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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 닐슨의 글로벌 경제 읽기

글로벌 금융도시는 금융인 삶까지 만족시켜야

EU 금융 중심지로 파리가 뜨는 이유

글로벌 금융도시는 금융인 삶까지 만족시켜야

브렉시트(Brexit) 이후 유럽 금융의 무게 중심이 영국 런던에서 프랑스 파리로 이동하고 있다. 사진은 파리의 상징 에펠탑. [동아DB]

브렉시트(Brexit) 이후 유럽 금융의 무게 중심이 영국 런던에서 프랑스 파리로 이동하고 있다. 사진은 파리의 상징 에펠탑. [동아DB]

2016년 브렉시트(Brexit)에 대한 투표 결과에 전 세계는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이는 곧 영국 경제에 얼마나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까에 대한 우려로 이어졌다. 그러나 지난 2년간 영국 경제는 우려했던 것만큼 타격을 입지는 않았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영국이 지금까지 치열하게 방어해왔지만 어쩔 수 없이 포기해야 할 것이 하나 있다. 바로 미국 뉴욕과 함께 세계 금융 중심지로 손꼽히던 런던의 위상을 지키는 일이다. 

브렉시트가 성사되면 런던에서 아무런 제약 없이 유럽연합(EU) 국가들과 비즈니스를 하는 것이 더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많은 금융회사가 EU 국가 중 하나에 사무실을 새로 만들어 EU 관련 비즈니스를 그곳으로 옮겨야 한다. 이렇게 되면 많은 금융 인력이 런던을 빠져나가게 될 테고, 이로 인해 영국 내 일자리 수가 엄청난 영향을 받을 수도 있다. 정부의 세금 역시 줄어들게 될 것이다. 

이를 막고자 영국 정부는 여러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EU 측에 서로의 금융 규제를 인정하자는 제안을 내놓았고, 금융회사들이 EU 국가에 사무실을 내더라도 꼭 필요한 기능만 수행하고 나머지 일들은 런던 사무실에서 처리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또한 정산소 등 이제까지 런던에 자리하던 것들을 모두 그대로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글로벌 금융 중심 도시의 요건

이렇듯 지난 2년간 영국 정부는 금융 관련 회사와 기관들을 붙잡아놓으려고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다. 그럼에도 그다지 효과적이지 않은 듯싶다. 올해 들어 국제금융 사회는 암묵적으로 런던의 자리를 파리가 나눠 가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대형 글로벌 투자회사들이 이미 파리로 사무실을 이전할 계획을 세웠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이런 결정을 한 곳은 뱅크오브아메리카(Bank of America)와 시티그룹(Citigroup)이다. 뒤를 이어 제이피모건(J. P. Morgan)과 블랙록(Blackrock)의 파리 사무실 확장 소식이 들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파리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유럽의 새로운 금융 도시 후보지로 여겨지지 않았다. 오히려 독일 프랑크푸르트와 아일랜드 더블린이 유력 후보지로 자주 거론됐다. 

세계은행(World bank)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조사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세계금융센터지수(Global Financial Center Index)는 세계 주요 도시가 금융 중심지로 얼마나 적합한지를 측정해 순위를 발표한다. 가장 최근 것은 9월에 발표됐는데, 뉴욕이 1위고 런던이 아직까지는 그 뒤를 잇고 있다. 10위 안에 홍콩, 싱가포르, 상하이, 도쿄, 시드니, 베이징, 취리히, 프랑크푸르트가 있다. 참고로 서울이 33위, 파리는 22위, 그리고 부산이 44위에 올라 있다. 이 순위는 글로벌 금융시장에 종사했던 필자의 경험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금융 중심지가 될 수 있는 요건은 무엇일까. 이 요건 가운데 가장 중요하게 생각되는 것이 영어로 일하고 살기에 얼마나 편한 곳인가 하는 점이다. 영어로 모든 것이 쉽게 해결돼야 글로벌 인재들을 끌어올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중요한 요건은 규제 환경이다. 규제가 너무 심한 곳에서는 금융 비즈니스를 하기 힘들어서다. 그런데 금융 자체에 대한 규제보다 더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것이 바로 고용 관련 규제다. 금융 분야는 그 자체가 굉장히 경쟁적인 곳이다. 대형 금융사들은 이 글로벌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인력 구조를 고용과 해고를 통해 비교적 유동적으로 유지하고 싶어 한다. 

다른 요건들로 교통 등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는지, 쾌적한 사무공간과 주거 단지가 충분한지, 좋은 학교들이 있는지도 중요하다. 이와 더불어 문화생활을 쉽게, 자주 할 수 있는 환경이어야 한다. 도시 전체가 미국 월가 유형의 고액 연봉자를 수용할 수 있는 개방적인 분위기인지도 중요한 요건 가운데 하나다.


“It is too boring”

전북혁신도시에 자리 잡은 국민연금 신사옥. [동아DB]

전북혁신도시에 자리 잡은 국민연금 신사옥. [동아DB]

그렇다면 세계금융센터지수에서 전통적으로 자산운용과 프라이빗뱅킹(PB)서비스의 허브로 여겨지던 취리히나 새로운 금융 중심지가 되려고 엄청나게 노력 중인 프랑크푸르트보다 객관적 요건들에서 뒤처진 파리가 어떻게 갑자기 런던을 대체할 가장 유력한 대안 도시로 떠올랐을까. 많은 금융인은 비엔피 파리바(BNP Paribas)나 소시에테제네랄(Societe General) 등 파생상품 트레이딩에서 다른 글로벌 투자은행에 뒤지지 않는 금융회사를 접하고 프랑스 규제당국, 금융 관련 공무원들과 일하는 것이 다른 도시 규제당국과 일하는 것보다 훨씬 수월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프랑스 정치인들이 세계 굴지의 투자회사 수장을 만나 파리를 세일즈하는 모습도 언론에서 자주 볼 수 있다. 이 같은 노력도 아주 큰 몫을 했을 것이다. 그뿐 아니라 파리에는 금융인은 물론, 그들과 함께 이주해야 하는 가족이 모두 동의할 만한 이유가 하나 더 있다. 바로 무료하지 않다는 점이다. 

취리히와 프랑크푸르트가 런던의 대안 도시로 강력하게 거론되던 때, 한 언론이 현재 런던에 살고 있고 금융인 남편을 둔 주부를 인터뷰했다. “어디로 이주하고 싶은가”라는 물음에 그의 대답은 다음과 같았다. 

“취리히에 가면 공기가 좋고 자연도 아름답겠죠. 프랑크푸르트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런던에서는 아이들이 사립학교에 다니는 데 엄청난 돈을 써야 하지만, (다른 곳에서는) 아이들 학비도 안 들 거고요. 그런데, 너무 심심해서 (It is too boring) 못 살 것 같아요.” 

막대한 학비를 아낄 수 있지만, 결국 돈 문제만은 아니었던 것이다. 금융 중심지가 되려면 그전에 금융 중심지에 살았던 사람들의 다양한 삶의 욕구를 채워줄 수 있는 도시가 먼저 돼야 한다. 이런 점에서 유럽의 어느 도시도 파리를 이길 수 없다. 

런던을 대체할 대안 도시를 찾고 있는 유럽의 모습에서 대한민국의 전북 전주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전주는 수백조 원을 운용해야 할 국민연금이 옮겨갔고, 막대한 자금을 운용할 금융 인재를 끌어들여 금융 특화도시를 꿈꾸고 있다. 그렇다면 우선적으로 글로벌 금융인의 자녀가 다닐 수 있는 좋은 학교를 짓고, 금융인 가족이 가고픈 멋진 레스토랑도 많이 만들며, 극장 등 문화와 여가를 즐길 수 있는 활기찬 도시를 이루는 데 먼저 투자해야 하지 않을까. 최소한 이런 것에 대한 비전은 보여줘야 하지 않을까.




주간동아 2018.11.09 1163호 (p52~53)

  • |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 Ynielsen@skku.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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