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99

2015.08.03

日 총리 부인 아키에 유난한 ‘한국 사랑’

강상중 도쿄대 명예교수와의 식사 공개…인신공격에도 한류 팬 자청

  • 배극인 동아일보 도쿄 특파원 bae2150@donga.com

    입력2015-08-03 14: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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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日 총리 부인 아키에 유난한 ‘한국 사랑’
    7월 27일 저녁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부인인 아베 아키에(安倍昭惠) 여사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페이스북에 짧은 글과 사진을 올렸다. ‘지난번 대담한 강상중 님과 UZU에서 식사. 일한관계 등에 대해 여러 의견을 들었습니다.’ ‘우주’로 발음되는 UZU는 소용돌이라는 의미로, 아키에 여사가 경매에서 구매한 3층짜리 건물을 개조해 2012년 10월 문을 연 선술집이다. 글 밑 사진에서 아키에 여사는 활짝 웃는 모습으로 강상중 일본 도쿄대 명예교수와 포즈를 취했다.

    놀랐다. 요즘 일본 사회의 혐한(嫌韓) 분위기를 감안할 때 보통 강심장이 아니고서는 올리기 어려운 글과 사진이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강 교수는 일본 우익들 사이에서 표적이 되고 있는 이른바 ‘잘나가는 한국 국적의 재일교포’ 정치학자다. 강 교수는 한국 국적을 가진 사람으로는 사상 처음으로 도쿄대 교수를 지냈고 지난해 4월에는 세이가쿠인(聖學院)대 총장에 취임해 1년간 재임했다. 재일 한국인이 4년제 일본 사립대 총장을 지낸 것도 처음이었다. 지금은 도쿄대 명예교수로 지내고 있다. 당연히 우익들의 시기와 질투가 집중됐다. 우파 성향의 한 잡지는 그의 가족사까지 파헤치며 인신공격을 펼치기도 했다.

    둘이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 궁금했다. 아키에 씨는 구체적인 내용을 밝히지 않았다. 강 교수에게 확인을 요청하자 e메일을 보내왔다. “사적인 만남으로 내용을 공개할 순 없지만 아키에 여사가 페이스북에 한일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고 글을 올렸으니 이 점에 관해서는 언급하겠다. 최근 서울에서 열린 제47회 한일경제인회의에서 한 특별강연의 취지와 같다. 가급적 빨리 한일 정상회담을 열어 현재 한일관계의 불신과 불화를 해소할 수 있도록 노력하면 좋겠다는 말을 했다.”

    “나도 가정 내 야당으로 불린다”

    강 교수는 신뢰하는 잡지 편집자와의 인연으로 몇 개월 전 아키에 씨와 처음 만나 대담을 했고 7월 27일에는 편집자 몇 명, 아키에 씨와 함께 유기농 요리에 술을 곁들이며 대화를 나눴다고 소개했다. 저녁식사 값으로 각자 1만 엔(약 9만5000원)을 지불했다고도 덧붙였다. 강 교수는 또 아키에 씨와 면담한 배경에 대해 “원자력발전 정책에서 아베 총리와 다른 태도를 취하고 아베 정권에 반대하는 후보자를 응원하기도 해 화제가 돼 있었다. 여사는 한류의 왕팬으로 한일관계가 험악할 때도 한일 기념행사에 참가해 양국의 친선을 호소하다 인터넷 우익들로부터 비난받기도 했다”고 소개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아키에 씨의 페이스북에 찬반 댓글이 이어졌다. ‘대화가 중요하다. 함께 한솥밥을 먹는 게 중요하다’는 내용의 격려 글이 적잖았다. 하지만 ‘가정 내 야당은 가정 내에 머물기 바란다. 한류 드라마를 좋아하고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요리를 즐기는 것도 마음대로 하면 된다. 다만 남편 처지나 일을 생각하면 상대할 인간도 저절로 가려질 것이다’ ‘남편의 발, 더 나아가 일본국 총리의 발목을 잡는 아내, 한심하다’는 등의 인신공격성 댓글도 많았다.

    아키에 씨와 강 교수의 대담이 실린 잡지를 찾아봤다. 여성패션지 ‘골드(GOLD)’ 5월호였다. 대담 서두에 강 교수가 “나는 정치적으로 아베 총리와 매우 대극적”이라고 하자 아키에 여사는 “나도 가정 내 야당으로 불릴 정도”라고 화답했다. 원전 얘기가 오고간 뒤 아키에 씨는 우익들이 공격하려면 하라는 듯 일본과 한국의 인연을 설파했다. “옛날에는 많은 분이 대륙에서 일본으로 다양한 문화를 가져와주셔서 그게 일본에서 성숙해온 측면이 있기 때문에 공통적인 부분이 많다.”

    대담이 진행될수록 여사의 발언 강도는 세졌다. “나의 피에도 거슬러 올라가면 대륙의 피가 흐르고 있을지 모른다. 모두 형제 같은 존재라고 나는 생각한다. 지금은 나라가 나뉘어 있다지만 서로 으르렁거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우익들이 본다면 위험 수위였다. 그의 말은 이어졌다. “백제에서 도래한 장인들이 없었다면 나라(奈良·일본 옛 도읍지)에 그만큼 많은 건조물을 만들 수 없었을지 모르고, 도공들이 건너와 400년 이상 도기를 굽고 있으니 우리는 은혜를 받은 것인지 모른다.”

    일관된 ‘소신 행보’에 거는 기대

    日 총리 부인 아키에 유난한 ‘한국 사랑’
    솔직히 당혹스러웠다. 아키에 씨가 2012년 10월 일본 여성주간지 ‘여성자신’과 한 인터뷰 내용이 떠올라서다. 당시 인터뷰에서 그는 “최근 한류 드라마는 시청하지 않고 있다. ‘겨울연가’를 본 뒤 한류가 좋아져 한국어를 공부했는데 지금은 전혀 (공부를) 안 한다”며 한류와 ‘절교’를 선언했다. 그를 좋아하던 많은 한국인은 큰 충격을 받았다. 다만 아베 총리가 자민당 총재에 재선돼 12월 총선을 앞두고 있는 시점이었다. 애써 긍정적으로 해석하려고 노력했다. 아키에 씨의 한류 절교는 남편을 총리로 만들기 위해 일시적으로 보수층에 호소하는 액션이라고 말이다.

    아베 총재가 연말 총선에서 압승해 총리직에 다시 오르자 아키에 씨는 ‘한류 사랑’이라는 소신 행보를 다시 이어갔다. 한일관계가 최악이던 2013년 9월 도쿄 히비야 공원에서 열린 한일축제한마당에 깜짝 참석해 이병기 당시 주일대사 등 한국 인사들에게 “내가 한국 관련 행사에 참석하면 나쁘게 말하는 인터넷 댓글이 달려 참 속상하다. 진심을 몰라준다”고 말했다. 눈가에는 눈물까지 맺혔다. 그다음 달 일본 지지통신과 인터뷰에서는 혐한 일본인들이 아키에 씨의 한국 뮤지컬 관람과 한일축제한마당 참석을 비난한 것에 대해 “서로 상대방을 비판만 해선 악순환이 이어질 수밖에 없다”며 한일관계 개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7월 19일 일본 보수세력이 도쿄 한 호텔에서 자체적으로 개최한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 기념행사에서는 아베 총리의 지역구인 시모노세키와 부산이 자매도시라는 점을 강조했다. 이어 한일 교류를 두 도시 어머니회의 배구 교류에 비유하며 “경기할 때는 서로 격렬하게 맞붙지만 끝나면 같이 먹고 마시고 가라오케에서 노래하면서 금방 친해진다”고 말했다. ‘골드’ 5월호 인터뷰에서 “나의 피에도 대륙의 피가 흐를지 모른다”고 밝힌 건 사실상 아키에 여사의 한류 귀환 선언이었다.

    앞서 언급한 대로 아키에 씨는 드라마 ‘겨울연가’에 반해 한국어 공부를 시작했다. 2006년 아베 1차 정권 시절 남편과 한국을 방문했을 때는 서울 광희초교를 방문해 교과서에 실린 시를 읽어 내려가 화제가 됐다. 배용준, 고(故) 박용하, 이병헌의 열렬한 팬으로 ‘욘사마’ 배용준이 일본을 찾으면 그와 만나려고 같은 호텔에 묵기도 했다.

    아키에 씨의 행보에 대해 일각에서는 “아베 총리의 우파 이미지를 탈색하기 위한 전략적 내조”라는 평가도 많다. 하지만 그의 일관된 ‘소신 행보’는 충분히 좋게 평가해야 한다는 쪽에 서고 싶다. 아울러 아키에 씨가 향후 한일관계에서 어떤 촉매제 구실을 할지도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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