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04

2015.09.07

불행한 진실일수록 기억해야 한다

‘인문학, 삶을 말하다’ 시리즈

  • 김현미 기자 khmzip@donga.com

    입력2015-09-07 13:4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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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행한 진실일수록 기억해야 한다

    대안연구공동체 작은책/ 길밖의길/ 각 권 6000원

    문학평론가 황현산 교수는 “인문학이란 사람을 사람으로 대접하려는 생각을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기르는 공부”라고 했다. 그러나 지난해 4월 295명의 사망자를 내고도 9명의 실종자를 찾지 못해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세월호 참사와 올해 사망자 36명, 확진자 186명, 격리자 1만6693명을 기록하며 전국을 대혼란에 빠뜨렸던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는 우리가 과연 ‘사람대접’이나 받으며 살고 있나 의문을 품게 만들었다. ‘사람대접’은커녕 ‘개떡 같은 대접’에 분노하지 않았던가.

    “인문학은 현실 진단학”이라고 선언하고 ‘개떡 같은 대접’에 대한 비판적 사유를 바탕으로 대안을 모색하는 이들이 있다. ‘대안연구공동체’가 펴내는 작은책 시리즈 ‘인문학, 삶을 말하다’는 그 사유의 결과물이다. 8월 1일 시리즈 1차분 ‘좌파는 어디 있었는가?’(장의준), ‘삼성이 아니라 국가가 뚫렸다’(김재인), ‘곡해된 애덤 스미스의 자유경제’(서동은), ‘왜 우리에게 불의와 불행은 반복되는가?’(문병호)가 세상에 나와 주목을 받았다. 김종락 대안연구공동체 대표는 이 책의 기획 의도에 대해 “그동안 벼려온 개념과 사유로 현실의 구체적인 문제를 파헤치고 이를 세상에 내놓자는 것”이라고 했다. 그것이 인문학자, 특히 철학자가 해야 할 몫이라는 것이다.

    9월에도 2차분 4권이 나왔다. ‘어떻게 이런 식으로 통치당하지 않을 것인가? : 푸코로 읽는 권력, 신자유주의, 통치성, 메르스’(심세광), ‘이제 누가 용기를 낼 것인가? : 세월호와 메르스가 제기하는 종교 비판’(신익상), ‘생명, 그 소중하고 비루한 이름 : 피로사회의 종식을 위하여’(황수영), ‘혼자 살 것인가, 함께 누릴 것인가? : 현존철학으로 제안하는 인문민주주의’(조광제)다. 1차분에서는 레비나스의 사유,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비판이론, 들뢰즈·과타리의 이론, 애덤 스미스의 공감경제학 등으로 현실을 진단하고 대안을 모색했다면, 2차분은 과학과 종교, 푸코와 프랑스 생명철학, 현존철학 등으로 진단 도구의 폭을 확대했다는 것이 기획자의 설명이다.

    ‘어떻게 이런 식으로…’에서 심세광은 푸코의 ‘감시와 처벌’ ‘안전, 영토, 인구’를 참고해 푸코가 전염병 대처 방식에 따라 권력 유형들을 어떻게 분석하는지 살펴보고, 신자유주의 전횡이 어떻게 메르스 현상을 가능하게 했는지 검토했다. 신익상은 ‘이제 누가 용기를…’에서 세월호 참사 유가족이 던진 화두 “우리와 공감해달라”는 호소를 중심으로 고통스러운 기억을 불편해하는 사람들과 ‘공감’을 즐겨 말하면서도 정작 현실에서 ‘기억과 공감’을 저버린 종교에 대해 비판했다. 황수영은 ‘생명, 그 소중하고 비루한 이름’에서 세월호 참사와 메르스 사태를 ‘희대의 생명 모욕 사건’이라 규정하고 “메르스가 병인가, 우리가 병인가”를 묻는다. 끝으로 조광제는 ‘혼자 살 것인가…’에서 홀로 살기보다 다른 생명과 더불어 인문·예술적이고 평화와 평등이 어우러진 삶을 추구하는 ‘인문민주주의’를 제안했다.

    지금까지 나온 8권의 책은 ‘불행한 진실일수록 기억해야 한다’는 기획 의도를 충실히 따르고 있다. 다음 주제는 ‘재벌’이다. 재벌, 떨고 있나.



    불행한 진실일수록 기억해야 한다
    보고 듣고 만지는 현대사상

    박영욱 지음/ 바다출판사/ 384쪽/ 1만9800원

    현대음악가 쇤베르크와 사회주의 사상가 마르크스, 네덜란드 풍경화가 브뤼헐과 의사소통 이론의 대가 하버마스, 현대화가 피카소와 언어학자 소쉬르. 철학자인 저자가 예술가와 사상가를 나란히 놓고 연관성을 찾아내며 현대사상의 흐름을 짚어본다. 독자의 시선은 먼저 이 책에 등장하는 다양한 도판에 끌리지만 곧 ‘예술을 통해 드러나는 사상의 물질성’이라는 텍스트에 다가가게 된다.

    불행한 진실일수록 기억해야 한다
    불순한 언어가 아름답다

    고종석 지음/ 로고폴리스/ 232쪽/ 1만4500원

    3월 네 차례에 걸쳐 진행한 ‘말하는 인간’ 강연 내용을 엮은 책. 언어와 세계, 섞임과 스밈, 언어와 역사, 번역이라는 모험 등 4개 주제로 나눠 우리에게 언어란 무엇인가에 대한 통찰을 들려준다. 특히 오늘날 한국어는 중국어, 몽골어, 일본어와 서양의 수많은 어휘가 스며들어 이뤄진 것이며, ‘순수한 한국어’를 추구하는 것이 언어의 생명력을 부정하는 처사라고 주장한 대목이 눈에 띈다.

    불행한 진실일수록 기억해야 한다
    중국철학은 어떻게 등장할 것인가?

    리쩌허우 지음/ 류쉬위안 외 엮음/ 이유진 옮김/ 글항아리/ 344쪽/ 1만8000원

    평론가 류쉬위안이 묻고 철학자 리쩌허우가 대답하는 형식으로 엮은 책. 리쩌허우는 실용이성, 낙감문화, 무사 전통, 유가와 도가의 상호 보충, 유가와 법가의 호응, 서체중용, 누적-침전설, 제1범주로서의 도(度), 정 본체 등 중국과 서양의 철학적 바탕 위에서 독자적으로 일군 사상들을 설명한다. 그중 ‘한가함이란 근심이 가장 괴롭다’는 말에서 나타나듯이 어떻게 사는가, 왜 사는가, 사는 게 어떠한가의 문제가 진정한 철학 문제라고 말한다.

    불행한 진실일수록 기억해야 한다
    소심해서 그렇습니다

    유선경 지음/ 동아일보사/ 320쪽/ 1만3000원

    타인의 말과 표정, 행동의 변화에 민감한 사람, 상대가 편해야 비로소 자신이 편해지는 사람, 소심해서 더 상처받고 우유부단해서 더 손해 보며, 타인에게 상처나 손해를 주느니 자신이 당하는 게 더 편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이처럼 소심한 사람은 ‘소극적 평화주의자’다. KBS 라디오 ‘출발 FM과 함께’에서 ‘문득, 묻다’ ‘그가 말했다’ 코너를 담당하고 있는 작가가 쓴 감성 에세이.

    불행한 진실일수록 기억해야 한다
    위험한 자본주의

    마토바 아키히로 지음/ 홍성민 옮김/ 사람과나무사이/ 270쪽/ 1만5000원

    평생을 ‘자본론’ 연구에 바친 일본의 대표적인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가 자본주의 사회의 메커니즘을 파헤친 책. 저자에 따르면 의무교육은 숙련 노동자를 만들기 위한 것이고, 높은 실업률은 노동자의 총임금을 낮춰 이익률을 높이기 위한 전략이다. 또 교회와 사회라는 공동체로부터 민중을 분리해 ‘개인’으로 만들고 상속권을 인정한 종교개혁이 아니었다면 자본주의가 뿌리내릴 수 없었다고 분석한다.

    불행한 진실일수록 기억해야 한다
    걸보스

    소피아 아모루소 지음/ 노지양 옮김/ 이봄/ 288쪽/ 1만4000원

    1984년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출생, 10대 시절 취미생활은 히치하이킹, 생계수단은 도둑질. 고교 중퇴에 절도범, 꼴불견 학생, 나태한 직원이던 저자가 어떻게 1000억 원 이상 매출을 올리는 온라인 쇼핑몰 ‘내스티 갤 빈티지’의 창립자가 됐을까. 그가 이베이에서 처음 판 것은 옷이 아니라 서점에서 훔친 책. 이후 그는 이베이에 자신의 숍을 개설해 대성공을 거뒀다.

    불행한 진실일수록 기억해야 한다
    내 곁의 세계사

    조한욱 지음/ 휴머니스트/ 296쪽/ 1만3000원

    이 책의 부제는 ‘오드리 헵번에서 페리클레스까지, 내 곁에 있지만 미처 알지 못했던 사람들의 세계사’다. 전쟁 폐허 속에서 꽃핀 영화배우 오드리 헵번, 인종차별에 대항한 아프리카 국민가수 미리엄 마케바 등 예술인과 아테네의 황금시대를 연 페리클레스, 독재자의 말로를 보여준 차우셰스쿠 같은 정치인 등 현대부터 고대까지 시공간을 망라한 ‘사람들’의 이야기만 모았다.

    불행한 진실일수록 기억해야 한다
    원하는 미래가 한눈에 보이는 학과 100

    동아일보사 콘텐츠기획본부 지음/ 동아일보사/ 712쪽/ 2만3000원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전국 명품학과를 발굴함으로써 서열 중심의 대학 입시 관행을 깨고 점수가 아닌 적성, 비전, 취업률, 비전을 보고 진로를 선택하자는 취지에서 시작된 ‘HOT 100’ 프로젝트 결과가 책으로 나왔다. 교육부의 대학특성화사업 선정 학과와 한국교육정책교사연대가 추천한 우수학과를 중심으로 전국 99개 학과를 선정하고, ‘동아일보’ 기자들이 직접 교수와 학생들을 인터뷰해 검증했다.

    만보에는 책 속에 ‘만 가지 보물(萬寶)’이 있다는 뜻과 ‘한가롭게 슬슬 걷는 것(漫步)’처럼 책을 읽는다는 뜻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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