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12

2015.11.09

마흔 살, 자기의 역사를 쓰는 시간

  • 김현미 기자 khmzip@donga.com

    입력2015-11-09 14:25: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마흔 살, 자기의 역사를 쓰는 시간
    아홉 살 소년은 어느 날 이런 궁금증이 들었다.

    “목포를 황무지로 기억하는 나, 서울행 기차 시간을 외우고 전두환 대통령에게 인정받고 싶던 아이, 그 아이의 욕망은 어디에서 출발한 것일까? 이 욕망은 내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것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그 시절의 욕망은 어른이 된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1976년생 오윤은 마흔 살에 자기 역사를 써내려가면서 ‘전라도’라는 삶의 ‘열쇳말’을 찾아낸다. 그의 고향은 서울이지만 그의 피는 전라도였던 것. 아버지 고향은 전북 전주 고덕마을 오씨 집성촌, 어머니 고향은 전북 정읍 칠보면. 어린 시절 어머니 손을 잡고 외갓집으로 가는 길에 대한 기억은 따스함 대신 불편함이었다. “어디 가서 함부로 전라도가 고향이라고 말하자 마.” “왜?” “세상이 우리 아들을 잡아먹을 거야.” 모자는 이런 대화를 나눴다.

    아버지 직장을 따라 목포로 이사했다 다시 서울로 돌아와 전학한 첫날 그것은 현실이 됐다. 선생님이 새로운 전학생을 소개하자 반장이 다가와 묻는다. “너 전라도에서 왔다면서? 우리 아빠가 전라도 놈은 전부 빨갱이라던데, 앞으로 두고 보겠어. 조심해라.” “나 빨갱이 아니야, 나 전라도 아니야”라고 변명하는 초라한 자신에 대한 기억은 초교 5학년생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다. 아버지의 서울행이 좌절되자 다시 광주로 이사했고 한 달 뒤 직선제 대통령선거를 경험한다. 김대중 아저씨의 패배가 확실해진 순간 아버지가 울었다. 그다음 날 학교에 갔을 때 선생님도, 아이들도 모두 눈시울이 붉어져 있었다. 아니, 그만 빼고 광주 전체가 울고 있는 것 같았다.

    대학수학능력시험에 이어 대학별 본고사가 있었던 1994년 그는 한 대학 기숙사에서 다음 날 치를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다. 같은 방을 배정받은 대구 아이가 어머니와 통화하는 소리가 들린다. “잘 봤다. 걱정 마라. 내일 논술이랑 제2외국어 시험 있는데 별로 걱정 안 해도 된다. 응. 룸메이트 서울 아다. 전라도 새끼랑 같은 방 쓰면 재수 없을 뻔했는데 다행이다.” “왜 저 새끼는 전라도를 싫어하는 것일까? 왜 나 역시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침묵하고 있는 것일까?” 자신만만한 룸메이트와 주눅 든 자신의 모습을 비교하며 그는 또 울었다.



    ‘내 아버지로부터의 전라도’는 개인의 역사이자 한 가족의 역사, 우리 사회의 역사다. 오윤은 그렇게 부모도 아들도 외면하고 회피하려 했던 전라도라는 숙명이 삶의 빛깔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써내려간다. 그 과정에서 아버지가 밀봉해뒀던 가족사, 즉 6·25전쟁과 이념 갈등 속에서 빨치산이 됐던 작은할아버지, 고모의 이야기를 찾아내고 아버지가 끌어안고 있던 ‘불안감의 근원’을 이해하게 된다.

    ‘내 아버지로부터의 전라도’가 문학적으로 주목받을 작품인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치유로서의 글쓰기’의 모범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동안 자신의 삶을 살았던 게 아니라,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타인의 마음에 드는 삶을 살고자 버둥거리다 상처받은 사람에게 ‘자기 역사 쓰기’를 권한다. 아니, 이 책을 읽다 보면 당장 공책 한 권을 채우고 싶어질 것이다.

    마흔 살, 자기의 역사를 쓰는 시간
    책벌레와 메모광

    정민 지음/ 문학동네/ 252쪽/ 1만5000원


    책 주인을 표시하는 ‘장서인’에도 한중일 차이가 있다. 한국에선 전 주인의 장서인을 잘라 흔적을 지우는 데 주력하고, 일본은 기존 장서인에 소(消)를 찍어 가린 뒤 그 옆에 새 장서인을 찍는다. 중국은 주인이 바뀔 때마다 장서인을 덧붙인다. 저자가 ‘18세기 한중 지식인의 문예공화국’에서 하지 못한 옛 선비들과 책에 얽힌 이야기를 정리했다. 1부는 책벌레, 2부는 책의 여백에 단상을 써놓는 메모광 이야기다.

    마흔 살, 자기의 역사를 쓰는 시간
    음악 본능

    크리스토프 드뢰서 지음/ 전대호 옮김/ 해나무/ 488쪽/ 1만8000원


    음악성은 극소수만 지닌 천부적 재능이 아니라 누구나 태어날 때부터 지닌 인간의 기본 능력이다. 그럼에도 음악을 듣는 사람은 늘어나는데 직접 하는 사람은 줄어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독일 과학저널리스트인 저자가 음악을 들을 때 우리 머릿속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설명하고, 아울러 능동적 음악활동이 뇌 구조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마흔 살, 자기의 역사를 쓰는 시간
    신들의 연기, 담배

    에릭 번스 지음/ 박중서 옮김/ 책세상/ 520쪽/ 2만5000원


    멕시코 팔렝케 유적 벽에는 담배를 피우는 마야인의 모습을 새긴 부조가 있다. 담배를 신이 내려준 선물로 추앙하며 제의와 질병 치료에 사용했던 1500년 전 마야문명부터, 미국 보건위생국 보고서를 통해 암 질환의 주범으로 공식 발표된 1964년까지 담배 역사가 펼쳐진다. “나는 이 세상에 담뱃불을 빌리러 왔다”는 마크 트웨인의 말이 거리로 내몰린 애연가들의 마음을 위로할지도 모르겠다.

    마흔 살, 자기의 역사를 쓰는 시간
    리얼 차이나:오늘의 중국을 읽는 키워드 33

    길호동 지음/ 이담북스/ 322쪽/ 1만5000원


    중국인 하면 ‘차’가 떠오르지만 도시 거리마다 속속 커피숍이 생기고 농촌에서는 차나무를 뽑고 커피나무를 심고 있다. 현대·기아자동차그룹 이노션월드와이드 중국지역본부장을 역임하며 20년간 중국에서 생활한 저자가 진짜 같은 가짜 산자이(山寨), 세대차를 뜻하는 다이거우(代溝), 특권층을 가리키는 블랙칼라 등 33가지 키워드로 우리가 알아야 할 중국의 속살을 보여준다.

    마흔 살, 자기의 역사를 쓰는 시간
    죽는 게 뭐라고

    사노 요코 지음/ 이지수 옮김/ 마음산책/ 200쪽/ 1만2000원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모두 죽은 사람이다. 나도 죽으면 모두들 ‘좋은 사람이었지’라고 추억해줄까. 죽으면 그런지 아닌지도 모를 테니 시시하다.” 기묘한 삼단논법 같지만 사노 요코니까 할 수 있는 말이다. “돈과 목숨은 아끼지 말거라”가 신념인 작가는 시종일관 “죽는 건 아무렇지도 않다”고 말한다. 2010년 72세에 세상을 떠난 작가가 생의 끝자락에서 기분 좋게 투덜거린다.

    마흔 살, 자기의 역사를 쓰는 시간
    당신의 아이가 수학을 못하는 진짜 이유

    박영훈 지음/ 동녘/ 331쪽/ 1만5000원


    ‘수학시험에서 높은 성적을 받지 못하면 아이의 지적 능력이 부족한 것일까’라는 의문에서 이 책은 출발한다. 수학교사들에게 수학교육을 가르치는 저자는 아이들이 수학을 못하는 진짜 이유를 교육법에서 찾는다. ‘풀어주는 대로 따라 풀기만 하면 누구나 정답에 이르는’ 이른바 내비게이션 수학이 아이를 망친다는 것. 실패할 수밖에 없는 교육정책에 대한 신랄한 비판과 대안을 제시했다.

    마흔 살, 자기의 역사를 쓰는 시간
    파인 리틀 데이 : 어느 멋진 날

    엘리사베트 둥케르 지음/ 황덕령 옮김/ 동아일보사/ 232쪽/ 1만5800원


    인터넷 블로그 ‘파인 리틀 데이’를 통해 전 세계에 북유럽 스타일을 소개해온 저자가 자신의 작업실, 수집한 물건, 직접 만든 인테리어 소품, 세컨드 하우스와 함께 북유럽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특히 자연을 그대로 옮겨온 듯한 아름다운 디자인과 주변에 버려진 것들을 재활용하는 핸드메이드 아이디어 등에서 북유럽 라이프스타일의 진수를 발견할 수 있다.

    마흔 살, 자기의 역사를 쓰는 시간
    이철희의 정치 썰전

    이철희 지음/ 인물과사상사/ 308쪽/ 1만5000원


    박근혜 정부를 ‘원칙과 소신 뒤에 가려진 무능한 행정’이라고 평가한다면 그것을 뒷받침하는 것은 ‘리더십은 없고 스타십만 있는 야당’이다. 상대가 있는 게임이 정치이고 선거는 더더욱 그렇기 때문이다. 이론과 현실을 오가며 한국 정치에 촌철살인의 돌직구를 날리는 저자가 ‘패배가 습관이 된’ 야당에 애정 어린 비판을 했다. 이 책을 관통하는 주제는 ‘진보가 이기려면’.

    만보에는 책 속에 ‘만 가지 보물(萬寶)’이 있다는 뜻과 ‘한가롭게 슬슬 걷는 것(漫步)’처럼 책을 읽는다는 뜻이 담겨 있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