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96

2015.07.13

‘유령집회’라면 중복 집회 가능

집회와 시위의 자유

  • 류경환 법무법인 청맥 변호사

    입력2015-07-13 11:4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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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령집회’라면 중복 집회 가능
    대한민국 헌법 제21조 제1항은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제2항에서 ‘언론·출판에 대한 허가나 검열과 집회·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아니 한다’고 적고 있다. 집회의 자유는 정치적 기본권으로, 헌법이 보장한 기본권 가운데 하나다. 그 핵심은 사전 허가를 받지 않는 데 있다. 다른 사람들과 편하게 만나 이야기하다 자연스럽게 집단을 이루는 데 누구의 허락도 받지 않도록 한 것이다. 집회는 그 형태가 평화적이고 비폭력적이며 비무장이라면 자유롭게 인정된다. 타인의 기본권을 침해하지 않는 이상 폭넓게 인정된다.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은 이러한 조정 내용을 기술한 것이다. 시위는 ‘움직이는 집회’로 해석된다. 집시법의 핵심 내용은 명백히 폭력적인 것으로 보이는 집회를 금지하는 것이다(집시법 제5조). 실제 생활에서 많이 부딪히는 부분은 사전신고제(제6조)다. 집회를 하려는 사람은 시간과 장소, 주최와 목적, 참여 인원과 시위 방법 등을 미리 집회 장소의 관할 경찰서장에게 알려야 한다는 내용인데, 집회에 대한 사전 허가는 인정되지 않으므로 경찰서장은 신고가 들어오는 즉시 접수증을 내줘야 한다.

    다만, 경찰서장은 시간과 장소가 겹치는 ‘중복집회’의 경우 먼저 신고된 집회를 인정하고 뒤에 신고된 집회는 금지해야 한다(집시법 제8조 제2항). 이 조항 때문일까. 요즘 정치적 표현을 하기 좋은 특정 장소의 경우, 많은 단체가 집회가 있기 수개월 전부터 미리 신고하는 게 관례화됐다. 문제는 집회 신고만 하고 실제로는 집회를 갖지 않거나 형식적 집회만 하는 소위 ‘유령집회’ 때문에 발생한다.

    그렇다면 ‘유령집회’가 열리는 해당 시간과 장소에서 다른 집회를 강행한 집회 주최자에 대한 형사 처벌은 가능할까. 최근 서울중앙지방법원은 누가 봐도 ‘유령집회’가 분명한 경우에 한해 또 다른 집회를 같은 시간과 장소에서 강행했다면 무죄라는 판결을 확정했다. 집시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환경운동연합 김모 씨의 파기 환송심에서 원심을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한 것. 대법원 무죄 취지 판결의 후속 조치였다. 경찰서장으로부터 사전 허가를 받았다 해도 실제 집회가 열리지 않으면 집회가 없는 것과 같다는 취지. 즉 해당 집회를 막는 행위는 헌법과 집시법에 위배되는 행위라는 뜻이다.

    집시법의 또 다른 쟁점은 ‘누구든지 해가 뜨기 전이나 해가 진 후에는 옥외집회 또는 시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는 제10조 조항이었다. 야간의 경우 다른 사람에게 불편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해 집회를 금지하는 것. 저녁 모임이 많아지는 생활 형태나 5시가 되면 해가 지는 겨울철을 고려하면 지키기가 쉽지 않은 조항임에 틀림없다.



    이와 관련해 2014년 3월 헌법재판소는 이 조항을 밤 24시 이전까지 적용하는 것은 위헌이라는 취지의 판시를 내놓았다. 24시 이전까지의 ‘야간’은 보편화한 일상적인 생활범주 안에서 주간으로 보는 게 옳다는 취지다. 집회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한 법률 규정의 해석을 현실 정서에 맞게 조정한 것. 요즘 해가 져도 집회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것도 이 판결 때문이다.

    요즘 소통이 어느 곳에서나 화두다. 옛 어른들은 일과가 끝나면 마실을 갔다. 대화 주제나 자세, 말하는 방법에 제한이 없었다. 모임은 공감대 형성의 기초가 된다. 이런 소통의 장은 집회와 시위의 자유가 법률적으로 보장될 때 가능하다. 자신에게 잠깐 불편하다고 이 자유를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건 국가든 개인이든 큰 잘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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