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간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책 읽기 만보

‘옛날 옛적에 갓날 갓적에’

‘옛날 옛적에 갓날 갓적에’

‘옛날 옛적에 갓날 갓적에’
‘검은 곰은 박(해)의 각시, 하늘 가시나/ 박과 곰이 짝지어 푸른 하늘(한날) 낳았다.// 다(따, 땅)라는 딸도 낳았고,/ 그 딸은 밤을 밝히는 다의 알, 달을 낳았다./ 우리 할배의 할배, 할매의 할매들이 붙인 이름 참 멋있다.// 하늘에, 검에 줄을 드리워 먹이 잡는 검이(거미)도,/ 곰나루도, 밥 짓는 가마솥도, 강물이 휘감아 도는 감은돌이도.// 그 멋진 이름을 웅진(곰나루), 부산(가마뫼), 흑석동, 현석동(감은돌이)으로 누가 바꿔치기했을까?’

도무지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고? “검, 곰, 감, 굼, 김, 금, 가마, 고마, 구미, 개마, 금와, 기미 모두 한 뿌리에서 돋아났다”는 풀이를 먼저 읽었다면 쉽게 이해할 옛날이야기다. 철학자 윤구병 선생이 ‘우리말은 어떻게 생겨났고, 지금까지 무슨 일을 겪어온 것일까’를 입말로 들려준다. ‘내 생애 첫 우리말’은 2011년 5월부터 12월까지 15회에 걸쳐 7명의 수강자와 함께 진행한 ‘우리글말 바로 쓰기 강좌’를 책으로 엮은 것이다. 윤 선생의 강의를 직접 들어야 제맛이지만 ‘고는 높은 데를 가리킨다. 곳도 마찬가지/ 미는 낮은 데를 가리킨다. 밑도 마찬가지// 얼굴에서 오똑 솟은 고(코), 냄새나는 똥구멍 밑// 코는 풀고 밑은 닦는다’를 노래처럼 부르며 입을 놀리다 보면 어느새 강의 현장에 함께 앉아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옛날이야기 첫머리가 흔히 ‘옛날 옛적에, 갓날 갓적에’로 시작되는 걸 들어본 적 있을 거야. 우리말 가운데 지금은 안 쓰지만 ‘예다’는 말이 있었어. ‘가다’는 말과 거의 같은 뜻이야. 그러니까 ‘옛날’이나 ‘갓날’이나 다 같이 지난날이라는 뜻이지.”

풀이에 무릎을 치며 ‘옛날 옛적에, 갓날 갓적에’를 따라 해보라. 그 말이 혀에 착착 감긴다. 이제 세 살배기도, 까막눈 할매도 다 알아듣는 이런 우리말이 어떻게 사라지게 됐는지 생각해보자. 아이는 ‘마’ ‘바’로 말문이 트이지만 부모는 ‘엄마’ ‘아빠’로 알아듣고 기뻐한다. 이가 돋아나고 혀의 움직임이 더 정교해지면서 조금씩 영글어 아이 말이 어른 말로 바뀌는 것이 첫째다. 둘째, 쉬운 말에서 어려운 말로 바뀐다. 가라가 강이 되고 바라가 바다가 되는 것처럼. 셋째, 고향 말에서 타향 말로 바뀐다. 넷째, 나라말이 외국말로 바뀐다. 일제강점기 힘센 나라를 등에 업고 지배하려는 세력에 의해 우리말이 사라졌다. 다섯째, 입말에서 글말로 바뀐다. 귀로 들리는 소리를 붙잡아 글로 옮겨놓은 것을 말글, 글로 쓰인 걸 소리로 옮긴 것을 글말이라고 하면 말글을 잃어버린 우리는 소통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딴 말을 쓰면 딴 생각을 하게 돼. 영어를 쓰면 영미식 사고방식에서 벗어날 길이 없어. (중략) 귀에 선 말들을 잔뜩 들여오면 우리 고유의 상상력과 창조력은 움틀 길 없어. 영토의 식민화보다 말의 식민화가 더 무섭다는 말은 바로 이래서 생겨난 거야.”

‘내 생애 첫 우리말’ 강의는 입씨름도 우리말로, 욕이나 우스갯소리도 우리말로 하자고 한다. 굳은 머리가 확 깨는 기분이다.

‘옛날 옛적에 갓날 갓적에’
누구를 위한 ‘화해’인가
정영환 지음/ 임경화 옮김/ 푸른역사/ 280쪽/ 1만5000원


박유하의 ‘제국의 위안부’와 그를 둘러싼 사태에 대한 종합 비판서. 메이지가쿠인대 교수이자 재일조선인 3세인 저자는 ‘제국의 위안부’가 위안부 제도에 대한 일본의 국가 책임을 최소화하고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자의적으로 왜곡·전유·악용했을 뿐 아니라, 일본의 ‘전후보상’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과대평가하는 치명적 문제점을 안고 있다고 밝힌다. 또한 역사수정주의가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도 지적하고 있다. 


‘옛날 옛적에 갓날 갓적에’
수신기 : 신화란 무엇인가
간보 지음/ 임대근·서윤정·안영은 옮김/ 동아일보사/512쪽/ 2만2000원


초목을 다스린 신농, 비의 신 적송자, 700년을 산 팽조처럼 신과 도술을 부리는 기인들 이야기를 모은 것이 지괴(志怪·괴이한 일의 기록)소설이다. 중국 동진(東晉) 시기 역사가 간보가 쓴 이 책에는 신화, 전설, 민담, 소설이 공존한다. 신비한 현상과 놀라운 일화 뒤에는 인간의 희로애락과 선악시비가 숨어 있어 당대 사람들의 세상에 대한 이해와 희망을 읽을 수 있다.


‘옛날 옛적에 갓날 갓적에’
중국식 룰렛
은희경 지음/ 창비/ 216쪽/ 1만2000원


여섯 편의 단편이 실린 작가의 여섯 번째 소설집. 술, 옷, 수첩, 신발, 가방, 사진, 책, 음악 등 익숙한 사물을 소재로 한 각각의 단편에서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실상을 그려낸다. 파스빈더의 영화 제목에서 따온 표제작 ‘중국식 룰렛’은 K의 술집에 모인 남자 4명이 라벨이 감춰진 위스키를 마시며 신세한탄을 늘어놓지만, 이는 사실 거짓에 기댄 진실게임이며 진실로 향하게 하는 열쇳말임을 보여주는 이야기다.


‘옛날 옛적에 갓날 갓적에’
지리산 암자 기행
김종길 지음/ 미래의창/ 304쪽/ 1만5000원


지라산 최고 전망대로 꼽히는 금대암과 유장한 섬진강을 굽어보는 연기암. 인간 세상을 잊게 만드는 비경은 이 산을 오르는 자에게만 허락된다. 인터넷에서 필명 ‘김천령’으로 알려진 저자가 지리산 암자 50여 곳을 모두 탐방하고 그중 23곳을 골라 소개했다. 그의 안내에 따라 걷다 보면 어느새 ‘하늘에 가까운 땅’에 오르고 ‘침묵의 깊은 목소리’를 이해하게 된다.


‘옛날 옛적에 갓날 갓적에’
그림 동화 남자 심리 읽기
오이겐 드레버만 지음/ 김태희 옮김/ 교양인/ 712쪽/ 2만8000원


소년 헨젤은 왜 두 번이나 자신을 버린 부모의 집으로 돌아올까. 독일 옛날이야기 가운데 ‘헨젤과 그레텔’은 전형적인 의존욕구와 귀환중독이라는 심리현상을 보여준다. ‘두 형제’ ‘수정 구슬’ ‘북 치는 소년’ 등 남자의 내적 성장을 다룬 4편의 그림 동화 내용을 심층심리학적으로 분석했다. 신학자인 저자는 성모 마리아의 처녀 수태 같은 기적을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이는 성서 해석을 비판해왔다.


‘옛날 옛적에 갓날 갓적에’
구약 성서로 철학하기
요람 하조니 지음/ 김구원 옮김/ 홍성사/ 436쪽/ 3만3000원


신앙과 이성에 대한 이분법적 사고가 구약 성서를 해석하는 데 결정적인 방해 요소라고 말하며 구약 성서에 대한 파격적인 해석을 시도한다. 원래 구약 성서는 이성적 사유의 결과물이지만, 초기 기독교가 자신들의 신앙을 고수하려고 계시적 성격만 부각한 탓에 구약의 핵심을 읽어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신시온주의’를 주창하며 이스라엘 최초 인문학 대학인 살람대의 기초를 세웠다.


‘옛날 옛적에 갓날 갓적에’
테크놀로지
다니엘 R. 헤드릭 지음/ 김영태 옮김/ 다른세상/ 264쪽/ 1만3800원


미국 역사학자가 “문명이 진보를 의미한다면 왜 소수의 지역에서만 문명이 존재했던 걸까”라는 의문에서 출발해 ‘테크놀로지’라는 코드로 인류 문명사를 조망했다. 석기시대를 끝낸 것은 청동이 아니라 철의 등장이며, 8세기 말 사용된 등자가 유럽에 전파되자 연쇄적인 무기 혁신이 이뤄지고 전쟁 혁명이 일어났다고 분석한다.



‘옛날 옛적에 갓날 갓적에’
점령을 살다
라자 샤하다 지음/ 이광조 옮김/ 경계/ 264쪽/ 1만5000원


저자는 ‘세계의 화약고’라 부르는 팔레스타인에서 태어나 인권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그의 아버지는 1948년 이스라엘 건국으로 고향 자파에서 쫓겨나 라말라로 건너온 뒤 의문의 죽임을 당한다. 저자는 라말라가 이스라엘 점령하에 놓이게 된 1967년부터 일기를 써왔고, 그중 2009년부터 2012년까지 일기에서 팔레스타인들이 겪고 있는 폭력과 트라우마에 대해 담담히 들려준다.



만보에는 책 속에 ‘만 가지 보물(萬寶)’이 있다는 뜻과 ‘한가롭게 슬슬 걷는 것(漫步)’처럼 책을 읽는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입력 2016-07-12 10:22:44

  • 김현미 기자 khmzip@donga.com
다른호 더보기 목록 닫기
1080

제 1080호

2017.03.22

이슈는 ‘영입’으로, 논란은 ‘해고’로… 발 디딜 틈 없는 文 캠프 경쟁력은?

목차보기구독신청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