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90

2017.05.31

한창호의 시네+아트

노인 야쿠자와 ‘7인의 사무라이’

기타노 다케시 감독의 ‘8인의 수상한 신사들’

  • 영화평론가 hans427@daum.net

    입력2017-05-30 16:3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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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감독 겸 배우인 기타노 다케시는 ‘야쿠자 영화’로 사랑받았다. 액션영화 특유의 초법적이고 반사회적 폭력, 그리고 야쿠자마저 할 일이 없어 빈둥대는 무기력한 사회에 대한 풍자는 짙은 페이소스를 느끼게 했다(‘소나티네’·1993). 기타노는 종종 경찰로도 나왔다. 하지만 그가 연기한 경찰은 폭력적이고 반사회적인 성격 면에선 야쿠자와 다르지 않았다. 폭력을 억누르고 사는 경찰은 생계를 위해 야쿠자에게 돈을 빌려야 했다(‘하나비’·1997). 그의 액션영화엔 늘 무기력한 사회가 배경으로 등장했다. 기타노 영화의 인기는 1990년대 일본의 극심한 불황기인 ‘잃어버린 10년’과 맞물려 있는 것이다.

    ‘8인의 수상한 신사들’은 그때의 야쿠자가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에 대한 상상이다. 한때 칼과 총을 무기 삼아 살인도 서슴지 않던 야쿠자는 이제 모두 노인이 됐다. 장기침체도 좀 극복됐다. 폭력에 의지하던 야쿠자와 달리 사업가로 변신한 최근의 조직범죄 환경에서 노인들이 설 자리는 없어 보인다. 청년 시절 중간보스였던 류조(후지 다쓰야 분)는 아들 집에 얹혀살며 눈칫밥을 먹고 있다. 과거 부하를 만나 점심을 함께 먹는 게 거의 유일한 소일거리다. 그런데 이들이 사는 지역에서 가끔씩 부딪히는 젊은 깡패들이 주로 노인 같은 약자를 속여 돈을 갈취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은퇴한 야쿠자들이 보기에 이들은 얍삽하고 인정머리 없는 악귀 같다. 류조는 과거 부하들을 다시 부른다.

    이때부터 ‘8인의 수상한 신사들’은 구로사와 아키라의 고전 ‘7인의 사무라이’(1954)를 패러디한다. 말하자면 ‘류조와 7인의 늙은 야쿠자’인 셈이다. 구로사와의 고전처럼 이들이 다시 뭉치는 과정이 흥미진진하게 전개되는데, 짐작하겠지만 한때의 야쿠자들은 지금 모두 하층민으로 또는 약자로 전락해 있다. 길거리에서 교통비를 구걸하는 노인, 우익단체 집회에서 마이크 잡고 떠들며 용돈을 버는 노인, 병원에 늘 입원해 있는 노인 등 하나같이 비루하게 연명해가고 있다. 이런 ‘오합지졸’이 젊은 깡패들을 혼내주겠다고 나서는 모습은 웃고 있기엔 어쩐지 서글픈 마음이 들게 한다.

    말하자면 ‘8인의 수상한 신사들’은 ‘노인’ 야쿠자들이 꾸는 한여름밤의 한바탕 꿈이다. 정신은 살아 있는 것 같은데 몸은 따라주지 않는 현실을 부정하고픈 소망이다. ‘류조와 7인의 야쿠자’는 집에서든 사회에서든 더는 환영받지 못하는 무기력한 존재가 됐다. 이들은 잠시나마 이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은 것이다. 노인들이 과거를 꿈꾸며 칼을 들고 총을 쏘는 모든 행위는 시간에 밀려난 현실을 부정하려는 이들의 간절한 저항처럼 보인다. 야쿠자에게도 노년은 어김없이 찾아온 것이다.

    기타노 특유의 페이소스는 여기서도 감성을 자극한다. 류조 역을 맡은 후지 다쓰야는 과거 오시마 나기사의 문제작 ‘감각의 제국’(1976)에서 주연을 맡아 세계 영화계에 이름을 알린 노장 배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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