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83

2017.04.12

김작가의 음담악담(音談樂談)

“90년대” 그 자체였던 커트 코베인의 음악

너바나 ‘Live At Reading’

  • 대중음악평론가 noisepop@daum.net

    입력2017-04-12 14:23:28

  • 글자크기 설정 닫기
    4월 5일, 하루 종일 봄비가 촉촉이 내렸다. 매년 이날이 되면 꼭 ‘너바나’의 음반을 듣는다. 1994년 4월 5일 커트 코베인이 세상을 떠난 지 올해로 23년이 됐다. 그가 자신의 머리에 방아쇠를 당겼을 때 세상은 일순 정전됐다.

    다시 밝아진 세상에선 ‘오아시스’와 ‘라디오헤드’가 커트 코베인의 자리를 대신했다. 그래도 매년 이즈음이 되면 사람들은 그를 기린다. 기림이 반복되면서 그는 전설이란 이름의 그 무엇이 됐다.

    그런데 그가 왜 위대하고 대단하며 세상을 바꿀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은 막연한 수사에 머물러 있었을 뿐이다. 1990년대가 명백한 과거의 시간이 된 지금, 그 답을 담고 있는 영상을 봤다. 92년 영국 레딩페스티벌 공연 실황을 담은 ‘Live At Reading’이다. 2006년 스코틀랜드 출신의 밴드 ‘프란츠 퍼디난드’와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그해 여름 그들은 첫 번째 펜타포트록페스티벌에 참가하려고 한국을 처음 찾은 터였다. 보컬 앨릭스 카프라노스에게 기억에 남는 페스티벌에 대한 얘기를 들려달라고 했다.

    그는 바로 1992년 레딩페스티벌 얘기를 했다. 당시 스무 살이던 그가 처음 간 페스티벌이라고 했다. 거기서 너바나의 공연을 보면서 자기도 음악을 하겠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위대한 공연 하나가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고, 2000년대 초·중반을 대표하는 밴드를 탄생시킨 셈이다. 레딩페스티벌 영상을 보면 ‘과연 그럴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공연에서 커트 코베인은 약물중독으로 그가 곧 죽을 거라는 미디어의 소문을 일축이라도 하듯 밴드와 함께 앨범 ‘Bleach’와 ‘Nevermind’는 물론, 그때 아직 발표하지 않았던 ‘Incesticide’와 ‘In Utero’의 수록곡까지 거의 두 시간 동안 쉴 새 없이 연주했다.

    ‘All Apologies’를 부르기 전 그는 관객에게 “We love Courtney”를 외칠 것을 요구했고, 객석은 당연히 응한다. 그의 신부이자 당시 언론의 비판을 한 몸에 받고 있던 코트니 러브의 명예 회복을 시도한 셈이다.

    여기까지만 보면 전설적인 밴드의 전설적인 공연의 재현에 불과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라이브 음반의 참된 가치는 ‘90년대’라는 시대의 정체성을 그대로 보여준다는 데 있다. 1980년대까지 록밴드에게 요구되던 정교한 연주와 화려한 무대 연출은 온데간데없다. 커트 코베인의 보컬은 종종 음정이 나가고, 연주도 틀리기 일쑤다. 다시 정교한 연주와 화려한 연출이 미덕이 된 오늘날 록페스티벌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장면이다.

    하지만 그때는 그랬다. 그것이 90년대의 정체성이었다. 중요한 건 연주도 연출도 아닌, 표현과 에너지였던 것이다. 커트 코베인은 오직 그것에 집중했고, 시대는 그에 화답했다. 척 베리와 비틀스, 섹스 피스톨스가 자신들의 시대에 환기시킨 록의 본질에 대한 재현이었다. 그러므로 1992년 8월 30일, 너바나가 서 있는 곳은 무대가 아니라 바뀐 세상의 지평이었던 거다.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이라면, 특히 그때의 새로운 분위기를 만끽하던 사람이라면 그때의 에너지를 되새길 수 있는 영상과 음악이 이 라이브 앨범에 담겨 있다.

    그러나 가슴 벅차기만 한 건 아니다. 오히려 마음이 아프다. 역시 그때는 몰랐던, 혹은 알았다 해도 잊힌 한 사내의 본모습이 보이기 때문이다. 세상으로부터 사랑받고 싶었지만 어떻게 사랑받아야 할지 모르던, 그래서 스타덤에서 도망치기를 원하다 결국 스스로 스타덤과 단절해버린 커트 코베인의 본령이 이 영상에 담겼다.

    그가 인생 자체를 연료로 태우던 음악이 과연 무엇이었는지 ‘Live At Reading’에서 느낄 수 있다. 스튜디오에서는 알려줄 수 없는, 오직 라이브만이 줄 수 있는 가슴 아픈 격정을. 커트 코베인, 그 자체가 90년대였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