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95

2015.07.06

뜨거워서 더 시원한 최고 보양식

대전과 충남 금산의 삼계탕

  • 박정배 푸드칼럼니스트 whitesudal@naver.com

    입력2015-07-06 11:33: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뜨거워서 더 시원한 최고 보양식
    어린 시절 가장 이해하기 힘든 얘기 가운데 하나가 뜨거운 음식을 들고 나서 “시원하다”고 하는 어른들 말씀이었다. 하지만 목욕탕의 온탕과 삼계탕의 뜨거운 국물이 시원하다고 느껴질 무렵, 나는 어느새 아버지 나이가 돼 있었다. 닭과 인삼이 만나 하나가 되고 그것을 뜨겁게 끓여 내는 삼계탕을 먹으면 몸이 개운해진다.

    삼계탕 얘기가 나오면 빠지지 않는 논쟁거리가 삼계탕의 주인, 즉 핵심 재료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인삼이 귀했을 때는 닭을 중심으로 해 계삼탕이라 불렀고 인삼이 대중화하면서 삼계탕으로 이름이 변했다는 설도 있다. 물론 추정이지만 그랬을 가능성이 적잖다. 1894년 이제마가 쓴 사상의학서 ‘동의수세보원(東醫壽世保元)’에는 삼계고(蔘鷄膏)가 설사병 치료제로 등장한다. 1921년 9월 11일자 ‘매일신보’에 실린 조선요리점 ‘해동관’ 개점 광고 말미에 ‘계삼탕(鷄蔘湯)-보원제로 극상품’이란 문구가 나온다. 필자가 현재까지 확인한 계삼탕, 즉 삼계탕에 관한 최초의 기록이다.

    삼계탕이란 단어는 1923년 일본인이 작성한 ‘중추원 조사자료’에 처음 등장한다. 이 자료에는 ‘여름 3개월간 매일 삼계탕(蔘鷄湯), 즉 암탉 배에 인삼을 넣어 우려낸 액을 정력(精力)약으로 마시는데, 중류 이상에서 마시는 사람이 많다’고 적고 있다. 삼계탕은 닭고기를 먹는 게 아닌, 국물을 우려서 먹는 약의 일종이었다. 1956년 12월 28일자 ‘동아일보’ 기사에는 지금 먹는 삼계탕과 거의 흡사한 계삼탕 조리법이 등장한다.

    ‘계삼탕 - 삼복더위에는 계삼탕을 먹으면 원기가 있고 또 연중에 질병에 걸리지 않는다 하여 사람들은 많이들 먹는다. 계삼탕이란 닭을 잡아 털을 뽑고 배를 따서 창자를 낸 뒤 그 속에 인삼과 찹쌀 한 홉, 대추 4, 5개를 넣어서 푹 고아서 그 국물을 먹는 것이다.’

    1960년대 이후 인삼가루가 아닌 생삼인 수삼(水蔘)이 정부 규제 완화와 냉장시설 발달로 대중화의 길을 걷게 되자 상인들은 계삼탕보다 인삼에 방점을 둔 삼계탕이란 이름을 내걸고 영업을 한다. 육류 소비가 급증하는 1975년 이후 닭 한 마리와 인삼을 같이 먹을 수 있는 삼계탕은 여름 최고 보양식으로 등극하게 된다.



    뜨거워서 더 시원한 최고 보양식
    금산인삼 유통의 중심지인 충남 금산군 금산수삼시장은 여름이면 활력이 넘친다. 인삼 최대 수요 철이 이맘때이기 때문이다. 인삼은 750g을 한 채로 부른다. 삼계탕용 인삼은 인삼 중에서도 가장 작아 한 채에 100~120다마(개)다. 크기가 작다고 연수가 적은 건 아니다. 금산인삼은 대개 4년이 돼야 출하된다.

    조선시대부터 인삼으로 유명했던 금산에 삼계탕집이 생긴 건 1990년대 중반이다. 금산수삼시장 건너편 상가 2층에 있는 ‘원조삼계탕 본점’은 지역 사람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인삼 본고장답게 인삼 한 뿌리가 들어 있고 인삼가루도 뿌린 삼계탕을 판다. 콩가루도 더해져 국물 맛이 고소하다.

    하지만 충청도 삼계탕 문화의 중심지는 대전이다. 금산과 같은 생활권에 있다. 옛날 역전 모습이 여전히 남아 있는 대전역 부근 동구 공영주차장 앞에는 대전에서 가장 오래된 삼계탕 전문점 ‘금성삼계탕’이 있다. 금산인삼과 충남 연산의 닭, 대추 같은 좋은 재료를 사용한다. 1970년대 말 대전역 앞에서 ‘대흥삼계탕’으로 시작해 93년 지금 자리로 옮겨와 영업하고 있다. ‘금성삼계탕’이 여느 지역의 삼계탕과 가장 다른 점은 쌀을 닭 배안에 넣지 않고 뚝배기에 끓여 낸다는 것이다. 국물에 당근을 넣는 것도 색다르다. 쌀을 뚝배기에서 직접 끓이기 때문에 걸쭉한 죽 한 그릇을 먹는 기분이 든다.



    댓글 0
    닫기