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03

2015.08.31

武力보다 무서운 金力

권위주의 정부에서 꽃핀 대학 민주주의, 문민정부 아래 무너져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입력2015-08-31 13:4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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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武力보다 무서운 金力
    “요즘 대학 민주주의가 위기를 맞고 있다는 데는 동의한다. 그러나 그 책임을 정부에만 지우는 건 온당하지 않다. 대학 민주주의는 지난 20년간 계속 후퇴해왔고, 많은 이가 그것을 알면서도 눈앞의 이익에 팔려 모른 체해왔기 때문이다.”

    부산대 교수 사망 사건을 계기로 촉발된 대학 민주주의 논의에 대한 한 국립대 교수의 촌평이다. 그는 “군사정부 시대엔 대학 사회에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 가득했다. 이제는 연구비 확보와 학생 정원 유지가 모든 가치에 앞선다. 이 두 개의 이권을 놓고 전국 대학이 각개전투를 벌인 결과가 바로 오늘의 상황”이라며 “많은 이의 땀과 눈물로 만들어진 헌법 정신이 아무렇지도 않게 부정되는 현실이 뼈아프다”고 말을 이었다.

    대학 민주주의의 탄생

    이 교수가 언급한 것은 헌법 제31조 4항 ‘교육의 자주성, 전문성, 정치적 중립성 및 대학의 자율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는 규정이다. 1987년 6·10 민주항쟁 결과로 개정된 헌법 제22조 1항에는 ‘모든 국민은 학문과 예술의 자유를 가진다’는 내용도 있다. 헌법학자들에 따르면 이처럼 헌법에 ‘학문의 자유’와 ‘대학 자율성’에 대한 규정을 동시에 갖고 있는 나라는 세계적으로 찾아보기 어렵다. 독일과 일본 헌법에도 ‘학문의 자유’에 대한 규정만 있을 뿐이다. 지식인 중심의 민주화운동을 통해 형성된 ‘87년 체제’는 이처럼 대학 사회에 폭넓은 자유를 보장했고, 그 안에서 다양한 민주주의가 꽃을 피웠다. 대학생들은 1987년 자치조직 총학생회를 복원했고, 교수들은 교수협의회를 구성했으며, 교직원들도 노동조합을 세웠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총장직선제는 이때 대학 민주화의 한 방법으로 시작된 것이다. 교수들이 자율적으로 총장 후보(보통 2명)를 선출하면 정부(국립대)나 재단(사립대)이 이를 존중해 후보 가운데 한 명을 총장으로 임명했다. 이 제도는 당시 법적 근거가 없는데도 상당수 대학에서 관행으로 정착됐다.



    놈 촘스키 미국 MIT대 교수의 에세이와 강연록 등을 모은 책 ‘촘스키, 사상의 향연’에 따르면 1960년대 말 미국에서도 학생운동 결과로 ‘대학 내 권력을 재편하고 외부기관에 대한 대학의 의존을 줄이면서 동시에 학생의 자유에 대한 억압을 줄이는 방향’의 개혁이 이뤄졌다. 이러한 변화가 약 20년 후 한국 사회에 나타났던 것이다. 헌법재판소는 ‘대학의 자율은 대학시설의 관리·운영만이 아니라 학사관리 등 전반적인 것이라야 하므로 연구와 교육의 내용, 그 방법과 그 대상, 교과과정의 편성, 학생의 선발, 학생의 전형도 자율의 범위에 속해야 한다’(헌재 1992. 10. 1. 92헌마68등) 등의 판결로 이를 뒷받침했다.

    그러나 이런 시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윤지관 덕성여대 영문과 교수에 따르면 ‘신자유주의로의 급속한 이행’ 때문이다. 군사정부 종식과 함께 1993년 취임한 김영삼 대통령은 ‘세계화의 격랑’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법으로 ‘국가 경쟁력 강화’를 내세웠다. 그 바탕으로 추진한 것이 ‘대학 경쟁력 강화’다. 한 교수는 “이때부터 교수평가, 연봉제 등이 본격화했다. 정부가 학술진흥재단(현 한국연구재단)을 만들어 학술지를 관리하기 시작한 것도 교수 사회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고 밝혔다. “이전까지 교수는 개별 대학 내부에서만 평가받았는데 이때부터 정부가 정한 기준이 평가의 바탕이 돼 학교 간 경쟁이 본격화됐다”는 것이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수는 “김영삼 정부가 이른바 5·31 교육개혁을 통해 대학 설립 기준을 낮추고 정원을 자율화한 것도 대학 분위기를 크게 바꿔놓았다. 단기간에 전국 대학 수가 대폭 늘면서 학교들은 생존을 위한 무한경쟁에 내몰렸다”고 평했다. 강내희 중앙대 교수가 논문 ‘변혁운동의 거점에서 신자유주의 지배공간으로-1980년대 이후 한국의 대학’에서 ‘5·31 교육개혁안이 발표된 후 대학 교육의 이념과 목적, 작동방식이 새롭게 설정되고, 그때까지 유지되던 민주화세력의 학내 헤게모니(주도권)도 자본과 국가의 수중에 들어갔다’고 분석한 이유가 여기 있다.

    1조6000억 원 돈줄 쥔 교육부

    武力보다 무서운 金力
    1996년 8월 발생한 이른바 ‘연세대 사건’도 대학 내 ‘민주화세력’이 힘을 잃는 한 계기가 됐다는 평이 나온다.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 소속 대학생들이 연세대에 모여 8일간 경찰과 대치했던 이 사건은 경찰의 진압으로 막을 내렸고, 이 여파로 단일 사건으로는 가장 많은 438명의 학생이 기소됐다. 이때부터 학생운동은 급속히 힘을 잃었다는 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이후 대학은 사회개혁의 중심에서 개혁 대상으로 전락했다. 김대중 정부는 두뇌한국(BK) 사업 등을 통해 대학 사회의 연구비 경쟁을 가속화하며 본격적으로 대학 구조개혁의 시동을 걸었다. 김세균 서울대 교수는 당시 발표한 글에서 ‘(정부는) 연구인력 양성 사업에 대한 재정 지원을 미끼로 하여 특정 대학을 모든 부분에서 집중적으로 관리·통제할 수 있는 통로를 획득하게 된다’고 비판했지만, ‘생존의 위기’에 처한 대학들은 이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다. 양진오 대구대 국문과 교수는 ‘대학민주주의 누가 죽였을까’라는 글에서 이에 대해 ‘총장직선제 폐지가 요구되기 전부터 한국 대학들은 경쟁력 신화에 빠져 민주주의와 결별해왔다’고 꼬집었다.

    결국 정부는 대학 민주화의 상징적 제도였던 총장직선제도 ‘개혁’하겠다는 뜻을 공식화했다.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5년 김진표 당시 교육부총리는 대학 구조개혁을 위해 총장직선제를 고치겠다는 뜻을 밝혔고, 이 정책 방향은 이명박 정부를 거쳐 박근혜 정부까지 이어지는 상태다. 이를 관철하는 핵심 도구는 지원금이다. 교육부는 산학협력 선도대학 육성사업(LINC) 2583억 원, 대학특성화사업(CK) 1조2000억 원, 학부교육 선도대학 육성사업(ACE) 2100억 원 등 1조6000억 원에 달하는 돈을 움직이고 있다. 대학 측에는 수차례 총장직선제와 대학평가를 연계한다는 방침을 전달했다. 이에 대해 한 교수는 “현재 상당수 대학이 학생 수 감소로 위기에 처해 있다. 정부 지원이 없으면 생존하기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어느 교수가 ‘대의를 위해 버티자’고 주장할 수 있겠나”라고 말했다. 결국 상당수 대학은 ‘자율적으로’ 총장직선제를 폐기했다.

    서보명 미국 시카고신학교 교수는 저서 ‘대학의 몰락’에서 ‘대학은 처음에 신학을 중심으로 종교를 섬기는 형태였고, 근대 대학은 국가를 섬기는 형태였으며, 지금은 시장을 섬기는 형태’라고 꼬집었다. 서울의 한 사립대 교수도 “권위주의 시대에는 정부가 대학을 길들이려고 무력을 동원했는데, 지금은 금력으로 모든 걸 통제한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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