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01

2015.08.17

“특별한 와인을 여는 날이 특별한 날”

영화 ‘사이드웨이’와 인생

  • 김상미 와인칼럼니스트 sangmi1013@gmail.com

    입력2015-08-17 16:2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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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사이드웨이(Sideways)’는 발표된 지 10년이 넘었지만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영화로 꼽히는 명작이다. 영화 상영 내내 와인이 언급돼 와인 영화로 알려져 있지만 실상은 인생을 다룬 영화로, 포도 품종과 와인은 등장인물들의 성격과 삶을 상징하고 있다.

    소설가를 꿈꾸는 교사 마일스는 이혼의 상처를 안고 있고, 마일스의 대학 친구 잭은 한물간 배우지만 부잣집에 장가를 가게 된 행운아다. 둘은 잭이 결혼하기 일주일 전 함께 여행을 떠난다. 마일스는 와이너리 투어를 하며 친구에게 와인을 가르쳐주고 싶어 하지만 잭은 유부남이 되기 전 여자를 꼬셔서 놀 생각밖에 하지 않는다.

    마일스는 피노 누아르(Pinot Noir)에 특별한 애착을 보인다. 피노 누아르는 프랑스 부르고뉴(Bourgogne) 품종으로, 기후와 토양을 심하게 가리고 병충해에도 약해 기르는 데 상당한 기술과 인내심을 요하지만 고급스럽고 섬세한 향을 내뿜는 와인을 만들어내는 품종이다. 영화에서 마일스는 소설가로서 능력을 펼치지 못하는 자신을 마치 어려운 환경에서 자라는 피노 누아르처럼 여기는 듯하다.

    반면 마일스는 카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 카베르네 프랑(Cabernet Franc), 메를로(Merlot)에 대해서는 거부감을 드러낸다. 카베르네 소비뇽은 생명력이 강하고 탄탄한 타닌을 지닌 품종이다. 메를로는 부드러운 타닌과 풍부한 보디감을 자랑하고, 카베르네 프랑은 푸릇한 채소향과 매콤한 후추향이 특징이다. 이 세 품종은 모두 프랑스 보르도(Bordeaux) 와인을 만들 때 블렌딩하는 품종으로 친구인 잭, 그리고 잭과 쉽게 사랑에 빠지는 여인들을 연상케 한다.

    한편 마일스가 관심을 두는 여인 마야는 마일스처럼 포도 품종에 연연하기보다 포도가 자라고 와인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신비한 기적으로 받아들인다. 그녀는 와인이 숙성되는 동안 끊임없이 발전하다 절정에 이르러서는 멋진 맛을 한껏 보여주고 마침내 사그라지는 살아 있는 생명체라고 말한다. 그녀는 마일스와는 또 다른 관점에서 인생을 보고 있는 것이다.



    기대하던 소설 출판이 무산되고, 마야와도 오해로 헤어지고, 이혼한 전처가 재혼해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되면서 마일스는 절망에 빠져 애지중지하던 1961년산 슈발 블랑(Cheval Blanc)을 연다. 한 병에 500만 원은 족히 나가는 그 와인을 마일스는 패스트푸드점에서 햄버거를 먹으며 종이컵에 콸콸 따라 마신다. 아이러니하게도 마일스가 아끼던 슈발 블랑은 카베르네 프랑과 메를로를 섞어 만든 보르도 와인이다.

    보르도 와인을 싫어하는 마일스가 왜 슈발 블랑을 고이 간직하고 있었을까. 그는 왜 아끼던 슈발 블랑을 아무렇게나 마셔버린 것일까. 그는 과연 자신을 피노 누아르 같은 사람이라 믿었던 것일까.

    ‘사이드웨이’는 와인을 이해하고 보면 더 재미있는 영화다. “특별한 날 특별한 와인을 여는 것이 아니라 특별한 와인을 여는 날이 특별한 날이다.” 영화 속에서 마야가 하는 말이다. 특별한 와인이란 결코 비싼 명품 와인만은 아닐 것이다. 좋아하는 사람과 맛있는 와인을 마시는 것만으로도 그 와인은 특별해지고 그날 또한 특별한 날이 되는 것이 아닐까.

    “특별한 와인을 여는 날이 특별한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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