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03

2015.08.31

직장이라는 이름의 전쟁터, 괴물이 된 사람들

홍원찬 감독의 ‘오피스’

  • 강유정 영화평론가·강남대 교수 noxkang@daum.net

    입력2015-08-31 11: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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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장이라는 이름의 전쟁터, 괴물이 된 사람들
    “여기가 전쟁터 같지? 하지만 바깥은 지옥이야.”

    어느새 직장인의 명대사가 된 ‘미생’의 한 구절이다. 취업준비생에게는 직장이 천국처럼 보이겠지만, 직장인에게 그곳은 전쟁터다. 매달 들어오는 월급을 마약 삼아 버티는 치욕과 굴욕의 장소, 가족과 미래를 위해 자존심쯤은 일찌감치 버려야 하는 곳. 홍원찬 감독의 ‘오피스’는 이렇듯 전쟁터를 넘어 지옥이 돼버린 사무실을 다룬 작품이다.

    영화는 시작부터 꽤 파격적이다. 눈 속이 텅 비어버린 듯 허망한 표정을 짓고 있는 한 남자가 등장한다. 그는 프랜차이즈 햄버거 가게 창가 자리에 앉아 다 식은 커피를 한참 동안 바라보다 문득 무엇인가 생각난 듯 길을 나선다. 집에 돌아오니 아내는 한창 저녁을 준비 중이고, 어머니는 저녁 방송에 시선을 집중하고 있다. 아들 녀석이 아버지 잘 다녀오셨느냐고 인사하고 온 가족이 4인용 식탁에 앉아 저녁을 먹는 시간, 특별할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평범한 가족의 저녁처럼 보인다.

    하지만 남자는 이내 넥타이도 풀지 않은 채 현관 신발장을 뒤지더니 뜬금없이 망치를 들고 거실 한가운데 선다. 그리고 곧 끔찍한 일가족 살해사건이 발생한다. 평범하던 김 과장(배성우 분)은 그렇게 가족을 몰살한 채 사라진다. 문제는 조사 결과 ‘사라진 김 과장’이 가족 살해 후 회사 지하주차장에 들어왔지만 나가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살인마가 된 김 과장이 회사 어딘가에 있는 것이다.

    “그냥 평범한 사람이었어요.”



    형사의 탐문 조사에 영업2팀 동료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김 과장은 그냥 착하고, 성실하며,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었다고 말이다. 어딘가 불편한 공모가 느껴지는 상황에서 5개월째 인턴 생활을 하고 있는 미례(고아성 분)만 흔들리는 눈빛을 보여준다. 미례는 사실 팀에서 거의 유일하게 김 과장과 친하게 지낸 동료였다.

    영화가 주목하는 것은 김 과장의 성실성과 회사구조다. 영화 ‘여고괴담’이 학교라는 지옥 속에서 유령이 된 ‘진주’를 입체화해 한국 교육제도의 문제점을 드러냈다면 ‘오피스’는 김 과장을 통해 한국 사회의 문제점을 보여준다. 그의 단점은 지나치게 성실하게 일만 했다는 것. 융통성이 떨어져 일을 열심히만 할 뿐 윗사람이 무엇을 원하는지 몰랐다. 아이러니하게도 회사에서 ‘너무’ 열심히 일하는 건 장점이 아니라 단점이 된다.

    이는 미례 역시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요령 없이 일만 열심히 하는 미례를 두고 김 과장과 비슷하다며 조롱한다. 정규직이 되기만을 꿈꾸는 인턴은 함부로 대해도 되는 존재처럼 취급된다. 5개월 동안 박봉에 시달린 미례 뒤로 더 나은 학벌과 환경, 외모를 가진 인턴이 들어오고 팀원들은 새로운 인턴에게 훨씬 더 호의를 보인다.

    ‘지옥의 묵시록’ ‘알 포인트’ 같은 작품에서 전쟁은 인간의 나약한 영혼을 통째로 뒤흔드는 폭력으로 그려진다. ‘오피스’의 회사 생활 역시 전쟁과 다를 바 없다. 하루하루 긴장과 경쟁으로 가득 찬 사무실은 광기 어린 전쟁터고, 직원들은 영업직이라는 이유로 하청업체를 압박해야 하며, 끊임없는 상대평가의 늪에서 허우적거려야 한다. 어느새 우리는 사무실이 공포영화의 무대가 되는 세상에 살고 있다.

    순진함부터 광기까지 유연한 연기를 보여준 고아성은 기대 이상이다. 인상적인 조연으로 웃음을 주던 배성우의 서늘한 눈빛 연기도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 열심히 살면 더 나은 삶을 누릴 수 있으리라 믿었던 시절과 멀어졌음을 절절히 보여주는 영화 ‘오피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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