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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패권주의’의 세 가지 차원

영호남 격차는 엘리트 계층에서 두드러져…현실성 낮은 구호, 대중이 호응할까

‘영남패권주의’의 세 가지 차원

‘영남패권주의’의 세 가지 차원

2011년 5월 20일 김진표 민주당 원내대표가 영등포 당사 대회의실에서 열린 최고위원회 회의에서 이른바 ‘고소영(고려대, 소망교회, 영남권)개각’과 관련해 발언하고 있다. 동아일보

정동영 전 의원이 국민의당에 합류했다. 정체성이 맞지 않는다는 비판이 있지만, 정 전 의원 본인은 김대중-김종필 연대, 노무현-정몽준 연대를 상기시키며 자신의 선택을 정당화했다. 호남 정치를 부활해 정권교체를 이루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아마도 이런 바람은 정 전 의원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라 적잖은 국민의당 참여자와 지지자의 공통적인 소망일 것이다.
연대란 공동의 적이 있을 때 가능하다. 김대중-김종필 연대와 노무현-정몽준 연대는 다양한 세력을 통합해 이회창 당시 보수진영 후보에게 이기기 위한 공동전선이었다. 당시에는 서로 다른 당에 속해 있으면서 연합정부를 구성하는 느슨한 연대였으나 이번에는 같은 당 깃발 아래 모였다. 과거보다 더 강력한 연대라는 뜻이다.
다양한 의문이 꼬리를 물지만, 국민의당 인사들의 말에 따르면 연대 이유는 ‘기득권 양당의 패권주의 극복’이다. 미국 민주당-공화당 체제에서 보듯 양당제에서 거대 양당이 기득권을 가지는 건 당연하다. 그렇다면 문제는 기득권 양당이 아니라 패권주의다. 정 전 의원은 친노(친노무현)패권주의를 비판했고, 국민의당 주승용 원내대표는 더불어민주당(더민주당)의 친노패권주의가 새누리당의 영남패권주의와 같다고 말했다. 결국 국민의당을 통해 이질적 세력이 연대한 이유는 ‘영남패권주의 극복’이라는 뜻이 된다.



‘인종주의적 차별’은 존재하지 않는다

영남패권주의를 극복하기 위한 정치 기획은 과연 대중의 정치적 요구를 반영하고 있을까. 거칠게 말해 영남패권주의는 세 가지 차원에서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첫 번째는 인종주의적 영남패권주의다. 미국의 인종차별처럼 영남 출신이 사회 전방위적으로 특혜를 누리고 호남 출신이 차별받는다는 주장이다. 두 번째는 엘리트계층 내 권력 배분 기제로서의 영남패권주의다. 한국 현대사에서 박정희 이후 김대중을 제외한 모든 대통령이 영남 출신이었다는 게 대표적인 근거다. 세 번째는 출신 지역이 아니라 지역 발전 전략으로서의 영남패권주의다. 영남만 발전하고 다른 어떤 지역보다 호남의 발전이 지체됐다는 것이다.
인종주의적 영남패권주의를 명시적으로 주장하는 정치인이나 학자는 찾아보기 어렵다. 하지만 인터넷 토론장에서 이런 인식은 널리 퍼져 있다. 실재한다면 문제가 가장 심각하다. 세 가지 영남패권주의 가운데 가장 포괄적인 개념인 데다, 대중의 삶과 직접 연관돼 있기 때문이다. 이 가설이 옳다면 영남패권주의에 반대해 연대를 구성할 수 있는 물질적 기반은 실제로 존재하는 셈이다. 이 경우 국민의당을 중심으로 한 반(反)패권주의 연대는 현실성을 떠나 적어도 사회정의를 담보하는 것이 된다. 필자처럼 노동인구학을 전공하고 미국 인종 문제도 연구하는 이의 시각에서는 가장 관심이 가는 주장이다.
이 때문에 필자는 여러 자료를 통해 검증을 시도했지만 인종주의적 영남패권주의가 존재한다는 증거는 발견하기 어려웠다. 2010년 인구총조사 자료를 이용해 노동시장에 참여하는 25~54세 성인의 직업 분포를 살펴보자. 영남에서 태어난 노동자가 호남 출생자보다 더 높은 직업·지위를 차지한다는 증거가 없다. 광주 출생자의 21%가 관리직이나 전문직에 종사하므로 대구(21%)나 부산(20%) 출생자와 다르지 않다. 특별시가 아닌 광역시나 도 간 차이도 1~2%p에 지나지 않는다.
청년층에서 영남 출생자가 더 이득을 보는 것도 아니다. 대졸자 직업 이동경로 조사 자료를 이용해 서울 소재 4년제 대학 졸업자의 졸업 직후 노동시장 성과를 보면 영남 출생 남성은 73%, 호남 출생 남성은 69%가 취업했다. 언뜻 영남 출생자가 앞서는 듯 보이지만 월급을 따져보면 호남 출생자는 269만 원이고 영남 출생자는 264만 원으로 뒤집힌다. 대졸 여성 노동자 중에서는 호남(71%)의 취업률이 영남(68%)보다 높다. 노동패널 자료를 이용한 다른 연구에서도 영호남 출생자 사이 의미 있는 임금 격차는 발견하지 못했다. 심지어 서울 강남3구 거주민의 출생지역을 살펴봐도 영남과 호남 사이에 유의미한 차이가 없다.
혹자는 출생지역으로는 지역 효과를 파악할 수 없고 출신지역을 봐야 한다고 주장할 것이다. 사회과학에서 흔히 말하는 ‘선택편향효과’를 통제해야 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호남 출신이 출신지를 숨기는 이유는 호남 출신자의 불이익을 완화하기 위해서다. 이 경우 출신지역 효과는 줄어들면 줄어들지 늘어나지는 않는다. 선택편향의 방향이 필자의 결론을 약화하기보다 오히려 강화한다는 얘기다. 결론은 명확하다. 다수 대중이 영남패권주의에 대항해 연대할 수 있는 물질적 기반은 찾기 어렵다. 한국 사회에서 인종주의적 영남패권주의를 가정한 정치 기획이 성공하기 어려워 보이는 이유다.



권력의 문제, 정치의 문제

반면 두 번째 차원인 엘리트 내부의 권력 배분 기제로서의 영남패권주의는 매우 쉽게 확인된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이른바 ‘고소영’(고려대, 소망교회, 영남 출신)이 권력을 장악한다고 비판받았다. 박근혜 정부에서도 현재 5대 사정기관 수장 전원이 영남 출신이다. 정치권력만이 아니다. 경제 권력도 영남 집중이 심하다. 인터넷 경영분석 사이트 ‘CEO스코어’가 2013년 한국 30대 상장사 사장급 인원의 출신 고교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42%가 영남 출신인 반면, 호남은 6%에 불과했다.
경제 권력이 영남에 집중된 이유는 1970년대 고도성장기 시절 관치경제로 영남 출신자의 기업이 특혜를 받았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이 특혜는 경부선을 중심으로 한 국가 발전 전략과 일치한다. 경제 권력의 영남패권은 정치 권력의 영남패권이 만들어낸 산물일 개연성이 높다. 이렇게 놓고 보면 엘리트 권력의 영남패권에 대한 가장 쉬운 해결책은 정권교체라는 답이 나온다.
마지막으로 지역 불균형 발전 문제를 살펴보자. 호남지역의 저발전은 이 지역 출신의 경제적 기회를 저해한다. 2010년도 인구총조사 자료를 이용해 분석해보면 25~29세 청년층 가운데 출생 시도와 현재의 거주 시도가 일치하는 비율은 52%다. 대도시 간 차이는 미미하다. 대구 출생자 가운데 현재 대구에 거주하는 비율은 51%, 부산은 51%, 광주는 54%이다. 전북(46%)과 경북(46%)도 별 차이가 없다. 하지만 전남은 다른 지역보다 젊은 층의 이주율이 높고 출생지와 현 거주지의 일치율(32%)이 유독 낮다. 전남지역의 소외감에는 분명히 물질적인 근거가 있다.
그러나 전남의 소외를 기반 삼아 지역 간 연대를 끌어낼 수 있을지는 의심스럽다. 다른 지역보다 발전 속도가 빠르고 인구도 유입되고 있는 충청지역에서 ‘반영남패권주의 연대’라는 구호에 동참할 것이라 기대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나 TK(대구·경북) 정권 하에서도 경북의 발전이 경기도나 경남보다 앞서나가지 못했음을 고려하면 정권교체가 지역 발전을 보장하지도 않는다는 결론이 나온다.
요약하자면 이렇다. 인종주의적 영남패권론에는 근거가 없다. 엘리트 계층 내부의 영남패권은 정권교체로 수정 가능하겠지만, 전남의 지역 발전 지체는 새로운 기획을 필요로 한다. 결국 영남패권주의 반대라는 깃발을 흔들어 여러 이질적인 세력이 연대한다는 그림은 현실성이 높지 않아 보인다. 다수 대중의 물질적 이해가 접하는 지점이 매우 협소하기 때문이다. 국민의당이 가고 있는 길이 그다지 현명해 보이지 않는 이유다.




입력 2016-02-29 15:21:23

  • 미국 캔자스대 사회학과 교수 chkim.ku@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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