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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호의 시네+아트

허구와 현실의 경계가 무너질 때

장건재 감독의 ‘한여름의 판타지아’

허구와 현실의 경계가 무너질 때

허구와 현실의 경계가 무너질 때
셰익스피어 희곡 ‘한여름 밤의 꿈’은 짝짓기 소동을 그린 코미디다. 주인공들은 요정의 마법에 걸려 연인을 혼동하다 나중에야 겨우 제짝을 되찾는다. 한바탕 소동은 한여름 밤을 배경으로 진행되고, 그래서 여름이면 더욱 사랑받는 작품이다. 장건재 감독의 ‘한여름의 판타지아’도 여름을 배경으로 하고, 역시 제짝을 찾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이 연극과 공통점이 있다.

셰익스피어의 ‘한여름 밤의 꿈’이 사랑받는 이유는 흥미로운 내용 덕분이기도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판타지를 펼치는 형식에 있다. ‘한여름 밤의 꿈’은 ‘연극 속 연극’, 곧 ‘메타연극’이다. 짝짓기 소동이 펼쳐지기 전 우리는 아테네 시민들이 영웅 테세우스를 위해 기념연극을 준비하는 과정을 본다. 사람들은 시민 가운데서 배우를 뽑고, 배역을 정하며, 연습을 한다. 그 뒤 기념연극이 본격적으로 진행된다. 우리는 대개 전반부의 준비 과정은 잊고, 후반부의 짝짓기 소동만 기억한다. 그래도 충분히 재밌다.

그런데 메타연극이 진정 흥미로운 이유는 현실과 허구 사이 경계가 허물어지기 때문일 것이다. 후반부의 짝짓기와 달리 전반부의 준비 과정은 마치 현실처럼 느껴지는데, 사실은 이 모든 과정이 허구다. 이처럼 현실의 탈을 쓴 전반부가 있기에 역설적으로 후반부의 허구가 더 현실성을 갖는다. 객석의 실제 세상, 연극 속 현실, 그리고 연극 속 허구 사이의 세 경계가 모두 흐릿해지기 때문이다. 바로 이 점이 ‘한여름 밤의 꿈’의 미덕이고, 지금까지 고전으로 평가되는 가장 중요한 이유일 터다.

허구와 현실의 경계가 무너질 때
영화 ‘한여름의 판타지아’도 셰익스피어 코미디처럼 두 부분으로 구성돼 있다. 전반부는 감독(임형국 분)과 작가(김새벽 분)가 일본의 작은 마을 고조에서 영화를 준비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두 사람은 유스케(이와세 료 분)라는 공무원의 도움을 받아 현지의 특성을 공부한다. 전반부는 마치 고전 다큐멘터리처럼 흑백으로 촬영됐다. 그래서 현실을 기록한 느낌이 더욱 강하게 든다.

후반부는 일본을 여행하는 배우 혜정(김새벽 1인 2역)이 고조에서 청년 유스케(이와세 료 1인 2역)의 도움을 받아 역시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 과정을 보여준다. 짧은 만남이지만 혜정은 유스케가 편하게 느껴지는지 그에게 자신이 배우라는 점을 밝히고, 또 지금 일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사실까지 털어놓는다. 유스케는 이미 첫눈에 혜정에게 반했다. 혜정을 바라보는 눈빛과 수줍어하는 미소가 그의 마음을 충분히 짐작게 한다. 혜정이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날 밤, 카페에서 맥주를 앞에 두고 가만히 상대의 마음을 읽는 두 남녀의 태도에 아쉬움이 가득 묻어 있다.

후반부의 이 모든 과정은 컬러로 촬영됐다. 영화 속 영화, 곧 허구인데 이상하게도 더 현실처럼 느껴진다. 전반부의 현실 같은 허구가 후반부에 침범했기 때문이다. 현실과 허구의 경계가 흐릿해지고, 그래서 더 진짜 같은 판타지아로 느껴지는 것이다. ‘한여름의 판타지아’의 진정한 매력은 ‘영화 속 영화’, 곧 메타영화라는 형식일 것이다.

입력 2015-07-27 10:36:00

  • 한창호 영화평론가 hans427@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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