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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나대면 다친다’ 박근혜式 군기 잡기

4성급 인사 충격요법 본격화…파격 그림 만드는 ‘숨은 손’은 누구

‘나대면 다친다’ 박근혜式 군기 잡기

‘나대면 다친다’ 박근혜式 군기 잡기

박근혜 대통령이 9월 16일 오전 청와대에서 군 장성(대장급)들로부터 진급 및 보직신고를 받고 있다.

“나도 방송 보고서야 알았다.” 9월 14일 정부가 4성급 장군 인사를 발표한 직후 진급 대상에 포함된 한 장성이 기자에게 전한 말이다. 이번에 인사 대상에 포함될 수 있다는 사실 자체는 알고 있었지만 발표 시점까지 당사자들조차 미리 통보받지 못했다는 얘기다. 상상을 초월하는 이 같은 ‘엄중보안’은 군 주변에서 ‘9·14 쇼크’로 부르는 이번 인사의 핵심을 들여다볼 수 있는 열쇠 중 하나다.

인사 내용을 미리 파악하지 못했던 것은 청와대 국가안보실과 국방부를 포함해 관련 부서 대부분이 마찬가지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사상 첫 육군3사관학교 출신 합참의장 발탁이나 한국군 전체 대장급 8명 가운데 7명을 교체하는 엄청난 규모의 인사가 되리라는 사실 모두 별다른 징후가 없었다는 것. 유임된 정호섭 해군참모총장이 2월 취임한 것을 감안하면 사실상 전원 교체나 마찬가지인 이번 인사로 군이 받은 충격은 가늠조차 쉽지 않다.

국방부가 인사 후보군에 해당하는 이들의 명단을 정리해 청와대에 제출한 것이 8월 말. 그러나 이 명단은 말 그대로 ‘자격 요건에 부합하는 풀(pool) 전체’를 취합한 것에 가까울 뿐, 특정 인사를 임명해달라는 취지는 아니었다는 게 군 안팎의 정설이다. 9월 초 발표가 유력하다는 소문이 파다했던 인사는 계속해서 미뤄졌고, 몇몇 언론이 9월 7일 발표될 것이라며 ‘군불 때기’에 나섰지만 결과적으로 사실이 아니었다.

따지고 보면 애초 9월 8일 국무회의가 대통령이 아닌 국무총리 주재였음을 감안하면 이날 인사 발표가 이뤄지기는 쉽지 않았다. 4성 장군에 대한 인사는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야 하는 합참의장을 제외하면 모두 국무회의 의결사항으로, 대통령이 주재하는 회의에서 처리하는 게 그간의 관례. 한민구 국방부 장관이 해외 일정으로 자리를 비웠음에도 14일 전격적으로 발표가 이뤄진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이튿날인 15일을 놓치면 추석 연휴를 지나 10월까지 일정상 불가능해질 수도 있었다는 것. 요컨대 마지노선까지 밀리고 밀려 발표된 인사라는 뜻이다.

대구여서 발탁? 대구여서 주저?



뚜껑이 열리고 난 뒤 군 당국 주변에서는 이번 인사가 누구의 작품인지를 두고 갖가지 추측이 난무했다. 한민구 장관의 뜻이 주로 반영됐다는 관측이 있는가 하면, 독일 유학파 출신이 포함됐다는 점을 들어 김관진 국가안보실장이 한몫을 거들었다는 시각도 있다. 이는 인사를 앞두고 떠돌았던 설왕설래와도 맥이 닿는다. 당초 안보당국 주변에서는 김 실장이 조만간 주요국 대사 등 다른 자리로 이동할 것이라는 소문이 한창이었고, 이 때문에 ‘이번 인사는 한민구 장관이 주도할 것’이라는 예상이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8·25합의 이후 김 실장의 존재감이 급속히 강화된 후에는 오히려 ‘김관진 실장이 인사를 주도할 것’이라는 반론이 힘을 얻기도 했다. 인사 논란이 어느 때보다 뜨거워진 것 또한 이 때문이었다.

그러나 청와대 내부 기류에 정통한 인사들의 설명은 이와 전혀 각도가 다르다. 답은 하나, ‘박근혜 인사’라는 것이다. 대구 출신으로 대구고 14회인 이순진 합참의장 내정자는 여권 핵심 실세로 손꼽히는 최경환 경제부총리의 고교 1년 선배이자 조현천 국군기무사령부 사령관의 4년 선배다. 최 부총리의 이름은 지난해 10월 조 기무사령관 임명 당시에도 인사 배경으로 거론된 바 있다. 더욱이 군 최고지휘관인 합참의장과 군 당국 동향을 면밀히 파악해 대통령에게 보고하는 기무사령관이 같은 고교 선후배인 경우는 김영삼 정부 이래 처음. 이러한 ‘지역적 특징’은 호남 출신이 한 명도 없었던 이번 인사 결과와 맞물려 뒷말을 증폭시키기도 했다.

반면 청와대 당국자들은 “대통령의 뜻은 일찌감치 ‘비(非)육사 출신 발탁’으로 정해져 있었지만, 이 내정자의 출신 지역과 고교가 어떤 해석을 낳을지 정치적 부담이 염려스러워 발표가 지연된 것에 가깝다”고 설명한다. 대구고 출신이어서 이 내정자가 발탁된 게 아니라 오히려 그 때문에 결심이 늦어졌다는 것. 추후 진행될 3성급 인사에서 조 기무사령관이 유임되는지 여부를 지켜보면 ‘대통령의 뜻’이 한층 명확히 드러나리라는 설명도 뒤를 잇는다. 한 정부 관계자의 말이다.

“기수도 맞지 않는 3사 출신을 합참의장에 임명하겠다는 아이디어는 육사 출신으로 점철돼 있는 국방부와 청와대 주류 누구도 꺼낼 수 없는 인사안이다. 김관진 실장이나 한민구 장관, 박흥렬 대통령경호실장까지, 대통령 주변에서 조언할 만한 인물은 모두 마찬가지다. 더욱이 박 대통령이 군 인사와 관련해 ‘누구는 누구 라인이라더라’는 후문에 극도로 거부감을 느끼고 있음은 이들이 가장 잘 알고 있다. 그 같은 상황에서 이렇듯 ‘도발적인 그림’을 주도할 수 있는 사람은 대통령 한 사람뿐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이 같은 설명은 깜짝 놀랄 만한 인사를 합참의장으로 임명한 게 처음이 아니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더욱 설득력을 얻는다. 최윤희 합참의장이 발탁된 2013년 9월 인사에서도 국방부는 이를 미리 알지 못했고, 오히려 막판까지 육군참모총장이 승진 기용되는 것으로 확신하고 있었다. 그러나 최종 결심은 최윤희 당시 해군참모총장의 승진. ‘한국군 주류’를 자임하는 육사 출신 인사들의 시각으로 보자면 두 차례 연속 ‘물을 먹은’ 셈이다. 이 때문에 외부에서 보는 것과 달리 박 대통령이 군에 대해 매우 비판적인 시각을 갖고 있고, 그러한 판단이 계속해서 인사에 반영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날이 갈수록 힘을 얻는다. 또 다른 안보당국 관계자의 말이다.

“대통령이 군 인사 관련 뒷말을 끔찍이 싫어한다는 건 이번 인사의 주요 후보군이던 육사 37기 출신 장군들만 봐도 알 수 있다. 당초 박지만 EG 회장과 친분이 두텁다고 알려져 ‘대장 진급 1순위’로 통했던 이들은 모두 탈락했다. 이른바 ‘37기와 박지만 문제’가 반복적으로 거론되는 것에 대해 청와대가 얼마나 경계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결과다. 대통령의 심기가 그렇다면 인사와 관련해 누가 감히 선뜻 얘기를 꺼낼 수 있었겠나.”

하나 남는 퍼즐 조각은 ‘그렇다면 도대체 누가?’다. 박 대통령 본인이 군 내부 역학관계의 디테일을 모두 꿰뚫어볼 수는 없음을 감안하면, ‘비육사 출신 합참의장’이나 ‘사실상 전원 교체’ 같은 미묘한 카드를 만들어 대통령에게 제안한 이는 따로 있으리라는 결론으로 자연스레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청와대와 국방부는 물론, 안보당국 어디에서도 그게 누구인지 혹은 어떤 그룹인지에 대해 이렇다 할 정설이 없다. 모두가 궁금해하지만 답은 베일에 가려져 있는 기묘한 형국. 박 대통령이 공식라인 외에 외부 그룹으로부터 자문을 받고 있는 것 아니냐는 추측마저 떠도는 이유다.

기억해야 할 것은 이번 인사의 유효기간이 1년 6개월에 그칠 공산이 크다는 점이다. 통상 임기대로라면 이번에 임명된 4성 장군들은 2017년 10월 인사에서 교체돼야 맞지만, 대통령선거가 임박한 시점에서 최고지휘관들을 일거에 물갈이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결국 그해 4월 인사가 박근혜 정부로서는 마지막 타이밍인 셈. 시한이 짧을수록 진급경쟁은 격렬할 수밖에 없지만, 섣불리 나섰다가는 오히려 역풍을 맞기 십상이라는 게 함정이다. 군 고위지휘관들로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처지에 놓인 셈이다.

앞서 본 것처럼 이번 인사에 안보당국 수뇌부에 대한 박 대통령의 ‘질책’이 담겨 있다면 향후 연말인사를 통해 장관급 이상 인사 교체 카드가 나올 개연성이 충분하다는 점도 지켜봐야 할 대목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북한 지뢰도발과 8·25합의 이후 안보당국이 어느 때보다 상종가를 치고 있지만, 실제로는 좌불안석에 가깝다는 의미다. 대통령의 ‘군기 잡기’가 다양한 층위에서 예기치 못한 파장을 일으키고 있는 셈. 뜻하지 않은 충격일수록 효과는 오래가기 마련이다.



주간동아 2015.09.21 1006호 (p30~31)

  • 황일도 기자 shamo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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