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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배의 food in the city

쫄깃, 구수한 서민 보양식

서울의 순대

쫄깃, 구수한 서민 보양식

쫄깃, 구수한 서민 보양식
더위를 이기는 데 든든한 한 끼 식사만한 게 없다. 시원한 국물도 좋지만 단백질이 풍부한 순댓국도 나쁘지 않다. 서울식 순대 하면 사람들은 으레 당면순대를 떠올린다. 거리 어디를 가도 쉬 당면순대를 파는 이가 있을 정도다. 그만큼 한국인은 당면순대를 간식으로 즐겨 먹는다.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는 순대타운이 두 곳이나 있다. 순대타운 한 곳에 가게가 수십 개나 된다. 이곳 순대는 주로 순대볶음 형태로 판다. 철판에 당면순대와 양배추, 깻잎, 곱창, 쫄면, 버섯, 떡, 양파를 넣고 얼큰한 고추장 소스를 얹어 볶아 먹는다. 1960년대 좌판으로 시작한 신림동 순대 문화는 1984년을 거치면서 급속하게 늘어나 80년대 말에는 60개가 넘는 가게가 들어설 정도로 번성한다.

1990년 일대 재개발로 사라질 뻔한 순대 가게들은 92년 신림극장 뒤 먹자골목에 ‘양지순대타운’과 ‘원조민속순대타운’이 잇달아 들어서며 다시 전성기를 맞는다. 당면순대는 서울과 부산같이 급팽창하던 대도시의 서민들에게 단백질 공급원이었다. 70년 초반이 되면 신문기사에 순대에 관한 기사가 부쩍 많아진다.

‘동대문시장-종로 5가 육교 밑으로 들어가는 좁은 길에서부터 5가 쪽과 4가 쪽으로 나가는 비좁은 통로에 빽빽이 들어차 있는 순대노점상의 불결함이 눈에 띈다. 대부분 40, 50대 아주머니들이 집에서 만들어온 순대와 돼지고기들을 양은양푼에 담아 밑에서 불을 때어 그 자리에서 썰어 파는 것인데 상인이나 시장에 나온 사람들이 고객이 된다.’(1972년 5월 22일 ‘경향신문’)

이 기사에 언급된 동대문 이스턴호텔 뒤 순대골목은 사라졌지만 그곳의 순대라는 음식 자체는 길거리 음식으로 재탄생하거나 신림동 순대처럼 변형된 모습으로 살아남았다.



영등포는 일제강점기 때부터 교통 중심지이자 공업지대였다. 화교들이 이곳에 터를 잡고 채소를 재배했다. 영등포전통시장은 옛 재래시장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영등포전통시장에는 찹쌀순대와 순댓국을 파는 식당들이 작은 순대골목을 형성하고 있다. 시장 초입에 자리 잡은 ‘호박집’ 입구에는 커다란 솥이 있다. 안을 들여다보면 돼지 뼈에서 오랫동안 우려낸 국물이 한가득이다. 하얀 돼지 뼈에서 뽀얀 국물이 펑펑 솟아난다. 10시간 이상 끓인 시간의 보상이자 진국이란 말이 어울리는 잘 끓인 국이다. 돼지 뼈를 잘 관리해 냄새가 나지 않고 구수한 맛이 일품이다.

쫄깃, 구수한 서민 보양식
영등포전통시장 순대골목의 순대는 겉보기엔 대창처럼 보이지만 막창을 최대한 늘여서 만든 것이다. 막창 특유의 졸깃한 식감이 좋다. 안에는 선지와 채소, 찹쌀이 고루 들었는데 양이 엄청나게 많다. 순대 한 접시만 시켜도 한 끼 식사가 가능할 정도다. 이 골목은 영등포 주변이 유흥가로 유명하던 1980~90년대가 전성기였다. 전성기는 지났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영등포 순대골목을 들락거린다. 최근에는 미식을 쫓는 젊은이들도 눈에 많이 띈다.

성북구 안암동에 자리 잡은 ‘개성집’에서는 소창을 이용한 개성식 순대를 직접 만들어 판다. 개성은 한반도에서 육고기 문화가 가장 번성한 지역이었다. 삼겹살의 조상쯤 되는 세겹살은 개성 과부들이 만든 창조적 음식이었다. ‘동양학을 읽는 월요일’이란 책에는 간송(澗松·전형필)가(家) 며느리 김은영 씨의 증언이 나오는데, 쌀겨나 밀겨만 먹고 자란 돼지의 창자로 만든 ‘절창(絶脹)’이란 순대가 있었다고 한다. 또한 순대는 본래 함경도 말이었으며, 겨만 먹은 돼지는 지방이 적고 부드러워 입에 넣으면 살살 녹았다는 내용도 함께 전하고 있다.



주간동아 2015.08.03 999호 (p76~76)

  • 박정배 푸드칼럼니스트 whitesuda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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