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36

2016.05.04

法으로 본 세상

독재시대 못 벗어난 군법과 군 검찰

국군의 ‘기소휴직제도’ 남용

  • 입력2016-05-03 09:3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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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 인사법상 ‘기소휴직제도’를 남용한다는 비판을 받는 육군군사법원.[뉴스1]

    군 인사법상 ‘기소휴직제도’를 남용한다는 비판을 받는 육군군사법원.[뉴스1]

    우리 군에는 ‘기소휴직제도’가 있다. 군 인사법에 따라 장교나 부사관 등 군 간부에게만 적용되는데 ‘사형, 무기, 또는 장기 2년 이상 징역이나 금고에 해당하는 사건’으로 기소됐을 경우 임용권자가 직권으로 휴직을 명할 수 있다. 기소휴직이 되면 월급의 절반만 받을 수 있고, 확정 판결이 나지 않으면 계속 휴직하게 할 수 있다. 단기복무 장교라도 기소휴직이 되면 전역할 수 없다. 그러니 휴직의 장기화와 전역 불능 사태를 걱정해 항소를 포기하는 경우도 있다. 이쯤 되면 ‘징벌적 휴직’이란 말을 들을 수밖에 없다.

    이러한 불합리성 때문에 2009년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는 확정 판결 이전이라도 하급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경우 기소휴직자를 복직시키도록 권고했다. 그해 5월 국방부는 인권위 권고안대로 군인사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지만 말뿐이었다. 겨우 의원입법으로 약간만 바뀌어 오늘에 이른다. 그러니 문제는 여전하다. 일반병의 경우 의무 복무기간이 지나면 제대를 시키고 사건을 민간 법원으로 이송하지만, 의무 복무 장교는 복무기간이 끝났어도 재판을 포기하지 않으면 제대하지 못하고 계속 군사재판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실제 기소휴직 명령을 받고 최종 판결이 나오기까지 전역이 2년 4개월이나 늦어진 전직 장교 A씨가 있었다. 결국 군 복무기간이 2배가량 연장된 셈이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최근 A씨가 “군이 공소권과 기소휴직제도를 남용해 피해를 봤다”며 국가를 상대로 5000만 원을 청구한 소송에서 “2000만 원을 지급하라”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대학원에서 사학을 전공한 A씨는 2009년 6월 학사장교로 임관해 해군사관학교에서 생도들에게 한국사를 가르치는 일을 맡았다. 군 검찰은 2011년 4월 A씨가 이적표현물을 제작·소지·반포해 국가보안법(국보법)을 위반했으며 군 입대 전 촛불시위에 참가해 야간옥외시위도 했다는 혐의로 기소했다. 공소사실에 포함된 이적표현물에는 한국역사연구회가 편찬한 ‘새로운 한국사 길잡이’를 인용·편집한 강의 노트와 ‘헤겔 법철학 비판’ ‘해방전후사의 인식’ ‘아리랑’(님 웨일스 저) 등 시중에서 판매되거나 해사 도서관에도 있는 책이 다수 포함됐다.

    보통군사법원은 문제가 된 이적표현물 12건 가운데 5건만 인정하고 촛불시위를 유죄로 인정해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벌금 20만 원을 선고했다. 고등군사법원은 국보법 위반은 모두 무죄로 보고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위반만 인정해 벌금 20만 원을 선고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2014년 9월 집시법 위반까지도 무죄를 선고했다. 군은 2011년 4월 기소휴직 명령을 내렸고, 대법원 판결이 나온 2014년 9월에야 복직을 명했다. 본래 A씨의 전역일은 2012년 5월이었다.



    재판부는 “3년의 의무 복무기간이 예정된 원고로서는 복무기간 만료가 그만큼 늦어지고, 사회생활로 복귀해 학업을 계속하거나 직업을 구하는 등 새로운 생활을 준비할 기회를 잃게 됐다”며 위자료 2000만 원 지급을 명한 것이다.

    시대착오적인 이적표현물과 촛불시위 기소도 우습지만, 군의 보복적 휴직 연장은 치졸하다. 우리는 또 이렇게 21세기에 군사독재 시절의 불합리를 반추하고 있다. 대체 무엇 때문에 아직까지도 군인은 ‘제복을 입은 시민’으로서 누려야 할 권리조차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것일까. 헌법 제39조 2항은 ‘누구든지 병역의무의 이행으로 인하여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아니한다’고 했다. 우리는 정녕 군사정권을 몰아내고 민주화를 이룬 나라에서 살고 있는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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