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99

2015.08.03

고삐 풀린 부동자금 중국 증시 흔든다

정부 관리 역량 의심, 투자자들 부동산으로 갈아탈 가능성 높아…개혁 속도 더뎌질 듯

  • 이철용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 lcy@lgeri.com

    입력2015-08-03 11:4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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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 말부터 반복되고 있는 중국 주가 급락이 글로벌 금융시장을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지난해 11월 이후 6개월 만에 2배 가까이 급등했던 상하이와 선전 증권시장 종합주가지수가 한 달도 안 되는 기간에 30% 이상 급락한 것(그래프1 참조). ‘산이 높으면 골이 깊다’는 증시 격언을 절감케 하는 폭락세였다. 7월 9일 장중 3300선까지 밀렸던 상하이지수는 이후 보름간 20% 남짓 반등하면서 가까스로 한숨을 돌렸지만, 27일 다시 8.5% 폭락하며 ‘블랙 먼데이’를 기록했다.

    이쯤 되면 언론과 전문가들 사이에서 주가 하락이 중국 금융시장과 실물경제, 나아가 글로벌 경제에 타격을 줄 것이라는 우려가 쏟아져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러나 중국의 경제구조를 고려할 때 주가 하락의 충격이 아직까지는 그리 크지 않은 것 역시 사실이다. 중국 주식투자 인구가 지난해 말 6000만 명에서 올해 6월 말 현재 9000만 명으로 크게 늘었지만, 중국 가계 자산에서 주식의 비중은 5~10%에 그친다. 주가 하락이 자산 평가액 감소로 이어져 소비 부진을 초래할 개연성은 무시할 수 있는 정도라는 뜻이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중국 자금시장에서 직접금융의 비중은 5% 정도밖에 안 된다. 주가 하락으로 기업공개(IPO)나 유상증자가 차질을 빚어 기업이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는 부작용 역시 그리 크지 않다. 올 하반기 증시가 하락세를 보일 경우 최대 2000억 위안(약 37조4500억 원) 안팎의 주식 융자 차질이 예상되는데, 이는 한 달 평균 은행 신규 대출금액의 20% 수준으로 얼마든 보충할 수 있는 금액이다.

    금융기관은 어떨까. 보통 증시 급랭은 증시에 참여한 금융기관들에게 손실을 입혀 자금시장 경색을 불러오는 일이 적잖지만, 중국에서 이런 걱정은 기우에 가깝다. 중국에서 주식시장에 직간접적으로 가장 많이 노출된 금융기관은 은행들인데, 은행권의 증시 관련 자산은 약 2조 위안(약 373조3600억 원)으로 총자산 180조 위안의 1% 남짓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역시 주가 하락에 따른 영향이 크지 않다.

    요컨대 중국에서는 주식시장의 규모와 비중, 기능이 아직 미미한 수준이고, 따라서 주가 하락이 경제에 미치는 충격도 생각만큼 크지 않다. 정작 문제는 앞으로는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이다. 중국 정부가 ‘전면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주식시장의 비중과 기능이 점점 커지고 시장 안팎의 부동자금 이동도 활발해지고 있기 때문. 장차 주식시장이 금융과 실물 변동의 새로운 진원지가 될 개연성이 높다는 뜻이다.



    시진핑-리커창 정부는 취임 이후 적극적으로 증시를 육성해왔다. 증시가 커져야 국유기업 개혁이나 기간산업 기업의 대형화를 위한 인수합병(M·A)이 순조롭게 추진될 수 있다. 주가가 꾸준히 올라야 가계 자산소득 증가와 내수 확대도 가능해진다. ‘개혁의 설거지 작업’이라 할 수 있는 부실채권 처리 역시 주식 및 채권시장이 성숙해야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다. 주식시장 발전은 중국 정부가 시행하는 개혁추진의 전제조건이자 필연적 부산물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최근 증시 조정 국면에서 중국 정부는 주가 급등락에 세련되게 대응하지 못하고 쩔쩔매는 듯한 보기 드문 장면을 연출했다. 많은 투자자가 주식시장에 관한 한 중국 정부의 육성 ‘의지’와 실제 관리 ‘역량’이 다를 수 있다는 점을 확인한 것이다. 중국 정부의 시장관리 역량에 대한 신뢰에 금이 간 이상, 앞으로 중국 투자자들은 더는 정부의 신호에 따라 일사분란하게 움직이지 않을 공산이 크다. 고수익을 좇는 시중의 부동자금이 고유의 이해관계와 판단에 따라 제멋대로 움직일 수 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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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 가지 경로, 어디든 위험하다

    논리적으로 중국 내 부동자금의 향후 이동 방향은 다음과 같이 크게 세 갈래로 나눠 예상해볼 수 있다. 첫째, 중국 정부가 잃어버린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더욱 강력한 증시 부양책을 내놓고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증시를 살려낸다면, 증시는 앞으로도 시중자금의 블랙홀이 될 것이다. 이 경우 중국 금융의 고질병인 정부 음성담보나 원금보장 심리가 주식시장까지 지배하게 돼 큰 폭의 주가 등락이 거듭될 가능성이 높다. 국가 경제에서 증시의 비중이나 기능이 빠르게 커질 것이므로, 주가 급락이 금융시장이나 실물 부문에 미치는 충격 역시 지금보다 훨씬 더 강해질 터다. 홍콩 증시와 선전 증시 간 교차매매 허용, 외국인 투자한도 확대 등으로 중국 증시에 투자하는 외국자금이 빠르게 늘어난다면 환율 급변이나 해외 주가의 동조적 변동을 통해 글로벌 경제에 미치는 충격도 지금보다 커질 것으로 보인다.

    고삐 풀린 부동자금 중국 증시 흔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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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둘째, 이미 주식으로 목돈을 마련한 사람이나 반복되는 주가 조정으로 ‘국가적 상승장(國家牛市)’에 환멸을 느낀 투자자가 부동산시장으로 갈아탈 가능성이 있다. 2년 가까운 조정으로 집값 버블이 일부 해소되면서 부동산시장이 주요 대도시를 중심으로 기지개를 켜고 있다(그래프2 참조). 부동자금 유입은 단기적으로 주택 재고 해소에 기여할 테지만, 장기적으로는 대도시 집값 버블을 한층 더 키워 주요 도시에서 주택 공급 급증을 가져올 공산이 크다. 이렇게 최근 간신히 줄어들기 시작한 주택 재고가 다시 늘어난다면 최악의 경우 집값 버블이 붕괴하는 사태가 올 수도 있다.

    셋째, 당장 마땅한 대체 투자처가 없다면 부동자금은 2014년 선풍적 인기를 모았던 바오바오(·온라인 머니마켓펀드(MMF) 상품), P2P(peer to peer·온라인상에서 개인 간 대차) 같은 온라인 재테크 상품에 다시 몰릴 수도 있다. 수익률은 낮지만 리스크가 적고 투자 및 회수 절차가 간단해 일시적인 자금 보관처로 유용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들 인터넷 금융상품의 경우 규제가 느슨해 금융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한다는 점이다. 개미자금이 대량으로 몰려드는 가운데 돌발사고가 일어나면 자칫 사회문제로 비화할 우려가 있다. 워낙 자금 이동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온라인판 뱅크런(무더기 인출사태)이나 연쇄환매 사태가 나타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문제는 의심의 확산

    이번 증시 조정 사태가 낳은 최대 손실은 중국 정부의 개혁 능력에 대해 회의가 제기됐다는 점이다. 더욱이 중국 정부가 개혁 추진의 든든한 지지세력으로 믿고 있는 인민(人民), 즉 개미투자자들 사이에서 그러한 회의가 확산됐다는 사실이 중국 정부로선 가장 뼈아픈 대목이다. ‘중국 정부가 증시를 마음대로 주무르려다 큰코다쳤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사실은 경제 규모가 커지고 복잡해지는 만큼 가급적 개입을 삼가고 제도와 시장 메커니즘을 통해 경제를 운영해보겠다는 게 그간 추진돼온 ‘전면개혁’의 본심이었다.

    분명한 것은 금융 영역이 그동안 무난하게 관리해왔던 실물 영역보다 훨씬 민감하고 거칠며 다루기 어렵다는 것을 중국 정부가 깨달았으리라는 사실이다. 앞으로 베이징 당국이 시장화 개혁 행보에 신중을 기할 것으로 보이는 이유다. 아울러 시중자금 부동화가 초래할 수 있는 금융시장의 변동성을 줄이려 노력하는 과정에서 금융 규제가 강화될 가능성 역시 한층 높아졌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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