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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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기와 평범, 한 남자의 두 가지 삶

빌 포래드 감독의 ‘러브 앤 머시’

  • 한창호 영화평론가 hans427@daum.net

    입력2015-08-10 10:5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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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기와 평범, 한 남자의 두 가지 삶
    비치 보이스는 여름 밴드다. 지금도 여름이 되면 어디선가 히트곡 ‘서핑 USA’가 흘러나온다. 출렁이는 파도와 청춘의 싱그러움이 단박에 느껴지는 대단히 경쾌한 곡이다. 이 곡 하나만으로도 비치 보이스는 전설적인 밴드가 되기에 충분하다. 1960년대 초, 풍요와 자유를 상징하는 미국 신세대 취향을 이들만큼 적절하게 표현한 뮤지션도 드물다.

    그런데 ‘서핑 USA’는 종종 비치 보이스를 이해하는 데 족쇄가 되기도 한다. 취향의 문제이긴 하지만, 경우에 따라 비치 보이스가 한없이 가볍고 철없는 밴드로 인식되는 것이다. 여름이면 바다에 나가 서핑을 하고, 사랑을 나누는 젊음을 찬양하는 게 언제나 미덕일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런데 빌 포래드 감독의 ‘러브 앤 머시’를 보면 비치 보이스가 서핑이나 찬양하는 가벼운 밴드가 아님을 단박에 알 수 있다. ‘러브 앤 머시’는 이 밴드의 음악적 리더 브라이언 윌슨의 삶에 주목하면서, 비치 보이스가 당대 음악을 이끌던 혁신가임을 강조하고 있다.

    영화는 두 부분으로 구분돼 병렬적으로 진행된다. 1960년대 20대 초반의 브라이언 윌슨(폴 대노 분)과 80년대 중년에 이른 그(존 큐잭 분)의 삶을 대조한다. 먼저 집중하는 건 창의력이 넘쳐나는 20대의 브라이언을 재현하는 일이다. 그는 피아노 앞에만 앉으면 새로운 멜로디가, 또 아름다운 시가 저절로 흘러나오는 것을 느낀다.

    광기와 평범, 한 남자의 두 가지 삶
    브라이언은 20대 초 이미 대가의 조짐을 보였다. 새로운 사운드를 만들고자 애완견이 짖는 소리까지 녹음하는데, 여기서 비치 보이스의 걸작 앨범인 ‘펫 사운즈(Pet Sounds)’의 이름이 나왔다. ‘펫 사운즈’는 지금도 대중음악계의 명반 순위 1, 2위를 다툰다.



    그런데 불안한 건 이때 이미 브라이언이 마약에 중독돼 있다는 점이다. 그 탓일까. 40대의 그는 너무나 변해 있다. 겁먹은 듯 보이고, 도무지 사람이 안정돼 있지 않다. 알고 보니 마약중독, 알코올중독, 폭식 등의 이유로 죽을 위기를 겪고 지금도 정신의학박사(폴 지어마티분)로부터 치료받고 있다. 박사의 치료법이 폭력적이고 독재적이라 브라이언은 박사 앞에서 벌벌 떨기까지 한다. 육체는 정상을 되찾은 것 같지만, 정신은 박사에게 단단히 구속된 노예처럼 보이는 것이다.

    ‘러브 앤 머시’는 이 두 남자를 대조한다. 청년 브라이언은 걸작을 빚어낸 뮤지션이지만, 약물중독에 빠져 정상적인 삶을 점점 잃어간다. 중년 브라이언은 창작자로서의 재능은 거의 잃었지만, 다행히 정상적인 삶을 되찾는다. 정상으로의 복귀에는 사랑도 개입된다. 흥미로운 점은 누가 ‘브라이언 윌슨’이냐는 것이다. 영화는 어느 한쪽을 지지하기보다 두 남자를 병렬적으로 보여주기만 한다. 브라이언은 걸작을 남긴 예술가인가, 아니면 정상화된 중년인가. 감독은 이 두 남자가 전혀 다른 사람이라고 판단한 것 같다. 그러기에 2인 1역을 썼을 것이다. 브라이언의 정체성은 둘 가운데 어느 것일까. 혹은 어느 것을 지지하고 싶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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