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05

2015.09.14

군인공제회와 시행사의 진실게임

PF로 부동산 개발…호황기엔 윈윈, 불황기엔 나만 살자

  • 구희언 기자 hawkeye@donga.com

    입력2015-09-14 09: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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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인공제회와 시행사의 진실게임

    군인공제회가 5월 공매를 통해 사업권을 넘긴 경기 남양주 화도읍 녹촌리 사업장.

    “군인공제회의 갑질로 파산할 위기에 처했다.”

    경기 남양주에서 아파트 개발 사업을 해온 한 중소 시행사가 군인공제회와의 법정 싸움에서 패소했음에도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군인공제회는 군인공제회법에 의해 군인과 군무원의 생활 안정 및 복지 증진을 도모하고자 설립한 비영리 사단법인이다.

    A사는 2009년부터 남양주 화도읍 녹촌리에서 시공사 쌍용건설, 대주 군인공제회와 800여 가구의 아파트 개발을 추진해왔다. 2010년 3월 프로젝트파이낸싱(PF)을 통해 보증을 서고 시행사가 군인공제회로부터 대출받은 850억원에 대한 지급 보증을 선 쌍용건설은 2012년 12월 자금사정 악화로 워크아웃에 들어갔다. 같은 해 주택건설사업계획 승인을 받고 아파트 착공에 들어갔던 사업도 중단됐다. A사는 “해당 사업장은 토지계약금부터 인허가 경비, 운영비 등 148억 이상을 투입해 일군 곳이다. 아파트 개발 인허가를 마치고 착공과 분양을 앞둔 상황에서 군인공제회 측에 리파이낸싱(refinancing)과 시공사 변경을 수차례 요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군인공제회는 우리와 사전 협의 없이 공매로 사업 대지를 다른 사업자에게 넘겼다. 운영 경비를 지급받지 못해 자체 자금을 투입했고, 이 때문에 임직원들은 임금 체불로 경제적 파탄 위기에 놓였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법원은 A사가 군인공제회 자회사인 대한토지신탁을 상대로 낸 공매절차 중지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대주이자 우선수익자인 군인공제회의 공매 요청이 위법하거나, 채무자인 대한토지신탁이 신탁계약상 의무를 위반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다.

    “군인공제회의 갑질” vs “시행사의 억지”



    군인공제회는 4월 7일 이사회 결의를 통해 해당 사업장 공매를 결정했다. 1차 공매 예정가는 1404억 원, 공매 최저가는 475억 원이었다. 이에 대한토지신탁은 5월 1일 공매 공고를 내고 11~13일 사흘간 9차례 공매를 진행한 결과, B건설이 공매 마감에 임박해 475억 원으로 단독 입찰, 매매계약을 체결했다.

    군인공제회는 이에 대해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없는 절차”라고 답했다. 군인공제회 관계자는 “자회사인 대한토지신탁과 B건설사의 매매계약이 체결돼 잔금을 받고 마무리된 사업장이다. 쌍용건설의 법정관리로 자금 회수가 불가능해지자 우리가 가진 사업장 토지 담보권과 사업시행권을 적법한 절차로 쓴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A사는 “공매 정보가 사전에 유출됐고, 우리를 이 사업에서 배제하려는 의도가 있었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며 공매 과정에서 석연치 않은 점이 있다고 주장했다.

    “군인공제회 관계자들은 ‘입찰자가 없다, 유찰될 것’이라며 걱정 말라고 누차 이야기했는데, 내부적으로는 다른 입찰자가 있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또한 공매 기간 입찰 의사가 있는 사업자라면 현장에 와서 추이를 지켜보게 마련인데, B사는 8차까지 이어진 공매 현장에는 나타나지도 않다 공매 마감 5분 전 갑자기 나타나 최저가를 맞춰 내고 낙찰을 받았습니다. 공매를 반대하던 공제회 관계자 C씨는 4월 초 의결장에서 말을 바꿔 공매를 하자고 했는데, 알고 보니 같은 달 B사에 대표이사로 취임한 D씨가 그와 같은 건설회사 출신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이 모두 우연일까요.”

    A사가 제공한 협력업체 관계자와의 녹취록을 보면 대한토지신탁이 공매 공고를 낸 것은 5월 1일이지만, 협력업체 관계자가 대한토지신탁 관계자로부터 ‘해당 사업장을 인수하려는 업체가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은 시점은 그보다 앞선 4월 20일쯤이다. 군인공제회 건설 부문 부이사장 C씨와 B사 대표 D씨는 대형 건설사인 E건설사에서 각각 사업부장과 임원을 역임했다. 현재 A사는 군인공제회와 자회사인 대한토지신탁을 상대로는 민사소송을 준비하고 있고, 낙찰자인 B사와 해당 사업장 설계사를 상대로도 소송을 진행 중이다.

    군인공제회는 해당 내용에 대해 “시행사의 일방적인 주장에 불과하다”며 “모두에게 공개된 공매 절차로 누구나 입찰이 가능했고, 군인공제회에서의 모든 의사결정은 개인이 아닌 이사회 의결로 진행하기 때문에 전제부터 불가능한 주장”이라고 일축했다.

    한 군인공제회 퇴직자는 “군인공제회의 PF는 금융권 PF처럼 단순히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개념이 아니라 대주, 시행사, 시공사 3자가 윈윈(win-win)하자는 개념으로 시작됐다. 군인공제회는 쌍용건설의 법정관리를 예상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시행사로서는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도 아니고, 투자한 돈이 있는데 사업장을 빼앗겨 억울한 부분도 있고, 군인공제회 역시 시공사를 재선정해도 수익이 난다는 보장이 없어 사업장을 빨리 처리하고자 했을 것이다. 절차는 문제가 없지만, 사업 파트너십 개념으로 진행해왔다면 시행사에게도 어떤 식으로든 기회를 주는 게 도의적으로 옳지 않았겠느냐”고 말했다.

    PF사업, 시행사가 피 보는 이유는

    군인공제회와 시행사의 진실게임

    군인공제회는 프로젝트파이낸싱(PF) 글로벌 금융위기와 부동산시장 침체 이후 사업 적자폭이 커지자 포트폴리오에서 부동산 비중을 줄여나가고 있다.

    2004년 주택가격 상승과 금융회사의 대출 경쟁으로 급증한 부동산 PF는 금융기관에게는 고수익을 보장하고, 건설사에게는 부외금융효과를 누리며 다수의 프로젝트를 추진할 수 있게 해준 알짜 수익원이었다. 군인공제회 역시 부동산 호황기 PF사업에서 재미를 보며 건설업계 ‘큰손’으로 불렸으나, 글로벌 금융위기와 부동산 경기 침체 이후 사업 적자폭이 커지며 포트폴리오에서 부동산 비중을 줄여나가는 상황이다. PF사업이 잘못되는 경우는 복합적이지만 시행사 잘못인 경우는 토지소유권을 확보하지 못했거나, 인허가를 받지 못했거나, 자금 압박으로 부도가 났을 때 등이다. 그러나 시공사 부도로 사업이 중단될 때는 귀책사유가 없다고 여기는 시행사와 공매 등으로 시행권 및 사업 대지 등을 매각하고자 하는 대주 간 분쟁이 발생하는 경우가 잦다.

    법무법인 지평의 임성택 변호사는 “애초 PF는 시행사가 책임과 위험을 부담하는 구조다. 국내에서의 PF 약정을 보면 대주 중심으로 계약하는 경우가 많아 시행사가 계약에서 유리한 주장을 하거나 공매 분쟁에서 이기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또한 “시장 상황이 나빠졌거나 분양이 안 되는 등 누구의 책임으로 돌리기 어려운 상황에서는 보통 공매로 남은 부동산을 처분해 이해관계자들이 나눠 갖는데, 우선권자는 대주이고 시행사는 가장 후순위일 경우가 대부분이라 피해를 보는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임 변호사는 “외국에서는 PF가 비소구(Non-Recourse) 금융이라 사업 주체에 대한 상환청구가 제한되지만, 국내에서는 완전소구 금융이라 문제시 시행사는 전 재산을 걸고 책임지고, 시공사는 연대보증을 서는 식의 PF가 남발됐다. 또한 대주가 프로젝트 수익성을 면밀히 검토하기보다 시공사의 신용도만 보고 대출해주다 보니 문제가 발생하는 일도 많았다”고 말했다.

    지난해 국회 국방위원회에 따르면 2002년 이후 군인공제회의 PF사업 투자 규모는 76개 사업, 5조5000억 원이었으나 이 중 16개 사업의 투자금액 회수가 지연됐고 6개 사업의 투자금액(6776억 원)은 회수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4년 군인공제회가 국회에 제출한 ‘최근 5년간 부동산 PF 투자금액 현황’에 따르면 해당 기간 군인공제회의 PF사업 투자 규모는 2조8227억 원이었으나 회수금은 6522억 원에 그쳤고, 손실처리금액은 4398억 원이었다. 군인공제회 관계자는 “과거에는 부동산 투자 비중이 컸지만, 시장 침체 이후 대체투자 비중을 키우고 있다. 현재는 부동산보다 대체투자 비중이 큰 상태로 장기적으로 부동산 대 대체투자의 비율을 3 대 7 정도로 맞출 예정”이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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