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59

2014.10.20

해외투자 우산을 써야 하는 이유

한 국가 투자는 위험천만…포트폴리오 차원에서 반드시 고려해야

  • 이상건 미래에셋 은퇴연구소 상무 sg.lee@miraeasset.com

    입력2014-10-20 11: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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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가의 전설’ 하면 먼저 떠오르는 인물이 피터 린치다. 그는 마젤란펀드를 13년간 운용하면서 2700%라는 빼어난 수익률을 거뒀다. 더욱 대단한 것은 미국 증시 역사상 최대 하락폭을 기록했던 1987년 블랙먼데이 때도 플러스로 마감했다는 점이다. 1800만 달러(약 192억 원)에 불과하던 펀드 자산도 그가 퇴임하던 90년에는 140억 달러(약 14조9000억 원)로 불어 있었다. 당시 미국 최대 펀드였다고 한다. 140억 달러는 당시 에콰도르 GNP(국민총생산)보다 큰 규모다. 가입자의 90%는 미국 베이비붐 세대였다. 미국 100가구 중 1가구가 마젤란펀드에 가입했을 정도로 그는 ‘국민 펀드매니저’로 인정받았다.

    우리나라 돈으로 15조 원 가까운 돈을 운용하면서도 어떻게 13년간 단 한 해도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먼저 린치의 뛰어난 운용 실력을 꼽을 수 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왜냐하면 블랙먼데이 같은 초대형 쇼크(shock)가 발생하면 그 누구라도 거센 폭우를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급작스러운 폭우에 대한 유일한 해결책은 비가 오지 않는 곳으로 숨는 것뿐이다.

    마젤란펀드가 찾은 돌파구

    린치가 꾸준한 수익률을 거둘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바로 해외투자에 있었다. 해외투자가 꾸준한 수익률의 1등 공신은 아니더라도 2등 공신 구실은 했다. 마젤란펀드는 미국 내 주식에만 투자하는 국내 주식형 펀드가 아니었다. 린치는 펀드 규모가 커짐에 따라 운용 대상을 늘릴 수밖에 없었고, 결국 해외로 눈을 돌렸다.

    펀드로 자금이 유입되면 펀드매니저는 주식을 사야 한다. 그대로 현금을 들고 있을 수 없는 노릇이다. 본인 판단 기준에 맞는 국내 종목을 대부분 사들였는데 계속 펀드로 자금이 유입된다면, 다른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린치가 찾은 돌파구는 다름 아닌 해외투자였고 영국 더바디샵, 스웨덴 볼보 같은 주식을 펀드에 채워 넣기 시작했다. 만일 린치가 펀드 규모는 계속 커지는데도 국내에만 투자했다면 그렇게 빼어난 성과를 거두지 못했을 확률이 높다.



    펀드 투자에서 간혹 간과하는 논의가 바로 ‘규모의 문제’다. 규모와 펀드 성과의 관계는 딱 맞아떨어지는 수학 문제는 아니다. 규모가 작다고 운용 성과가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게다가 적정 규모라는 것을 추산하기도 어렵다. 펀드매니저나 운용회사의 역량에 따라 감당할 수 있는 규모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지나치게 규모가 커진 경우 운용 방식을 불가피하게 바꿔야 한다는 점이다. 100억 원을 운용하는 것과 1조 원을 운용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또 1조 원과 2조 원도 차원이 다르다. 100억 원을 운용할 때처럼 1조 원이나 2조 원을 투자할 수는 없는 법이다. 워런 버핏도 자기 경험을 들어 “운용 자산 규모가 크면 실적에 방해가 될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규모가 커진 경우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은 운용 방식을 바꾸거나 투자 대상 범위를 넓히거나 일정 시점에 펀드 판매를 중지해버리는 것(소프트 클로징)이다. 이 세 가지 가운데 현실적으로 세 번째 방법을 쓰는 경우는 거의 없다. 가게 문을 열어놓고 장사하지 않겠다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대상 넓혀 분산투자 효과 극대화

    해외투자 우산을 써야 하는 이유

    ‘월가의 전설’로 불리는 피터 린치.

    투자 대상을 넓히기도 쉽지 않다. 예를 들어, 국내 주식형 펀드라고 하면 무조건 국내 주식에 펀드 자산의 70%를 투자해야 하기 때문이다. 처음 판매될 때부터 해외에 투자할 수 있는 펀드라면 모를까 현재로서는 국내 주식형에서 해외에 투자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운용회사 대부분이 첫 번째 방법인 운용 방식 변경을 선택할 공산이 높다고 보는 게 합리적인 시각일 터다.

    여기서 펀드 규모가 커지는 시기도 생각해봐야 한다. 펀드 수익률이 나쁠 때는 돈이 들어오지 않는다. 펀드로 자금이 유입되는 것은 시장이 좋거나 수익률이 좋을 때다. 시기를 나눠 돈이 유입되지 않고 대략 1, 2년 시기에 돈이 집중되는 현상이 나타난다. 만일 자금 유입 후부터 펀드에 편입된 주가가 하락하기 시작한다면 그 펀드에 가입한 사람은 짧은 기간 안에 손실을 입게 될 것이다.

    규모가 갑자기 커진 대형 펀드 가운데 일부가 언론의 주목을 받다 1~ 2년 뒤 급작스레 냉대받는 패턴이 나타나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펀드의 인기 행진이 원인을 제공할 때가 많다. 물론 모든 펀드에 ‘높은 수익률→자금 유입→펀드 규모 확대→운용 방식 변경→성과 부진’의 패턴이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경험적으로 이런 패턴이 자주 발견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마젤란펀드의 성과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 먼저 한 국가에만 투자해 지속적으로 펀드 규모를 늘리기란 결코 쉽지 않다는 점이다. 해외에 투자할 수 있는 펀드가 아니라면, 개인투자자가 스스로 해외투자 비중을 늘려야 한다. 특히 한 나라의 경제는 부침이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해외투자는 포트폴리오 보호막 차원에서라도 꼭 필요하다. 해외투자를 위해 펀드를 고를 때도 한 국가만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시아·태평양 같은 지역이나 글로벌 차원으로 투자 대상을 넓힌 펀드를 선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분산투자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규모가 너무 커진 펀드는 조심스럽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앞서 말했듯이 어느 정도가 적정 규모인지를 잘라 말할 수는 없다. 또 규모가 더 커져도 운용을 잘할 수 있다. 그러나 규모는 때때로 성과의 부정적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 지나친 인기와 쏠림은 때때로 추락이라는 비극으로 끝날 수 있다.

    어느 시대나 인기 있는 투자 대상은 있었다. 그 목록을 적어보면 몇 쪽 분량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인기가 투자 성과를 보장하지는 못한다. 인기가 신기루인지, 아니면 정당한 이유가 있는지는 시간이 증명해줄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 유형의 펀드에 집중투자를 하는 것이나 인기 펀드를 좇는 것은 경험적으로 볼 때 불운한 결과를 낳는 경우가 적잖았다. 경험과 시간이 전해주는 교훈은 나누고 쪼개는 분산투자가 번거롭고 지루해 보이긴 해도 장기적으로는 더 훌륭한 전략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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