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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을 주거나, 웃음을 주거나

이준익 감독의 ‘변산’

감동을 주거나, 웃음을 주거나

[사진 제공 ·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사진 제공 ·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움베르토 에코가 말하길, 영화에 상투성(클리셰)이 한두 개 등장하면 웃음만 나오게 하지만 수백 개의 상투성은 우리를 감동시킨다고 했다. 상투성도 수백 개에 이르면 하나의 역량이 되고, 그런 상투성 속에서 관객은 다른 작품들을 불러내는 예술적 유희를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에코의 책 ‘포스트모던인가 새로운 중세인가’에 나오는 얘기다. 에코는 아마 수많은 문학적 인용을 도입한 자신의 소설 ‘장미의 이름’을 사례로 꼽고 싶었겠지만, 그가 언급한 작품은 할리우드 고전 ‘카사블랑카’(1942)였다. 

이준익 감독의 ‘변산’은 영화적 상투성이 혼재된 작품이다. 장르의 공식들을 뒤섞어놓았다. 고향을 떠난 청년 학수(박정민 분)가 래퍼에 도전하는 뮤지컬로 시작해, 학수의 부친 살해에 가까운 증오를 다룬 가족멜로드라마, 그 이유를 캐는 스릴러, 고향에서 고교 동창 선미(김고은 분)를 만나는 로맨틱코미디, 건달이 된 친구와 경쟁하는 조폭드라마까지. 요즘 영화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영화적 관습을 대거 끌어다 쓰고 있다. 장르 혼합은 일본 영화의 특기이기도 한데, 이를테면 나카시마 테쓰야의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2006)은 코미디와 뮤지컬, 그리고 스릴러를 유려하게 섞어 대중으로부터 큰 사랑을 받았다. 

고향 변산을 떠나 서울에서 래퍼를 꿈꾸며 고군분투하는 학수는 마츠코처럼 한 통의 전화를 받는다. 부친이 쓰러져 입원해 있는데, 위독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외동아들 학수는 고향에 내려갈 생각이 전혀 없다. 학수 아버지는 과거 가족을 내팽개친 조폭이었다. 지금의 불행이 아버지로부터 비롯됐으니, 병문안은커녕 이참에 모든 관계를 끊고 싶어 한다. 단절된 부자관계가 ‘변산’의 첫 번째 갈등이다. 한국 영화에서 좀 심하다 싶을 정도로 우려먹는 ‘효도 테마’가 여기서도 반복된다. 

고향 변산은 ‘폐항’이 됐고, 과거의 가난은 고스란히 남아 있다. 학수는 여기서 벗어나고 싶어 사투리를 버리고 ‘서울말’만 썼다. 선미는 고교 시절 ‘문재(文才)’로 이름 날렸던 학수를 동경했다. 선미는 등단을 준비하는 예비작가지만, 겉멋이 잔뜩 낀 학수에게 그는 ‘시골 처녀’일 뿐. 로맨틱코미디의 오래된 공식, 곧 ‘제 파트너를 인지’하는 데 이르는 과정이 ‘변산’의 두 번째 갈등이다. 이 갈등의 해결도 짐작될 것이다. 

이 감독의 영화는 기복이 좀 있다. ‘사도’(2014)와 ‘동주’(2015)를 만들 때 감각이 늘 발휘되지는 않는다. ‘사도’ 에필로그에 나오는, 정조가 갖은 고생을 한 모친 혜경궁 홍씨(사도세자의 처) 앞에서 효심을 표현하는 ‘왕의 춤’ 시퀀스는 오래도록 기억될 명장면이다. ‘변산’의 에필로그에도 춤이 등장한다. 영화 속 인물들이 한데 어울려 춤을 춘다. 이 에필로그 형식은 인도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클리셰인데, ‘변산’에 이 장면이 왜 필요한지 한참 고민하게 만든다. 

고향, 가족, 효심, 첫사랑 같은 아름다운 가치들, 그리고 그 가치를 응원하는 랩의 향연(대부분 박정민이 실제로 부른다)에서 느낄 수 있는 ‘변산’의 미덕이 ‘감동’이 될지, ‘웃음’이 될지는 고스란히 관객의 영화 보기 경험에 달렸다.




주간동아 2018.07.18 1147호 (p74~74)

  • | 영화평론가 hans42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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