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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예술가의 초상

이준익 감독의 ‘동주’

젊은 예술가의 초상

젊은 예술가의 초상
토마스 만에 따르면 예술가는 ‘얼굴에 낙인이 찍힌 인물’이다. 다르게 살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나서다. 토마스 만의 소설 ‘토니오 크뢰거’의 주인공 시인(토니오)은 남미 사람의 피가 섞였다는 이유로 사회적 계급이 높은데도 차별을 받는다. 그런데 그런 비이성적 차별을 인식하면서 토니오는 점점 시인의 정체성을 운명처럼 받아들인다. 천형 같은 상처가 그에게 선물한 ‘다름’이 예술가의 존재 조건임을 이해한 것이다.
이준익 감독의 영화 ‘동주’는 일제강점기 말 항일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수감 중 옥사한 시인 윤동주의 짧은 청년기를 다룬다. ‘서시’ ‘별 헤는 밤’ ‘자화상’ 등의 시 덕분에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시인이다. 윤동주(강하늘 분)의 삶을 더 깊게 바라보는 방식으로 영화가 이용한 건 대조법이다. 윤동주의 동갑내기 사촌 송몽규(박정민 분)의 등장을 통해서다.
몽규는 10대 때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한 작가이자, 일본 명문 교토제국대 재학 시절 항일운동을 적극적으로 펼친 독립운동가다. 말하자면 글쓰기, 공부, 사회적 활동 등에서 늘 동주보다 앞서며 그에게 깊은 열등감을 심어주는 인물로 제시된다. 모차르트를 다룬 영화 ‘아마데우스’(1984)의 두 인물, 곧 모차르트와 살리에리의 대립구조와 같다.
아마 관객이 이 영화를 낯설어한다면 주인공 동주보다 몽규의 활약이 도드라져 보이기 때문일 테다. 실제적인 주인공은 몽규인데, 영화가 대중성을 고려해 동주를 강조한 게 아닐까 하는 의문마저 든다. 그만큼 몽규는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당당한 천재의 풍모를 느끼게 한다. 만약 몽규를 강조했다면 영화는 영웅적 주인공을 찬양하는 수많은 사례 가운데 하나에 머물렀을지 모른다. 관객은 그런 영웅 서사를 더 좋아할 수도 있다. 그런데 나는 영화 ‘동주’의 미덕은 ‘다름’의 운명을 타고난 젊은 예술가의 초상을 현실성 있게 그려낸 데 있다고 본다.
동주는 사람들과 잘 섞이지 못하고, 나라를 잃고도 사적인 시 쓰기를 멈추지 못하며, 그래서 그런 자신이 부끄러워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하는 모순적인 청년이다. 동주가 거사를 앞두고도 자기 시집을 출간하려고 조바심 내는 후반부는 천생 시인이자, 보기에 따라서는 ‘좀팽이’ 같은 존재와 다름 없는 예술가의 한 속성을 고백하는 장면일 테다.

젊은 예술가의 초상
동주의 미덕은 사회적 명예를 누리는 데는 쓸모없어 보이는 맑은 양심뿐이다. 그 양심 때문에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라며 ‘시인의 슬픈 천명’을 괴로워한다(윤동주 시 ‘쉽게 씌어진 시’ 중에서).
제임스 조이스 소설 ‘젊은 예술가의 초상’ 주인공은 자기 의지로 가족, 국가, 종교를 초월한 의도적 고립자다. 의지에 의해 사회와 불화할 수밖에 없는 존재, 이건 조이스가 그린 예술가의 초상이다. 반면 영화 ‘동주’는 의지보다 타고난 ‘낙인의 운명’에 끌려가는 게 예술가의 천성에 더 가깝다고 그린다. 나에겐 그게 ‘동주’의 미덕이다. 말하자면 동주는 제임스 조이스보다 토마스 만이 그린 예술가의 초상화에 더 가까운 시인이다.





입력 2016-03-14 11:34:38

  • 영화평론가 hans427@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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