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98

2015.07.27

딸은 왜 자살을 택했을까

연극 ‘잘자요 엄마’

  • 구희언 주간동아 기자 hawkeye@donga.com

    입력2015-07-27 10:5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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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딸은 왜 자살을 택했을까
    여느 때와 다를 바 없는 주말 오후, 엄마 델마는 거실에서 TV 쇼를 틀어놓고 시간을 보내며 딸 제시와 일상적인 대화를 나눈다. 딸은 늘 그랬던 것처럼 집 안을 청소한다. 딸은 엄마에게 아빠의 권총이 어디에 있는지 묻는다. 엄마는 별생각 없이 권총이 있는 장소를 알려준다. 권총을 찾아낸 딸이 말한다. “엄마, 난 자살할 거야. 두 시간 안에.”

    연극 ‘잘자요 엄마’는 딸이 두 시간 안에 자살하겠다고 엄마에게 말하는 극단적인 상황을 통해 일그러진 모녀 관계를 무대에 쏟아놓는다. 딸의 자살 예고는 ‘경고’나 ‘협박’이 아닌 ‘선언’에 가깝다. 세상 어느 엄마가 딸이 눈앞에서 죽을 거라는데 가만히 보고만 있을까. 델마는 살살 달래도 보고, 윽박지르기도 하고, 자책도 해보지만 이미 콘크리트처럼 굳은 제시의 마음을 돌릴 재간이 없다. 제시는 오래전부터 이런 마무리를 생각해왔기에.

    무대에는 델마와 제시 둘뿐이다. 배우들은 핑퐁 경기처럼 대사를 주고받으며 팽팽한 긴장감을 선사한다. 공기는 무겁다. 제시 얼굴에도 우울함과 공허함이 서려 있다. 간질(뇌전증)을 앓는 제시는 언제 발작이 일어날지 몰라 제대로 된 직장을 잡기가 쉽지 않고, 혼자 밖에 나가기도 어렵다. 남편과는 이혼했고, 하나뿐인 아들은 집을 나가 연락이 끊긴 지 오래다. 연출가 문삼화는 “이 연극은 이해시키려는 자와 이해해야 하는 자의 지독한 심리전”이라고 설명했다. 작품은 예상치 못한 딸의 선택을 받아들여야 하는 엄마와 자신의 삶에서 처음으로 확실한 선택을 하려는 딸을 통해 관계 속에 존재하는 결핍을 들여다본다.

    1982년 미국 오프브로드웨이 레퍼토리 극장에서 초연된 뒤 이듬해 퓰리처상 드라마 부문을 수상했다. 국내에서는 87년 초연됐고 이번 공연은 2008년 이후 7년 만이다. 철없어 보이지만 강인한 델마 역은 초연과 2008년 공연에서 각각 델마로 열연한 배우 김용림과 나문희가 맡았다. 딸 제시 역에는 염혜란과 이지하가 캐스팅됐다.

    극작가 마샤 노먼은 작가 노트에서 ‘시간은 지금이다. 무대의 시계는 8시 15분. 무대가 시작되면 시계는 관객이 보이는 곳에서 연극이 공연되는 동안 함께 움직이고 있어야 한다. 막간은 없다’고 적었다. 실제로 공연 내내 관객이 볼 수 있는 곳에서 시곗바늘이 움직인다. 점점 예고한 시간이 다가온다. 델마가 타준 코코아를 마시며 즐거워하거나, 아빠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묻는 제시를 보며 관객은 그가 마음을 고쳐먹지 않을까 일말의 기대를 건다.



    아마 모녀는 이날 밤 지금까지 함께 살아온 시간 중 가장 깊은 이야기를 나눴을 것이다. 객석에도 모녀 관객이 많았다. 일부는 극이 끝나고 눈물을 보였다. 우는 건 주로 엄마 쪽이었다. 몇몇은 공연이 끝나고 대학로에서 저녁식사를 하며 못다 한 대화를 꽃피웠으리라. 부디 모녀의 대화가 성공적이었기를. 델마와 제시처럼 극한으로 가기 전까지 우리에겐 아직 선택지가 남아 있다.

    8월 16일까지, 서울 종로구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1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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