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35

2018.04.25

한창호의 시네+아트

주체적 삶을 위해 ‘집’ 떠나는 소녀들을 응원하며

그레타 거위그 감독의 ‘레이디 버드’

  • 입력2018-04-24 13:3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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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제공 · 유니버설픽처스인터내셔널코리아]

    [사진 제공 · 유니버설픽처스인터내셔널코리아]

    고교 졸업반인 크리스틴(세어셔 로넌 분)은 자기 이름을 ‘레이디 버드’로 바꿨다. 부모가 준 이름으로는 더는 불리고 싶지 않아서다. 그만큼 자의식이 강하다. 졸업 후 고향 새크라멘토를 떠나 동부의 폼 나는 명문대에 진학하는 게 꿈이다. 그래야 지긋지긋한 집을 벗어날 수 있다. 

    하지만 집안 사정은 여의치 않다. 간호사인 엄마(로라 멧캐프 분)는 지금 크리스틴이 다니는 사립고 학비도 벅찬데, 학비가 더 비싼 동부 명문대 진학은 어림없다고 못 박는다. 학교 폭력이 무서워, 오직 딸을 위해 ‘비싼’ 사립학교에 보낸 점을 하루도 빼놓지 않고 강조한다. 물론 크리스틴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 ‘잔소리’다. 

    2002년 이라크전쟁 당시가 배경인 ‘레이디 버드’는 ‘프란시스 하’(2012)와 ‘우리의 20세기’(2016)에서 독립적 여성의 이미지를 선보였던 배우 그레타 거위그의 두 번째 연출작이다. 단독 연출로는 첫 작품인데 만듦새가 만만치 않다. 한 소녀의 성장기를 다루며 당시 및 현재의 미국 사회문제까지 예리하게 짚는다. 

    당시 청년실업이 심각해 소위 ‘지잡대’(지방에 있는 잡스러운 대학)를 나온 오빠는 마트에서 임시직으로 일한다. 그 모습을 본 레이디 버드는 명문대 진학에 더욱 매달린다. 공립고와 사립고의 차이는 이미 벌어져 있다. 악화된 사회격차 문제가 사실은 이라크전쟁 때부터 본격화됐다는 점을 놓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어서 집을 탈출해 어른이 되고 싶은 딸의 대척점에 엄마가 서 있다. 엄마는 사실상 가장이다. 남편은 실직했고, 아들은 취업준비생이다. 시간외근무까지 하며 겨우 살림을 꾸리고 있는데 철없는 딸은 부자처럼 행동하고, 등교 때 가난한 아빠가 부끄러워 학교로부터 꽤 떨어진 곳에서 차를 내린다. 집안 사정에 맞추려면 지역 주립대에 진학하면 될 텐데, 뉴욕처럼 ‘문화가 있는’ 동부 도시의 대학에 진학하겠다니 엄마로선 말문이 막힌다. 레이디 버드에게 엄마는 넘어서야 할 장벽이고, 엄마에게 딸은 어서 커야 할 응석받이다. 이 모녀 사이 갈등이 서사의 주요 축이다. 



    ‘레이디 버드’는 고전 ‘이유없는 반항’ (1955)부터 최근 ‘보이후드’(2014)까지 끊임없이 사랑받는 성장영화다. ‘레이디 버드’의 다른 점은 고전적인 ‘오이디푸스 갈등’을 다룬 소년 중심의 서사가 아니라는 데 있다. 여기엔 부모에게 종속됨을 거부하며 자기 이름을 스스로 지은 소녀가 성좌의 중심에서 빛나고, 소년들은 주변부에서 스쳐 지나간다. 아니 소년들은 용기가 없어 커밍아웃을 하지 못한 인물(‘맨체스터 바이 더 씨’의 루커스 헤지스), 또는 겉멋만 잔뜩 든 위선자(‘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티모시 샬라메) 같은 부정적 역할에 머문다. 

    이렇게 ‘레이디 버드’는 일반적인 성장영화와 달리 여성 주체의 삶에 눈뜬 10대 소녀의 모험을 응원한다. 2018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성으로는 유일하게 감독상 후보에 오른 거위그의 당찬 이미지가 고스란히 반영된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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