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98

2015.07.27

“의혹 핵심은 기술팀 아니라 2차장 산하 국내파트”

그날 이후, 내곡동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 황일도 기자 shamora@donga.com

    입력2015-07-24 15:3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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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혹 핵심은 기술팀 아니라 2차장 산하 국내파트”
    6월 30일. 박근혜 대통령이 국가정보원 청사를 방문해 업무보고를 받았다. 취임 이후 첫 행차였던 이날의 비공개 일정은 대통령과 국정원의 관계가 ‘정상화’됐다는 시그널로 해석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정치 관여 댓글 사건과 간첩사건 증거 조작으로 임기 초부터 갖은 논란에 휘말려온 국정원이 정상적인 위상을 찾았다는 방증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실제로 이병호 원장을 비롯한 국정원 수뇌부는 ‘VIP 행사’를 공들여 준비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모든 기대가 무너져 내리는 데는 열흘도 걸리지 않았다.

    7월 9일 정보기술(IT) 개발자 이준행 씨가 이탈리아 보안업체 해킹팀사(社)에서 유출된 내부자료를 분석해 국정원의 해킹 프로그램 도입 사실을 폭로했다. 이튿날부터 시작된 언론보도와 갖가지 의혹 제기는 이병호 국정원을 사상 최악의 위기로 몰아넣었다. 18일 해당 업무를 담당했던 임모(45) 과장이 자살하면서 사태는 눈덩이처럼 커졌다. 이 과정에서 국정원이 내놓은 다양한 대응 조치와 해명은 오히려 상황을 더욱 악화하는 악수(惡手)의 반복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7월 9일 이후 보름 남짓, 국정원 내부에서는 과연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왜 국정원은 임 과장의 자살과 파일 삭제 같은 극단적인 행동을 사전에 통제하지 못했을까. 보안이 생명인 국가 최고 정보기관의 속성상 이를 실체 그대로 들여다보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 유일한 길은 전직 핵심 관계자들을 통해 국정원의 업무처리 절차와 위기상황에서의 조직 작동방식, 주요 구성원들의 멘털리티를 기반으로 재구성하는 작업. 이를 통해 엿보는 ‘7월 9일 이후 국정원의 움직임’은 사건 실체와 앞으로의 향방을 가늠하는 데 꽤나 흥미로운 단초를 제공한다.

    “실무진밖에 모른다” 차단의 원칙

    국내에서 사안이 불거지기 사흘 전인 7월 6일 무렵, 이탈리아 해킹팀의 ‘고객국가’에 한국이 포함돼 있다는 사실은 이미 외신을 통해 알려진 상황이었다. 그러나 전직 관계자들은 대부분 이 시기 국정원 내부에서 이를 선제적으로 파악해 수뇌부에 보고했을 가능성은 제로(0)에 가깝다고 말한다. 문제 될 만한 사안을 미리 ‘자복(自服)’하는 일이 드문 관료주의의 특성이 가장 두텁게 쌓인 조직이 바로 국정원이라는 것. 외신보도에 대한 간단한 동향 보고는 있었겠지만, 상부에서 관심을 갖기 전에 미리 세부사항을 보고했을 리 없다는 게 중론이다.



    이렇게 보면 이 원장을 비롯한 수뇌부가 이 문제와 관련해 본격적으로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한 것은 7월 10일 이후라고 봐야 옳다. 통상의 업무처리 방식을 감안할 때 처음으로 실행됐을 조치는 해당 실무부처에 내려지는 보고 지시. 방대한 업무와 엄청난 조직 규모라는 특성상 해킹 프로그램이 어디서부터 도입됐고, 어떻게 운용되는지는 오로지 실무진들만 알고 있었을 공산이 크다. 해킹 프로그램 도입 시점의 차장급 이상 핵심 인물 가운데 현재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는 한 사람도 없고, 정권교체에 이은 대대적인 인사태풍 속에서 실·국장급 인사도 대부분 바뀌었다. 옆자리에 앉은 사람이 무슨 일을 하는지를 알려 해서는 안 된다는 이른바 ‘차단의 원칙’ 때문에 국정원 업무를 전체적으로 조망하는 별도 부서도 존재하지 않는다. 한 전직 관계자의 말이다.

    “이런 종류의 위기가 닥쳤을 때 맨 먼저 발생하는 문제는 과연 해당 부처가 어디까지 보고하겠느냐 하는 점이다. 사안을 제대로 아는 곳은 실무부처뿐이며, 문제가 심각해질 경우 책임 추궁을 당하는 것도 그들이다. 당연히 ‘문제가 없다’거나 개괄적인 사실관계만 요약하는 식으로 첫 보고가 이뤄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를 전적으로 신뢰하고 대응방침을 정할 것인지, 아니면 의심하고 캐내야 할 것인지를 정하는 일이 수뇌부에게는 가장 큰 딜레마로 다가온다.”

    이와 관련해 가장 흥미로운 사례는 지난해 불거진 ‘간첩사건 증거 조작’ 사건. 의혹이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들기 시작한 그해 2월 중순 국정원은 ‘조작이 아니며 우리는 관여한 바 없다’는 취지의 보고서를 청와대에 제출한 바 있다. 당시 보고는 당연히 해당 부처의 첫 번째 설명을 기반으로 작성된 것. 해당 부처는 ‘공증까지 받은 문서’라며 문제없다고 강변했지만, 중국 선양주재 한국영사관에 파견돼 있던 국정원 직원이 사실 확인 도장을 찍은 주체라는 사실은 빼놓았다.

    기술보안국 위상이 강화된 이유는?

    심지어 담당 부서장마저 말단 실무자로부터 사건의 진실을 캐내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는 게 올해까지 이어진 재판 과정에서 드러난 국정원 조직의 실체였다. 그리고 그 잘못된 첫 보고의 후과는 컸다. 사건의 진상이 드러난 후 청와대로부터 ‘조직 장악력에 한계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샀던 남재준 당시 원장은 결국 그해 4월 세월호 사고 와중에 자리를 떠나야 했다. 이번 사건 이후 국정원이 일관되게 견지하는 “내국인 사찰은 없었다”는 해명이 향후 어떤 파장을 낳을지 주목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탈리아 해킹팀과 거래하고 이후 RCS(Remote Control System) 프로그램을 운용해온 것으로 알려진 부서는 국정원 내부에서 흔히 ‘기술보안국’으로 불린다. 정보기관 특성상 정식 부서명은 숫자로 기록되고, 그마저도 자주 바뀐다. 기술보안국은 현재 3차장 산하. 김규석 3차장은 공교롭게도 육군본부 지휘통신참모부장을 지낸 통신장교 출신의 기술 전문가다.

    원래 3차장은 2000년 남북정상회담 직후 대북업무를 맡는 직책으로 만들어졌지만, 이명박 정부 이후 대북업무 담당 조직이 재편되면서 현재 기능을 맡게 됐다. 자살한 임 과장의 유서 머리에 등장하는 ‘차장님’은 김 차장을, ‘국장님’은 기술보안국장을 의미하는 셈이다. 기술적 이해가 필수적인 이번 사안에서 김 차장의 판단이 상당한 비중을 지닐 수밖에 없다는 관측은 이 때문에 나온다.

    눈여겨볼 대목은 이명박 정부 이후 기술보안국 출신 인사들의 위상이 상대적으로 강화됐다는 점. 예컨대 2011년 5월 이뤄진 남북정상회담 관련 청와대-북한 국방위원회 비공개 접촉에 동석했던 H국장이 이 부서 출신으로 알려져 있다. 그해 7월 북한은 접촉 사실을 공개하며 H국장의 실명을 언급해 파장을 일으킨 바 있다. 기술부서 출신이 대북업무 핵심을 담당하는 것은 이전에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일. ‘고인 물을 교체한다’는 명분으로 반복된 인사태풍이 낳은 결과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국정원 사정에 정통한 인사들은 이번 사안의 핵심이 과연 3차장 산하 기술부서인지에 대해 의구심을 제기한다. 기술보안국은 말 그대로 다른 부서에서 해킹 등의 의뢰가 오면 이를 처리하는 부서일 뿐 누구를, 언제, 얼마나 해킹할지에 대해서는 결정권이 없기 때문. 임 과장의 유서에서 ‘지원’이라는 표현이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것 역시 이 때문이다.

    임 과장의 유서와 국정원 해명을 통해 확인된 해킹 분야, 즉 대(對)테러 업무와 대북 관련 공작업무는 국내파트를 담당하는 김수민 2차장과 대북업무를 포괄하는 한기범 1차장 소관에 걸쳐 있다. 그러나 최근 수년간 1차장 산하 대북파트의 가능은 분석업무에 집중돼왔고, 대북방첩은 2차장 파트에서 함께 수행하고 있다는 게 정설. 만일 국정원이 내국인 사찰에 해킹 프로그램을 활용했다거나 산업스파이 적발 같은 임무에 이를 투입하는 경우에도 2차장 산하 실무부서에서 임무를 의뢰했을 공산이 크다. 어느 모로 보나 국내파트에서 어떤 ‘오더’를 내렸느냐가 제기된 의혹을 풀 핵심고리라는 뜻이다.

    믿느냐 믿지 않느냐

    “의혹 핵심은 기술팀 아니라 2차장 산하 국내파트”
    다시 최근 상황으로 돌아와보자. 국정원의 업무 프로세스상 7월 10일 이후 3차장과 기술보안국의 현황 보고는 당일, 늦어도 이튿날 오전 일찍 이병호 원장에게 제출됐을 공산이 크다. 원장 지시사항은 퇴근길에 내려진 것이라 해도 이튿날 출근 전까지 밤을 새워 두툼한 보고서로 작성하는 게 국정원의 관례다. 외부에서 온 신임 원장들이 ‘국정원의 실력’과 관련해 맨 처음 놀라는 부분이 바로 이 대목이다.

    앞서 짧게 언급한 바 있지만, ‘문제가 없다’는 보고를 받고 원장이 결정해야 할 사항은 이를 그대로 신뢰할 것이냐 여부. 그러나 이는 그리 간단한 사항이 아니다. 원장이 보고를 신뢰하지 못한다는 건 구성원을 믿지 못한다는 뜻이고, 이러한 시그널이 조직 전체에 퍼지면 운영에 적잖은 장애가 생길 수밖에 없다. 국정원 내부에서는 부임 직후부터 ‘믿지 못하겠다’는 태도를 견지했던 대표적인 수장으로 원세훈 전 원장을 꼽는다. 불신의 대가는 컸다. 이후 원 원장 재임 기간 국정원 조직이 벌인 아마추어 수준의 ‘헛발질 퍼레이드’는 익히 알려진 바와 같다.

    이러한 딜레마는 역시 아래로부터 보고를 받았을 3차장이나 기술보안국장에게도 고스란히 적용될 수 있다. 신뢰가 주는 무게감과 사실이 아닐 경우의 후폭풍 중 어느 쪽이 더 무거운지 가늠하는 일. 국정원이 그간 불거진 사안에서 굼뜬 대응을 보이곤 했던 원인 가운데 하나가 이것이고, 이번 사건의 초기대응에서 상당 시간 지연이 발생한 것 역시 같은 맥락에서 풀이할 수 있다.

    실무부서 보고를 100% 신뢰할 수 없다고 판단할 경우, 원장이 꺼내 들 수 있는 카드가 바로 감찰이다. 국정원 감찰실은 모든 부서의 모든 기밀업무를 열어볼 권한을 가진 유일한 부서로, 실장은 대부분 원장의 최측근 인사가 임명된다. 그간의 보도대로 감찰이 있었다면, 그 시점은 7월 14일 이 원장의 국회 정보위원회 출석을 전후해 이뤄졌을 공산이 크다. 정보위 분위기와 파장을 가늠할 때 실무부처의 첫 보고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하고 감찰실 가동을 지시했을 개연성이 높다는 것. 7월 18일 자살한 임 과장의 행적과 관련해 흘러나온 “나흘 가까이 제대로 잠을 못 잤을 정도로 긴장 상태였다”는 후문과도 맥이 닿는다. 뒤에서 다시 설명하겠지만, 사안이 불거진 10일부터 14일 사이의 지연이야말로 사태 향방을 결정한 결정적 요인으로 보인다.

    7월 17일 이병호 원장은 또 다른 중요한 결정을 내린다. 이날 국정원은 A4 용지 2장 분량의 보도자료를 내고 해킹 프로그램 사용기록을 국회 정보위에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근거 없는 의혹으로 국정원을 매도하는 무책임한 논란은 안보를 약화시키는 자해행위”라는 강경한 태도도 포함됐다. 이날의 결정과 관련해 가장 주목해야 할 인물 역시 김규석 3차장이다. 2013년 4월 임명된 김 차장은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파문 등 이후 불거진 유사한 사건에서 주로 ‘선제적 공개와 해명’을 주장하는 목소리를 강하게 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10일과 14일 사이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은 정말로 감찰이 진행됐느냐 여부. 임 과장의 자살과 관련해 ‘감찰을 받는 동안 압박을 느꼈을 것’이라는 보도가 줄을 잇자 국정원은 이철우 국회 정보위 새누리당 간사를 통해 “감찰은 없었고 전화 몇 차례 한 게 전부”라는 설명을 내놓은 바 있다. 그러나 전직 국정원 관계자들은 대부분 “사안이 이만큼 커졌는데도 감찰실이 움직이지 않았다면 그게 오히려 훨씬 이상한 일”이라고 말한다. 감찰실의 전화 자체가 감찰이 시작됐다는 뜻이지, 공식적인 감찰 개시 절차가 따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는 취지다.

    국정원 직원들 사이에서 감찰실의 악명은 유서가 깊다. 원장과 수뇌부의 위세를 바탕으로 어떻게든 성과를 만들고자 하는 조사담당자들과 조직 안에서의 생명이 달린 피조사자 사이 팽팽한 긴장은 검찰 조사실과도 크게 다를 바 없다는 게 감찰을 받아본 경험자들의 말이다. 으름장이나 협박 같은 기법은 기본에 속한다는 것. 가장 대표적인 방식은 작은 꼬투리를 잡아 해당 피조사자가 사안의 핵심 책임자인 양 압박함으로써 이후 조사를 원활하게 만드는 일이다. 실제로는 보고서에 적시되지도 않을 지엽 말단을 침소봉대해 피조사자의 위기감을 극대화하는 방식이다.

    유서에 드러난 임 과장의 심리상태 역시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특히 그가 해킹 프로그램 운영 자체보다 ‘로그기록 일부 삭제’에 훨씬 무게를 두고 해명했다는 점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시간을 역산해보면 문제의 삭제 작업은 첫 상황 보고가 있었을 7월 10일과 이 원장이 국회 정보위에 출석했던 14일 사이에 이뤄졌을 개연성이 높아 보인다. 이후 국정원은 로그기록 공개 방침을 천명했지만, 일부가 삭제됨에 따라 그 신뢰성을 의심받을 단초가 만들어졌고, 이 때문에 임 과장이 엄청난 압박을 느꼈을 수 있다는 뜻이다. 요컨대 ‘공개만 하면 다 해결될 일을 네가 삭제하는 바람에 엄청나게 꼬였다’는 논리야말로 유서에서 드러나는 가장 큰 압박 요인이었다는 의미다.

    어쩌면 이러한 압박은 원활한 사실 확인 작업을 위한 기법에 불과했을지 모르지만, 임 과장은 그보다 훨씬 ‘순진한’ 사람이었다. 4급 직원이라는 그의 신분은 7급 전산기술직으로 입사해 20년 남짓 근무한 사람이 통상적으로 닿을 수 있는 커리어였다. 다른 분야와 달리 ‘정치 바람’과 거리가 먼 기술직 특성상 지금까지 안정된 조직생활을 무리 없이 이어왔을 공산이 크다. 산전수전 다 겪으며 수차례 감찰을 치르곤 하는 민감한 부서 직원들과는 비교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병호 원장이 ‘믿을 것이냐 말 것이냐’를 두고 고민했을 7월 10일과 14일 사이 나흘 남짓의 지연은 임 과장에게 파일 삭제라는 무리수를 실행할 시간을 허락했다. 문제는 이 작업이 임 과장 본인만의 자의적 판단에 따른 것인지, 혹은 기술보안국에 해킹 작업을 의뢰했던 다른 부서 누군가가 언질 혹은 압박을 가한 것인지 여부. 앞으로의 진상규명 과정에서 확인해야 할 핵심 쟁점 가운데 하나다.

    “의혹 핵심은 기술팀 아니라 2차장 산하 국내파트”
    베트남전의 교훈

    여기까지 정리해놓고 보면 이번 사안의 뿌리가 무엇인지 확인할 단초가 모습을 드러낸다. 조직은 방대하고 원장을 비롯한 핵심 직책은 쉴 새 없이 교체된다. 수십 년간 근무해온 직원들 눈으로 보자면 오히려 수뇌부가 뜨내기에 가깝다. 수장이 바뀌었다고 모든 업무를 일일이 감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보면, 결국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의 ‘민주적 통제’에 대한 인식이 자리 잡는 것만이 변화의 열쇠다. 한 학계 전문가가 이를 두고 베트남전을 통해 교전수칙을 날카롭게 정리해온 미군 역사와 비교한 이유다.

    “적 전투원과 민간인을 구분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지휘관이 취해야 할 대응원칙을 명확히 정립하기까지, 미군 역시 작전 수행 중 민간인 사망을 둘러싼 수많은 논쟁과 재판이 필요했다. 지난한 과정을 거쳐 ‘선이 어디인지’에 대한 인식이 조직 전체에 뿌리내렸다고 국민이 확신해야만 의심도 사그라진다. 개인적으로는 ‘총풍’ 사건부터 이번 논란까지, 국정원과 우리 국민 역시 비슷한 과정을 거치는 중이라고 믿고 싶다. 지난해 인사파동 등 국정원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최소한의 낙관마저 쉽게 허락지 않지만, 그마저 없으면 국가 최고 정보기관의 민낯을 날것 그대로 들여다봐야 하는 우리 처지가 너무 가엽지 않은가.”

    적법과 범죄 사이 ‘對정부전복’ 임무의 아슬아슬함

    “우리는 교도소 담장 위를 걷고 있다”


    국가정보원 내 다른 실무부서에서 의뢰한 해킹 임무와 관련해 실제로 이를 진행할 기술보안국 차원에서 적법성을 문제 삼아 이의를 제기하는 일은 가능할까. 전직 인사들은 대부분 “원칙적으로는 모르지만 실제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라고 말한다. 통상의 부서 간 업무협조 프로세스를 감안할 때 ‘선(線)을 넘은’ 의뢰가 들어왔을 경우 담당 처장 혹은 국장 선에서 브레이크를 걸어야 옳지만, 분초를 다투는 업무특성과 국정원 고유의 분위기를 감안하면 업무 해태나 몸 사리기로 비칠 공산이 훨씬 크다는 것. 분명한 것은 자살한 임모 과장의 경우 어떤 식으로든 책임을 묻기 어려운 직책임이 분명하다는 점이다. 한 전직 관계자의 말이다.

    “2011년 2월 국정원 직원들이 인도네시아 대통령 특사단이 머물던 호텔에 침입해 노트북컴퓨터를 뒤지다 현장에서 발각된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당시 국정원이 확인하고자 했던 정보의 키를 한국인 협조자가 쥐고 있다면, 예컨대 은밀한 접촉이 포착됐다면, 내국인이기 때문에 미행이나 접근, 해킹을 포기할까. 지금의 국정원 정서를 감안하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그게 정보기관의 속성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를 2012년 댓글 사건 등과 연결해보면 상황이 간단치 않다는 게 문제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을 비롯한 당시 정부의 핵심 관계자들이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에 참여한 단체나 온라인상에서 정부를 비판한 댓글 중 상당수가 북한과 연계됐을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을 갖고 있었다는 사실은 국정원과 국군사이버사령부 댓글 사건의 재판과정을 통해 충분히 확인된 바 있다. ‘정부전복을 꾀하는 세력과의 전쟁을 수행하고 있다’는 이들의 인식을 전제로 놓고 볼 때, 국내 사회단체나 정치인들과 북한의 연계를 확인한다는 논리로 같은 ‘작업’을 수행했을 개연성을 배제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또 다른 전직 관계자의 말이다.

    “국정원 직원들이 자조적으로 하는 말 가운데 ‘교도소 담장 위를 걷고 있다’는 게 있다. 국정원법에는 임무 중 하나로 ‘대(對)정부전복’이 규정돼 있지만, 이 말은 오로지 국정원법에만 등장할 뿐 헌법을 비롯한 어느 법률에도 정확히 규정돼 있지 않다. 직원들 스스로는 대정부전복 업무를 수행했다고 믿을 수 있어도, 결과적으로 범법행위이거나 과도한 해석이었는지 여부는 법원 판결을 통해서만 구체화될 뿐이다. 댓글 사건에서 벌어진 일이 바로 그런 경우다.”


    자충수의 정점 ‘직원 일동’ 성명

    정치적 효과 검토했을 C국장의 막강 파워


    “의혹 핵심은 기술팀 아니라 2차장 산하 국내파트”
    이번 사건과 관련해 국가정보원 내부 사정에 정통한 인사들이 가장 이해하기 어렵다고 입을 모은 대목은 7월 19일 밤에 나온 ‘직원 일동’ 명의의 성명이다. “자국의 정보기관을 나쁜 기관으로 매도하기 위해 매일 근거 없는 의혹을 경쟁적으로 쏟아내는 나라는 우리밖에 없다”며 의혹 제기를 정면으로 비판한 문제의 성명은 어느 모로 보나 정보기관의 속성에서 크게 어긋난다는 것. 직원들의 의사표현이라는 방식 또한 관계법령에 위배될 공산이 적잖다는 이야기다. 여기에 이병호 원장이 성명 작성과 공개를 직접 결재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심각성은 한층 커졌다.

    궁금증의 초점은 과연 누가 이를 기획했을까 하는 부분. 정통한 인사들은 대부분 비서실 등 원장 직할부서에서 이러한 ‘대담한 꼼수’를 기안할 가능성은 적다고 말한다. 정치권과 여론에 미칠 파급효과나 영향은 결국 국내 정보 분석과 판단을 총괄하는 부서가 맡을 수밖에 없다는 것. 아이디어 자체는 수뇌부 회의나 유관 부서까지 포함한 확대간부회의에서 나왔을 수 있지만, 최종 판단에서는 국내정보분석국장의 의견이 주요했으리라는 설명이다.

    공교롭게도 현재 이 직책을 맡은 인물은 지난해 8월 이른바 ‘국정원 인사 파동’에서 구설에 올랐던 C국장. 이병기 당시 원장이 이미 마무리한 1급 실국장 인사와 관련해, 청와대에서 직접 지목해 승진과 국내정보분석국장 임명을 주문했다는 당사자다. 그 와중에 원래 해당 직책에 임명됐던 인사는 끝내 옷을 벗어야 했고, 그 배후에 ‘정윤회 파동’을 둘러싼 권력 다툼이 있었음은 ‘주간동아’가 959호 ‘국정원 인사파동 두고두고 쓴맛’ 기사와 966호 ‘박지만 회장, 국정원에 정윤회 조사 요구했었다’ 기사(사진)를 통해 이미 보도한 바와 같다. 이병기 당시 원장이 이 일로 내부에서 큰 상처를 받았음은 불문가지다.

    국회 등 정치 현장 출입 경력이 상당한 것으로 알려진 C국장은 2012년 대통령선거 이후 구성된 박근혜 정부의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파견돼 근무했고, 이후 청와대에서 행정관으로 근무하다 2013년 5월 이른바 ‘국정원 정치 개입 문건’과 관련해 입길에 오르면서 본부로 복귀한 바 있다. C국장의 이름이 올라 있어 논란이 됐던 ‘좌파의 등록금 주장 허구성 전파로 파상공세 차단’이라는 제목의 문건은 2011년 6월 무렵 야권을 중심으로 제기된 반값 등록금 운동에 대한 정부 차원의 대처 방안을 담고 있었다. 어느 모로 보나 납득하기 어려운 ‘직원 일동’ 명의의 성명과 관련해, 이 원장을 비롯한 국정원 수뇌부가 청와대와 두터운 인연을 맺어온 C국장의 판단을 무시할 수 없어 벌어진 일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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