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90

2015.06.01

커지는 빈부격차 주원인은 노인 빈곤

젊어서는 최장 노동, 늙어서는 가난에 시달리다 마감하는 한국인의 삶

  • 김창환 미국 캔자스대 사회학과 교수 chkim.ku@gmail.com

    입력2015-06-01 10:4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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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지는 빈부격차 주원인은 노인 빈곤

    기초연금 신청이 시작된 2014년 7월 1일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동 주민센터 앞에서 노인들이 ‘기초연금에서 배제된 빈곤노인, 대통령 도끼상소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가장 가난한 기초생활수급자 노인이 기초연금 20만 원을 받을 경우 그만큼을 생계급여에서 빼버리니 아무 혜택이 없는 셈”이라고 말했다.

    얼마 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세계 각국의 빈부격차가 더 심해졌다고 발표했다. 한국의 불평등 수준은 공식 통계에 따르면 OECD 회원국의 평균 정도였다. OECD 전체 34개 회원국의 평균 상대적 빈곤율은 11.2%이고, 한국의 빈곤율은 전 연령대를 모두 포함하면 14.6%이다. OECD 회원국 중 8번째로 상대적 빈곤율이 높지만, 그렇다고 예외적으로 높은 수준은 아니다. 65세 이상 노인층을 제외하면 오히려 OECD 평균 이하다. 문제는 한국 65세 이상 노인층의 상대적 빈곤율이 49.6%로 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았다는 점이다(그래프 참조). 도대체 한국의 빈곤 문제는 얼마나 심각하고, 노인 빈곤율은 왜 이토록 높은 것일까.

    잠시 개념을 정리하고 넘어가자. 상대적 빈곤율은 중위소득(median income) 절반 이하의 가처분소득을 올리는 인구의 비율을 뜻한다. 중위소득이란 소득 순위를 백분율로 매길 때 50% 분위의 경계 값에 해당하는 소득이다. 가처분소득은 세금과 복지, 모든 공적 부조를 고려한 가구 소득이다. 경제적 삶의 질을 결정하는 소득이라 할 수 있다. 통계청의 2013년 조사에 따르면, 가구별 규모의 경제까지 모두 고려했을 때 1인당 가처분소득의 중위 값은 2135만 원이다. 따라서 한국의 상대적 빈곤율은 1인당 소득이 그 절반인 1067만 원에 미치지 못하는 인구의 비율을 뜻한다.

    옆의 그래프는 한국의 연령대별 상대적 빈곤율과 OECD 전체 회원국의 연령대별 상대적 빈곤율 평균을 보여준다. 한국에서 0~17세 빈곤율은 8%에 불과하다. OECD 평균보다 5%p 정도 낮다. 심각한 노인 빈곤율과는 정반대로 이 연령층에서 한국의 빈곤율은 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낮은 편이다. 미세하지만 스웨덴의 아동 빈곤율(8.3%)보다 더 낮다. 18~25세 청년층의 빈곤율도 9.1%로 매우 낮은 편이다. 북구 복지국가인 노르웨이(30.0%)나 네덜란드(21.9%)에서 우리를 배워야 할 판이다. 26~65세 노동 연령층의 빈곤율(9.7%)도 그리 높지 않아서 OECD 평균(9.9%)과 비슷하다.

    커지는 빈부격차 주원인은 노인 빈곤
    그러나 65세 이상 인구에서는 OECD 회원국 가운데 독보적으로 높아진다. OECD 평균은 12.6%이지만 우리는 그보다 37%p 많아 4배에 육박한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우리의 40%에 불과한 멕시코의 노인 빈곤율은 31%로 우리보다 19%p 낮다. 다른 나라들은 아동 빈곤율보다 노인 빈곤율이 1%p가량 낮지만, 한국은 노인 빈곤율이 아동 빈곤율보다 42%p 가까이 높아 6배나 된다. 한국은 65세 미만에서는 빈곤 문제가 별로 없는 모범국가인 반면 65세 이상에서는 전 세계 최악의 빈곤 국가다.

    한국 노인층의 자살률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이유도 경제적 문제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젊을 때는 최장 노동시간에 시달리고, 은퇴 후에는 경제적으로 비참한 삶을 살다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것, 이것이 현재 우리 사회의 모습이다. 한국만큼 경제적 발전을 이룩했음에도 노인의 경제적 삶을 돌보지 않는 국가는 인류 역사상 없었다. 유교적 전통을 간직하고 노인을 공경하는 문화를 가진 나라라는 이미지는 환상일 뿐이다. 전 세계에서 노동연령층에 비해 은퇴 후 삶이 가장 피폐해지는 국가가 바로 한국이다. 이쯤 되면 동방예의지국이 아니라 고려장 국가에 가깝다.



    경제가 아니라 정치다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한국의 연령대별 빈곤율 양상은 1960년대 이전 미국의 연령대별 빈곤율 양상과 비슷하다. 50년대 말 미국의 65세 이상 노인층의 빈곤율은 35%에 달했다. 아동 빈곤율보다 2배가량 높았다. 하지만 2012년 현재 미국에서 65세 이상 인구의 공식 빈곤율은 8.7%에 불과하다. 그사이 빈곤율이 75% 가까이 떨어졌다. 오히려 아동 빈곤 문제가 악화해 18세 이하 연령층의 공식 빈곤율이 21.9%에 달한다.

    미국에서 노인 빈곤율이 낮아진 가장 큰 원인은 연금소득의 증가다. 노인 빈곤율의 역사적인 변화 패턴은 연금소득 증가 패턴과 정확히 일치한다. 잉겔하트와 그루버의 연구에 따르면 1967년과 2000년 사이 노인 빈곤율 감소분 17%p가 모두 공적연금인 사회보장소득(Social Security Income)의 효과로 설명된다. 공적연금이 빈곤율 감소에 기여한 정도를 측정하려면 사회보장소득을 제외하고 2012년 미국 65세 이상 노인층의 현재 빈곤율을 계산할 경우 그 비율이 44.4%로 치솟아 우리와 비슷해진다. 한국보다 불평등 정도가 큰 미국 노인들이 한국 노인들보다 경제적으로 질 높은 생활을 영위하는 거의 유일한 이유는 바로 공적연금인 사회보장소득이라는 뜻이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살인적인 노인 빈곤율을 해결하는 거의 유일한 방법은 공적연금 강화다. 그중에서도 다수 국민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국민연금을 강화하는 사회제도 개혁을 통해 노인 빈곤 문제를 풀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얼마 전 논란이 된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50% 인상에 대해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이 보인 태도는 심히 유감스럽다. 국민연금을 강화해야 할 책임 있는 주무장관이 연금과 관련해 가능성이 거의 없는 시나리오에 입각해 국민적 불신을 초래하는 것은 부적절했다. 높은 적립금은 연금 도입 초기의 특징일 뿐, 연금이 성숙되면 적립금은 자연스럽게 줄어든다. 미국 사회보장소득의 적립금도 우리보다 훨씬 낮다.

    한국의 아동과 노동계층에서 빈곤율이 낮게 나타나는 것은 우리에게 노인 빈곤을 해결하는 데 필요한 경제적 자원이 부족한 것은 아니라는 방증이다. 노인 빈곤은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하는 경제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합의와 정치적 결정을 통해 풀 수 있는 정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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