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80

2017.03.22

한창호의 시네+아트

아버지의 울음, 딸의 절규

마렌 아데 감독의 ‘토니 에드만’

  • 영화평론가 hans427@daum.net

    입력2017-03-17 18:3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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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족관계의 붕괴는 멜로드라마가 자주 다루는 주제다. 가족관계는 가치관 차이나 현실적인 경제 문제로 위협받곤 한다. 자연스럽고 당연한 혈연관계를 무너뜨리는 제도적 원인을 성찰케 하는 게 멜로드라마의 사회적 미덕이다. 멜로드라마가 일반적인 정치  ·  사회 영화보다 당대의 문제점을 더욱 예리하게 포착한다는 주장은 그래서 설득력을 갖는다.  

    독일 마렌 아데 감독의 ‘토니 에드만’은 지난해 칸영화제에서 소개되며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이 영화는 표면적으로는 아버지와 딸의 단절에 집중한다. 전직 음악교사인 아버지는 이혼 후 혼자 살고 있는데, 최근 애완견이 죽자 적적한 마음에 무작정 외동딸을 찾아간다. 딸은 다국적 기업의 컨설턴트로 루마니아 부쿠레슈티에서 혼자 살고 있다. 더 높이 올라가고자 앞만 보고 달리는 딸은 장식이라곤 거의 없는 호텔 같은 집에서 산다. 이것이 그의 심리상태를 잘 설명한다. 출세를 위해 뛰는 ‘일중독자’ 딸에게 현재는 별로 중요치 않다. 그에게 집은 ‘사는 곳’이 아니라 잠시 ‘머무는 곳’이다. 가족이란 개념 역시 끼어들 틈이 없다.

    1970년대 ‘히피세대’로 보이는 아버지는 장발 가발을 쓰고 장난을 치며 딸에게 다가가고자 하지만, 딸은 일에 방해되는 아버지가 어서 떠나기를 바란다. 딸이 하는 일이란 게 사실 ‘타락한 아웃소싱’이다. 회사를 분리하고, 최대 수익을 위해 직원들을 자르는 일이다. 업주들은 악역을 맡기 싫어 딸의 컨설턴트 회사에 외주를 준다. 이제 막 개발 앞에 노출된 루마니아는 마치 국경 없는 자본의 사냥터처럼 그려진다. 아버지는 그런 진흙탕에서 허우적대는 딸을 보는 게 안쓰럽다. 딸은 돈줄을 쥔 인사에게 잘 보이려 짧은 치마를 입어야 하고, 종종 무시당하기도 한다.

    영화 ‘토니 에드만’에는 오직 더 많은 돈을 벌려고 하는 인정머리 없는 세상만 남아 있다. 신세대를 대변하는 딸은 수익이 나는 곳이라면 세계 어디라도 갈 준비가 돼 있다. 아마 그곳에서 자신의 특기인 ‘아웃소싱’을 할 것이다. 그런데 수익을 올리고자 ‘효율적’으로 사람과 관계를 만들고, 또 자르곤 하는 사회적 관습이 가족관계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있을까. 딸은 자신의 미래를 위해 아버지조차 효율적으로 ‘아웃소싱’한 것은 아닐까.

    루마니아 어느 가정의 부활절 파티에서 딸은 아버지의 반강제적 권유로 노래 한 곡을 부른다. 휘트니 휴스턴의 ‘Greatest Love Of All’이다. 우리는 비록 외로운 세상에 살지만 가장 위대한 사랑은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고, 자신의 품위를 지키는 것이란 내용이다. 왠지 아버지가 딸에게 일부러 시킨 노래 같다. 딸 역을 맡은 배우 잔드라 휠러가 ‘생목’으로 이 어려운 노래를 불러대는데, 그 행위는 노래라기보다 처절한 절규처럼 보인다. 영화 ‘토니 에드만’에 따르면 ‘외로운 세상’에서 부모는 속으로 울고, 자식은 절규하며 사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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