈스타인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도 3위에 머문 일은 적잖은 아쉬움을 남겼으나, 한편으론 그때의 경험이 이번 콩쿠르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일종의 보약으로 작용하지 않았을까.

이런 외적 근거보다 더욱 믿음직스러웠던 건 그의 특출한 재능과 남다른 자세였다. 필자의 경우 그의 연주를 처음 접한 건 하마마쓰 국제 피아노 콩쿠르 우승 직후인 2009년 말 정명훈의 서울시립교향악단과 협연한 라벨 피아노 협주곡을 통해서였는데, 당시 공연을 지켜보면서 ‘드디어 우리나라에도 이런 천재가 나타났구나!’라고 감탄했던 기억이 난다. 그 연주는 15세 소년의 것이라고는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 수준이었다. 고르고 명징한 타건으로 빚어내는 음들의 질감과 색감부터 특별했고, 건반을 누비는 기교는 잘 다듬어져 있었으며, 순간순간 선보이는 표현들은 신선하면서도 세련됐고, 악곡 전체를 안정되면서도 생기 있게 이끌어가는 솜씨에서는 제법 어른스러운 면모마저 엿보였던 것이다. 그런 그의 재능과 역량은 이번 콩쿠르에서 더욱 정련되고 성숙해진 형태로 드러났다.

쇼팽 콩쿠르 우승은 시작일 뿐 ‘퀸 엘리자베스’ 한국인 최초 우승자 임지영도 기억해야

조성진은 어린 시절부터 두각을 나타내 음악 평론가들 사이에서는 일찌감치 국제 쇼팽 피아노 콩쿠르 우승이 점쳐지기도 했다. 우승자 발표 직후 축하받는 조성진(왼쪽).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우승한 임지영.

특출한 재능, 남다른 자세, 예견된 우승

또한 그는 ‘재능 있는 예술가’로서는 드물게 노력과 겸손, 경험과 숙고의 미덕을 잘 이해하고 실천하는 연주가이기도 하다. 여기서 잠시 어린 시절 그를 지도했던 스승들의 증언을 들어보자. “재주도 비상했지만 연습도 보통 열심히 하는 게 아니었다”(신수정 서울대 명예교수), “나가는 콩쿠르마다 우승하는데도 우쭐하는 기색이 없었고, 중학생 때부터 이미 자신만의 음악세계를 체득하고 있었다”(박숙련 순천대 교수).

이번 콩쿠르를 앞두고서도 그는 오랫동안 쇼팽 곡들만 연주하며 그 음악의 내면으로 깊숙이 침잠하는 과정을 거쳤고, 유학 중인 프랑스 파리에 남아 있는 쇼팽의 흔적들을 찾아다니며 그 음악의 근간을 이루는 예술가적 삶과 감성에 대한 이해를 얻었다고 한다. 이번 콩쿠르에서 그가 들려준 연주에서 외적 아름다움이나 단면적 열정을 넘어선 내적 공감과 폭넓은 성찰이 감지된 이유가 바로 거기 있지 않을까.

이번 조성진의 쇼팽 콩쿠르 우승은 정녕 기뻐할 일이고 축하할 일이다. 무엇보다 ‘피아니스트’ 조성진에게는 큰 영예와 기회일 테고, 국내 클래식 음악계의 발전과 저변 확대에도 상당 부분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나아가 일반 국민에게도 일정 정도 즐거움과 자긍심을 안겨줄 것이다.

하지만 빛이 있으면 그늘도 있게 마련이다. 가장 우려되는 부분은 조성진이 이번 우승으로 대중적 명성을 얻으며 자칫 지나치게 소모되지나 않을까 하는 것이다. 물론 그 스스로 자기관리를 철저히 하는 것이 먼저겠지만, 우리가 이해하고 배려해줘야 할 부분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행여 차후 그가 금의환향했을 때 필요 이상으로 여기저기 불려 다니는 일은 없기를 바란다.

한편으론 상대적 소외감을 느낄 수 있는 다른 국제 콩쿠르 수상자들에 대한 관심도 필요하다. 이를테면 지금의 이례적인 보도 열기에 비해 지난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역시 한국인 최초로 우승한 바이올리니스트 임지영에 대한 보도는 왜 그리 빈약했던 것일까.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음악계 관계자들과 언론사 문화예술 담당자들이 함께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주간동아 2015.11.02 1011호 (p76~77)

  • 황장원 음악칼럼니스트 tris72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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