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98

2015.07.27

‘영국병과의 전쟁’ 캐머런 총리의 속내

대처 이어 두 번째 노동개혁…노동당 입지 흔들기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입력2015-07-27 13: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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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가 마거릿 대처 전 총리 이후 30여 년 만에 노동개혁에 적극 나서고 있다. 이번 개혁은 특히 의료, 교육, 교통, 소방 같은 핵심 공공서비스 분야 노동조합의 잦은 파업을 저지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이번 노동법 개정안은 파업 찬반투표에 전체 조합원의 50% 이상이 참여하고 전체 조합원의 40% 이상이 찬성해야 합법적인 파업이 가능하다는 것이 골자다. 예를 들어 조합원 1000명의 지하철노조가 파업을 할 경우 최소 500명 이상이 투표에 참여해야 하고 400명 이상의 찬성표가 나와야 한다. 투표율과 상관없이 단순히 과반수 찬성으로 파업하는 관행을 차단하겠다는 것이다.

    파업에 동참하지 않은 조합원을 협박하거나 강제로 파업에 참여시키는 일을 금지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극단적인 성향을 가진 일부 세력이 주도하는 파업으로 국가 경제가 마비되는 사태를 막겠다는 의도다. 파업 2주 전 고용주에게 미리 통보하지 않은 경우도 불법으로 간주하고, 파업 때 대체인력 고용을 허용하는 등 파업에 따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한 방안도 들어 있다.

    캐머런 총리와 보수당 정부가 공공노조와 전면전에 나서면서 내놓은 명분은 노사분규가 경제성장의 걸림돌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산업혁명 발상지인 영국은 유럽의 다른 나라들보다 노동운동 역사가 깊다. 노사분규가 잦은 배경 가운데 하나다. 특히 공공 부문에서 전체 조합원이 아닌 노조 지도부가 주도해 파업을 벌이는 사례가 비일비재했다. 정치적 목적으로 파업을 벌이는 경우도 있었다.

    개혁 총대, 자비드 장관

    특히 공무원노조(PCS)의 경우 지금까지 한 번도 파업 찬반투표에서 투표율이 50%를 넘은 적이 없다. 노동법 개정의 실무책임을 맡은 사지드 자비드 영국 산업부 장관은 “노조원의 10~15%가 파업을 결정하는 것은 불공정하다”면서 “법 개정은 다른 나라와 비교해도 과한 내용이 아니며 영국을 위해 필요한 조치”라고 강조했다.



    자비드 장관은 노조와 정치권이 결탁한 ‘정치 파업’을 근절하고자 정치후원금도 규제하기로 했다. 영국에서는 노조가 좌파 정당인 노동당에 대한 정치후원금을 노조비에 포함시켜 걷는다. 하지만 앞으로는 조합원 개개인에게 동의를 얻어야 이를 걷을 수 있다. 이 경우 정치후원금을 내는 조합원이 크게 줄어들 것이므로 노동당 처지에서는 상당한 타격이 불가피하다. 현재 영국에서는 노조 조합원 450만 명이 총 2500만 파운드(약 446억 원) 안팎의 정치후원금을 내고 있다.

    자비드 장관은 5월 총선에서 보수당이 승리한 이후 캐머런 총리가 개각을 단행하며 노동개혁을 위해 특별히 발탁한 인물이다. 영국에서 산업부 장관은 산업 규제와 정책, 국가 연구개발, 무역, 대학 교육은 물론 노사관계까지 총괄한다. 조지 오즈번 재무부 장관, 보리스 존슨 런던 시장과 함께 차기 보수당 당수로 거론되는 자비드 장관은 파키스탄 이민 2세다. 무슬림인 아버지는 버스 운전기사로 일했다. 엑세터대를 졸업한 자비드 장관은 체이스맨해튼은행과 도이체방크 등에서 일했으며, 2010년 브롬스그로브에서 파키스탄 이민자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하원의원에 당선했다. 이후 보수당 정부에서 주요 요직을 거쳐 2014년 문화·미디어·스포츠부 장관에 임명되기도 했다.

    ‘영국병과의 전쟁’ 캐머런 총리의 속내
    캐머런 총리와 보수당 정부의 노동법 개정안에 대해 야당인 노동당은 크게 반발하고 있다. 공공 부문 최대 노조단체인 유니슨의 데이브 프렌티스 사무총장도 “영국에는 이미 파업을 막는 강력한 법이 있다”면서 법 개정을 비난했다. 프랜시스 오그레이디 영국 노동조합회의(TUC) 사무총장 역시 “노동자들이 임금 삭감과 임금 동결에 맞서 싸우는 것을 막으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캐머런 총리는 이런 비판의 목소리에 아랑곳하지 않고 법 개정을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다. ‘대처가 살아 돌아왔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대처는 1979년부터 90년까지 총리직을 세 번 연임하는 등 영국 역사상 최장수이자 첫 여성 총리라는 기록을 세웠다. 대처의 첫 임기에는 강성 노조의 세력 확대, 방만한 공공 부문, 과도한 복지 때문에 영국 경제가 골병이 들었다는 의미로 ‘영국병’이란 얘기까지 나왔다. 특히 강성 노조의 파업이 핵심 사안이었다. 복지 지출 삭감과 세금 인하, 기업의 자유로운 활동 보장 등 개혁 정책을 마련했던 대처가 무엇보다 먼저 나섰던 사안이 바로 노동개혁이었다. 노조에 가입한 노동자만 고용될 수 있도록 한 ‘클로즈드 숍(closed shop)’ 제도가 파업의 원인이라고 보고 이를 폐지한 것이 대표적이다.

    그리스의 타산지석

    캐머런 총리는 또 기존의 ‘낮은 임금, 높은 세금, 높은 복지’에서 ‘높은 임금, 낮은 세금, 낮은 복지’라는 새로운 국정기조를 전면에 내세우며 복지 축소 정책을 선언했다. 향후 5년간 120억 파운드(약 21조200억 원)의 복지 지출을 삭감하는 동시에 탈세 근절, 지출 축소 등을 통해 총 370억 파운드(약 65조 원)를 절약한다는 계획이다. 1인당 복지 혜택의 연간 상한액을 2만6000파운드에서 2만 파운드로 낮추고, 연소득 3만 파운드 이상 가구에 대한 주택 임차료 지원을 중단하기로 했다. 다자녀 세액 공제도 두 자녀까지로 축소할 예정이다.

    이 같은 정책을 추진하는 근본적 배경에는 최근 영국 인구와 국내총생산(GDP)이 각각 전 세계 1%와 4% 안팎인 데 비해 복지 지출은 전 세계 복지 지출의 7%를 차지한다는 문제의식이 자리하고 있다. 말 그대로 ‘과잉 복지’라는 것. 현재 영국 정부 예산 전체에서 복지 분야의 비중은 30%다. 이 정책이 시행될 경우 1942년 복지국가를 지향하며 내걸었던 ‘요람에서 무덤까지(from the cradle to the grave)’라는 슬로건도 함께 종지부를 찍는 셈이다.

    캐머런 총리의 정책은 그리스 사태를 타산지석으로 삼았다고 할 수 있다. 영국 재정적자는 GDP 대비 4.3%, 국가부채는 1조4800억 파운드(약 2535조 원)로 80.4%에 이른다. 오즈본 장관은 “그리스 사태에서 보듯 국가가 빚을 통제하지 못하면 빚이 국가를 좌지우지한다”고 말했다. 허리띠를 더욱 졸라매고 노동과 복지 개혁으로 ‘제2 영국병’을 고치겠다는 캐머런 총리의 전략이 성공을 거둘지 국제사회가 주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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