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98

2015.07.27

솔선수범이 부하의 마음을 움직인다

한국적 리더십의 원칙②

  • 남보람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연구원 | elyzcamp@naver.com

    입력2015-07-27 13:3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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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전교범에 등장하는 리더십의 원칙은 오늘날 대동소이하다. 이번 호에서 살펴볼 솔선수범의 원칙이 특히 그렇다. 중국 주나라 태공망과 황석공의 저술로 전해지는 ‘육도삼략’을 보면 동양에서 추구하던 솔선수범의 모습이 가장 잘 묘사돼 있다.

    ‘장수는 병사들이 자리에 앉기 전에 앉지 말고, 식사하기 전에 식사하지 말라. 샘을 다 파기 전에 목마르다고 하지 말며, 막사가 준비되기 전에 피로하다고 하지 말 것이며, 밥 짓기가 다 되기 전에 배고프다고 말하지 않는다. 병사들의 막사에 불이 켜지기 전에 장수는 자기 막사에 불을 먼저 켜지 말라. 또한 장수는 겨울에 외투를 입지 않고, 여름에 부채를 쓰지 않으며, 비올 때도 우의를 입지 않는다. 그러할 때 병사는 죽도록 장수를 따른다.’

    더하고 뺄 말이 없다. 이것이 바로 고전적인 동양 장수의 이상형이다. 그러나 할 말은 있다. 예나 지금이나 위와 같이 행동하는 리더는 성인과 종교인 외에는 거의 없다.

    사전적 의미에서 솔선수범이란 ‘앞장서서 모범을 보이는 것’이다. 영어도 같은 뜻이다. ‘leading by example’이라고 한다. 미국 육군 야전교범 6-22, ‘군 리더십(Army Leadership)’(2006)에서는 솔선수범의 요소를 다음과 같이 정리해 제시하고 있다. 그것은 각각 이타적 품성, 역경 속에서의 확신, 도덕적 용기 등이다.

    리더를 보고 움직이는 부하들



    리더는 그들이 인식하든 못 하든 모범이 된다. 리더는 과거 수없이 많은 경험을 통해 현재의 일들을 직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이 현재 내리는 판단이나 취하는 행동은 부대원들에게 귀감이 된다. 곧 현재의 리더 행위가 미래에 리더가 될 부대원의 그것이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렇게 볼 때 한 조직의 리더로서 부하들에게 보여줘야 할 적합한 판단이나 행위의 기준은 먼저 나보다 남을 위하는 ‘이타적 품성’이다. 그것은 상관의 지시를 따르는 것일 수 있고 부하의 의견에 귀 기울이는 것일 수도 있다. 나보다 남을 더 귀하게 여기는 마음에서 출발해 조직 목표를 위해 개인의 욕구를 억제할 수 있는 자세로 귀결된다. 우리는 이런 자세를 희생정신, 헌신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오래전 작은 부대의 리더로서 깊은 산속에 들어간 적이 있다. 처음 가보는 한여름 첩첩산중에서 부대는 잠시 길을 잃었다. 그때 지도를 보다 문득 고개를 들었는데 필자 눈에 들어온 것은 30여 명의 눈동자가 깜박이지도 않고 나만 주목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 순간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역경 속에서의 확신’이 이럴 때 필요하다. 보통의 능력이나 마음가짐 정도로는 극복이 불가능한 어려움이 닥치면 부대원들은 리더를 쳐다보기 마련이다. 이때 리더가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도 힘이 나고 두려움이 사라진다면 더할 나위 없다. 따라서 리더는 자기 위치를 자각하고 위기에 대처하는 능력을 기르며 자기 감정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도록 평소 연습해야 한다.

    군대가 임무를 위해 세상에 존재하는 가치들을 가차 없이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전장은 필요한 모든 요소를 판단할 만큼 여유 있는 곳이 아니다. 따라서 군대는 임무 완수에 배타적인 가치들을 종종 백안시한다.

    예를 들어, 과거 베트남전에서 군이 민가를 불태우거나 우림지역에 제초제를 살포한 것이 당대 임무를 완수하는 데는 매우 효과적이었을 것이다. 어찌 보면 유일한 대안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조치들은 해당 국가의 비인도적 행위로 오늘날까지도 비난받고 있으며 직접적으로는 손해배상의 대상이 돼 많은 시간과 노력, 예산이 재투여되고 있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 분명 국가이익을 침해하는 측면이 있다.

    그러므로 이런 과거의 교훈을 바탕으로 군은 자신에게 부여된 그 어떤 임무라도 그것을 수행하는 목적의 중심이 국가이익이라는 것을 상기해야 한다. 그렇다면 힘들고 어렵더라도 제반 가치와 법규들을 지키면서 임무를 완수하는 것이 언젠가는 국가이익에 더 큰 도움이 되리라는 신념도 뒤따를 터다.

    몸 사리지 않고 전장 뛰어든 대위

    솔선수범으로 지휘한 국내외 리더의 사례는 귀감이 되기 충분하다. 임경업 장군은 이괄의 난, 병자호란이 발생했던 조선 후기 무관이다. 그의 군사적 지휘능력, 외교적 탁월성은 ‘임경업전’으로 전해질 만큼 대단한 것이었다. 임경업 장군의 일화 중 영변(평안북도)에서 방어사로 지내던 시절 있었던 일을 소개한다.

    영변 지역을 북쪽의 침입으로부터 지키는 백마산성을 보수 공사하던 당시, 인근 지역 백성이 모두 동원돼 돌과 목재를 날랐다. 이들은 자칫 잘못하면 한순간 죽어나가는 중노동을 밤낮으로 해야 했는데 자연히 불만이 커져갔다. 방어사가 시키는 일이니 하지 않을 수는 없고, 그러다 보니 백성들은 삼삼오오 모이기만 하면 쑥덕대기 바빴다.

    하루는 누군가가 다들 들으라는 듯 큰 소리로 말했다. “임경업인지 방어사인지는 우리가 이렇게 고생하는 거 알고나 있나 모르겠어. 다들 안 그런가.”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그러게 말이야” 혹은 “방어사가 이 고생을 어찌 안단 말인가”라고 맞장구쳤다. 그때 한쪽에서 “여기 임경업이도 있으니 그런 걱정은 마시게”라고 말하는 게 아닌가. 사람들이 화들짝 놀라 쳐다보니 방어사도 허름한 옷을 걸친 채 함께 돌을 나르고 있었다고 한다.

    미국 윌리엄 스웬슨 대위는 2013년 아프가니스탄(아프간)에서의 전공으로 명예훈장을 받았다. 베트남전 이후 육군 장교가 이 메달을 받은 것은 처음이었다. 그는 2009년 당시 여느 때와 같은 민사작전의 일환으로 아프간 간즈갈 계곡을 부대원 100여 명과 함께 지나고 있었다. 좁은 협곡 양옆에 있는 고지에서 적이 공격해오기 좋은 곳이었으나 이 일대에서 유일한 통로였다.

    잠시 후 무장한 탈레반 60여 명이 나타나 사방에서 집중사격을 하기 시작했다. 후위 제대에 위치했던 스웬슨 대위는 근접 항공 지원과 포격을 요청했으나 민가가 너무 가까워 효과적이지 못했다. 적과의 교전이 6시간 넘게 계속됐다.

    스웬슨 대위는 적이 50m 가까이 접근한 불리한 상황 속에서도 부상한 전우를 부축해 긴급후송 헬리콥터가 착륙한 곳까지 갔다. 그리고 거기서 멈추지 않고 적이 있는 곳으로 차를 몰고 두 차례 더 이동해 다른 십수 명의 부상병을 구출해왔다. 그는 다시 한 번 더 깊숙이 적진으로 들어가 4명의 미군을 구출했다.

    후일 그는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느냐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저는 사실 그때 장면이나 내용들에 대해 기억하지 못합니다. 머릿속에 없다고나 할까요. 왜, 어떻게 그렇게 했느냐고 물으면 달리 대답할 말은 없습니다.”

    평소 육체적 훈련과 다가올 상황을 상정한 예행연습이 아니면 죽음 앞에 자신을 던져 전우를 구하는 행동은 불가능하다.

    미군은 이라크전과 아프간전의 교훈(lesson learned)을 군사교리(doctrine)에 즉각 반영하려는 노력을 해왔다. 그 일환으로 추진한 것이 전쟁의 원칙에 ‘합법성’을 추가한 것이다. 이 전쟁의 원칙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거의 바뀌지 않았기 때문에 여기에 새로운 원칙을 하나 추가했다는 것은 종교로 치자면 ‘성경’에 장절을 하나 더 넣은 것과 비견되는 일이다.

    현대 군사작전은 정치, 경제, 사회, 특히 언론과 직접 연계돼 있기 때문에 그 도덕성, 합법성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국민과 세계 여론의 반발에 직면하게 된다. 따라서 오늘날 실제 전투현장에서 의사결정과 명령하달을 거의 동시에 진행해야 하는 군 리더들은 자신의 결정과 그에 따른 행동이 현행법에 의거해 수행되는지를 항상 확인해야 한다.

    우리는 살면서 항상 ‘가장 쉬운 것이 가장 어렵다’는 것을 느낀다. 또 무엇이든 기본부터 착실히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알고 있다. 리더십도 마찬가지다. 수많은 학술논문과 세미나에서 강조하는 심리학에 기반을 둔 이론이나 실험실 연구 결과로 나온 통계를 굳이 인용할 필요 없이, 리더십의 근본은 앞장서서 모범이 되는 것임을 알고 거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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