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64

2016.11.23

김작가의 음담악담(音談樂談)

가야 할 때가 언제인지를 분명히 알고 간 이의 뒷모습

음유시인 레너드 코언

  • 대중음악평론가 noisepop@daum.net

    입력2016-11-21 15:2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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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말이라 하기엔 이르지만 2016년 음악계를 돌아본다면 ‘이별의 한 해’라 이야기하게 될 것 같다. 새로운 별의 출현보다 오랜 별의 소멸이 한 해 내내 이어졌다. 1월 갑작스레 전해진 데이비드 보위의 사망 이후 어스 윈드 앤드 파이어의 모리스 화이트, 이글스의 글렌 프레이, 그리고 프린스…. 한 시대를 호령하던 영웅들이 약속이나 한 듯 그들의 별로 돌아갔다. 그리고 11월 10일, 또 하나의 거장이 세상을 떠났다. 밥 딜런과 더불어 음유시인이란 단어에 가장 적합할, 레너드 코언이 향년 82세로 타계했다.

    그의 부고를 듣고 나는 2009년 7월 어느 날을 떠올렸다. 영국 여행 중이던 당시, 비틀스의 고향 리버풀을 방문했다. 늦은 저녁 시내를 가로지르는 머지 강가를 산책하던 중 대형 공연장인 O2아레나 벽에 붙은 현수막을 보고 깜짝 놀랐다. 레너드 코언의 공연이 열리는 것 아닌가. 불운하게도 바로 그날이 공연 날이었고, 내가 그 사실을 알았던 시점이 공연이 끝나고 관객이 빠져 나오는 때였다는 게 더 큰 불운이었다. 강가를 걸으며 집으로 돌아가는 노년층 팬들의 만족스러운 표정에서 공연 분위기를 느낄 뿐이었다. 아쉽기는 했지만 크게 동요하진 않았다. 나에게 레너드 코언은 과거 인물 같은 느낌이었으니까. 실제로 2009년 당시 그의 최근작은 2004년에 낸 ‘Dear Heather’였다.

    그 아쉬움이 후회로 바뀐 건 2012년이다. 8년 만의 신작 ‘Old Ideas’가 나온 것이다. 이 앨범이 나왔을 때, 나는 말 그대로 압도당했다. 모든 욕망이 소멸된, 생의 마지막에서 지혜를 잃지 않은 이의 음악이자 낭송이었던 것이다. 아직도 생각난다. 그때 나는 SBS 파워FM ‘아름다운 이 아침 김창완입니다’에 고정 패널로 출연하고 있었는데, 이 앨범에 담긴 ‘Amen’을 틀었을 때 DJ 김창완의 그 경이로워하는 표정이. 그때 스튜디오 안에 흐르던 숭고하기까지 한 공기가. 그 뒤로 레너드 코언의 행보는 서산으로 넘어가기 전 세상을 붉게 물들이는 태양 같았다. 2년 뒤 ‘Popular Problems’를, 그리고 올해 10월에는 유작이 된 앨범 ‘You Want It Darker’까지, 구원과 서정의 서사시를 경건하게 노래했다. 멈춤 없이 투어를 돌았다. 그의 말년 작품들을 들으면 나도 모르게 경건해진다. 자신의 생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고 있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기 때문이다.

    7월 자신의 영원한 뮤즈였던, 그래서 ‘Hallelujah’ ‘Bird On The Wire’ 그리고 ‘So Long, Marianne’ 같은 명곡을 만들게 한 마리안느 일렌의 타계 소식을 듣고 그는 ‘곧 당신의 곁에 가리라’는 내용의 편지를 썼다. 최근 ‘뉴요커’와 가진 인터뷰에서 죽음에 대한 질문을 받고 “죽을 준비가 돼 있다”며 “아직 할 일이 많지만 연연하지 않는다”고 대답했던 건 오랜 시간에 걸친 숙고의 결과였을 테다. 살다 죽는 것이 아닌, 의연히 마지막을 준비하는 단계의 악상들을 그는 구원과 성찰의 시, 음악으로 남겼다. 데이비드 보위가 죽기 직전 자신의 투병 사실을 숨긴 채 내놓은 ‘Blackstar’와 더불어 마지막까지 가장 의연했던, 영원한 작별의 순간까지 음악으로 승화한 거장의 마침표로 이 앨범을 기억하리라.  

    미국 뉴욕 그리니치빌리지에는 첼시호텔이 있다. 오래된 낡은 호텔이지만 팝 음악사의 성지 가운데 하나다. 밥 딜런, 재니스 조플린, 패티 스미스, 톰 웨이츠, 이기 팝 등이 젊은 시절 묵으며 음악과 시를 썼던 곳이다. 레너드 코언은 여기서 만난 조플린과의 추억을 ‘Chelsea Hotel #2’라는 곡으로 남겼다. 그래서일까. 전설적 예술인들이 거쳐 간 이 호텔 입구에는 레너드 코언의 업적을 기리는 현판이 붙어 있다. 그의 가사를 연구하는 학회에서 만든 것이다. 예전 뉴욕에 갔을 때 만사 제치고 달려간 그곳이 리뉴얼 중이라 들어가 보지 못한 게 또 하나의 아쉬움으로 남는다. 언젠가 다시 뉴욕에 가게 된다면, 그때 첼시호텔이 재개장했다면 그곳에 들어가 레너드 코언의 음악을 들을 것이다. 잔인하고 서글펐으며 혼돈으로 가득하던, 2016년 11월의 세계를 떠올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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